한겨레신문 경제부 권태호 기자의 메일입니다.
오랜만에 찾아뵙습니다. 오늘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김우중 전 대우회장은 지금 회계조작과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고, 또 귀국을 종용받으면서도 해외를 떠돌고 있습니다.
1.김우중, 지금 어디에 있나?
김 회장은 대우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지 두달만인 99년 10월 중국 옌타이 자동차부품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뒤 이후 국내에 들어오지 않고 1년4개월동안 방랑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부근 친구의 농장에서 요양을 했고, 이사이 미국, 베트남, 중국 등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여름에는 프랑스 니스의 별장(이 별장의 소유가 김 회장인지, 김 회장의 지인(知人)의 것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에서 몇 달간 요양을 하다 10월에는 아프리카 수단으로 떠났습니다. 수단은 대우가 대규모 투자를 한 곳으로 수단 대통령의 배려로 요양생활을 하다가, 12월 모로코(모로코 역시 최근까지 대우가 투자를 한 곳으로 김우중은 모로코 왕자와 특별한 친분관계를 갖고 있습니다)를 거쳐 최근에 다시 프랑스로 옮겼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의료시설 등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데다, 자신의 거취가 계속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우 관계자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거취가 알려지면 곧바로 그곳에서는 자취를 감춘다”고 합니다. 또 어떤 경제계 인사 한 분은 지난해 파리 공항에서 독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김 회장을 만나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 김 회장은 2등석 좌석을 끊었으며, 상당히 초췌해 보였다고 합니다. 김 회장은 지금 건강도 아주 안 좋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대우가 워크아웃에 들어가기 전인 98년께 김 회장이 중국 출장 갔다가 만찬장에서 쓰러져 뇌수술을 받은 것을 기억하실 수 있을겁니다. 이후 김 회장은 대우에서 물러난 뒤, 심근경색(참고로 심근경색은 과도한 스트레스에 장시간 노출되면 발병하게 됩니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도 마음을 늘 편히 가지시길 바랍니다)으로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습니다.
아시다시피 김 회장은 무쇠체질이었습니다. 36년생으로 우리나이로 올해 66세인 김 회장은 대우그룹 회장 시절 보통 수행비서가 2년에 한 번씩 교체됐습니다. 김 회장을 따라다니는 젊은 비서(20대 후반~30대 초반)들이 2년동안 거의 녹초가 돼 진이 다 빠져버리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로 강건한 체질이었는데, 하루 아침에 쇠잔해지고 있습니다. 김 회장은 최근엔 당뇨까지 겹치는 등 노인성 질환이 한꺼번에 몰아닥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그동안 미국 보스턴에서 유학중이던 막내아들과 함께 지내며 가끔씩 김 회장을 찾는 부인 정희자씨도 최근엔 김씨의 간호에 주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우차 노조가 김 회장을 강제소환하기 위해 `김우중 체포결사대'를 이미 8명으로 구성해 김 회장의 소재파악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우차 노조가 김 회장을 강제로 끌어오기란 쉽지 않겠지만, 김 회장은 이제 과거 자기 직원들을 피해 도망다녀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2.김우중의 삶
문제많은 경영인이었지만, 호랑이(대우그룹 회장시절, 김우중은 회장실에 커다란 호랑이가 표효하는 장면을 배경으로 한 사진을 걸어두었습니다)처럼 지칠질 모르던 김우중 회장이 이젠 초라한 노인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
제가 지난 97년말 경제부에 왔을 때, 첫 출입처가 대우그룹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솔직히 `인간 김우중'에 대해선 약간의 연민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전쟁을 겪어야만 했던 지금의 50~60대가 다들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지내왔겠지만, 김우중도 역시 힘든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김우중은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당시 대구교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고,(김우중의 아버지가 당시 대구교대를 다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은사였습니다. 따라서 대우가 70년대에 한창 뻗어나갈 때, 김우중의 아버지가 대통령 은사였기 때문에 많은 특혜를 입었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형 김덕중(아주대 총장을 지내셨죠)과 동생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해방 이후 제주도 첫 도지사를 지내기도 하는 등 김우중의 어린 시절은 유복한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쟁통에 아버지가 납북되면서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형은 군대에 가고, 대구로 피난온, 당시 중학생이던 김우중은 졸지에 소년가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김우중은 당시 대구 서문시장에서 신문배달을 했습니다.
여기에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소년 김우중은 신문배달소에 가장 먼저 가 신문을 받아옵니다. 그리고 다른 배달소년들이 오기 전에 냅다 달려 시장바닥을 돌아다니며 신문을 돌립니다. 그러나 몇 부를 돌리기도 전에, 다른 배달소년들이 들이닥쳐 독점을 누릴 시간이 적었던거죠. 김우중은 거스름돈을 주고 받는 시간이 길다고 느껴, 처음엔 거스름돈 동전을 종이에 말아, 한꺼번에 건네주며 독점의 시간을 조금 늘려봅니다. 그래도 안되자, 나중에는 신문을 들고 시장바닥에 그냥 마구 뿌립니다. 돈을 받지 않고 말입니다. 그리고 신문을 다 돌린 뒤, 다시 길을 돌아오며 신문값을 받습니다. 물론 사람이 사라져 몇 부는 돈이 떼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가장 확실하게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얼마 안가 서문시장의 신문팔이 소년은 김우중 하나 밖에 없게 됐습니다.
저는 김우중의 `몰락'이 여기에서부터 예견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부지런하고, 영리한 소년이었지만 시장을 싹쓸이하겠다는 확장전략이 단순하고 경쟁자가 약한 시장에서는 성공할 수 있었지만, 그 시장이 점점 커질수록 그러한 전략은 어차피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더 많으니까요. 돈을 빌려 이곳저곳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가, 나중에 회수도 제대로 못하고 주저앉고 만 `세계경영'의 맹아를 보는 듯 하지 않습니까?
김우중은 `배달소년의 신화'를 뒤로 하고, 전쟁이 끝나 서울로 올라옵니다. 그리고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합니다. 군에 갔던 형이 돌아와 집안살림은 형이 맡아 `가장'의 부담도 덥니다. 그러나 김우중은 이른바 `경기고 깡패'였습니다. 사춘기의 반항이랄까, 치기랄까 그런 것이었겠죠. 거의 매일 싸움질을 했습니다. 덩치는 큰 편이 아니지만(김우중은 키가 167㎝입니다), `악바리'였죠.
한 번은 덩치 큰 녀석과 싸움을 벌이다 일방적으로 몰매를 맞았는데, 머리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마치 `야차'처럼 집앞까지 며칠간을 쫓아다니자, 나중에 그 녀석(?)이 무릎을 꿇고 김우중 앞에 싹싹 빌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김우중은 또 당시 킥복싱을 하는 등 싸움도 곧잘 했습니다. 이러다보니, 2학년때까지 성적은 비록 경기고였습니다만, 바닥을 벅벅 긁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다 3학년때, `내가 이러다가는 깡패 밖에 될 게 없겠다'는 생각에 공부에 매달렸고, 연세대 상대에 입학합니다.
김우중은 50년대말이던 대학시절 농촌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우리나라는 왜 이리 가난한가?'라는 생각에 대학을 졸업하자 공무원이나 은행원이 아닌 무역업체에 취직합니다. `한성실업'이라는 곳이죠. 이곳에서 착실하게 일을 배웠던 김우중은 결국 67년 대우그룹의 모태인 `대우실업'을 세웁니다.
자본금 500만원에 직원 5명. 김우중의 지분인 250만원도 빌린 돈입니다. 대우의 창업멤버들은 명동 동남빌딩 귀퉁이 조그만 사무실에서 연일 밤을 새우는데, 김우중은 책상 몇 개를 얼기설기 붙여놓고 거기에서 잠을 자기 일쑤였죠. 김우중 회장은 이때를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부인 정희자씨의 회고에 따르면, 결혼하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부터 남편이 12시가 넘어서 들어오는데 시댁 식구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여기는 게 이상하기 시작했습니다.
통행금지가 있던 당시, 김우중은 매일 밤 마지막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던 거죠. 정희자씨가 나중에 힐튼호텔 등 경영에 나서게 된 것도 너무나 일에 빠져있는 남편때문에 일종의 우울증에 걸린 탓도 컸죠. 어쨌든 조그만 오퍼상이었던 대우실업은 와이셔츠 등 섬유에서부터 시작해 매년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합니다. 그리고 70년대 중반부터 대우는 중공업, 조선, 전자, 그리고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종합상사에서부터 중공업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재벌'로 성장합니다.
김우중이 이때까지 아무런 장애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초창기 부산의 공장에서 불이 나 휘청이기도 했고, 78년 적자투성이이던 조선공사(대우중공업 전신)를 박정희 정권의 강압에 의해 억지로 떠안았는데, 89년 세계 조선경기 급락으로 대우조선이 엄청난 적자를 안게 되면서 5개 계열사를 매각하고 지금의 서울역앞 대우빌딩까지 내놓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대우중공업은 극심한 노사분규에까지 휘말립니다. 그러자 김우중은 경남 거제 대우중공업으로 내려가 2년동안 사무실 야전침대에서 지내며, 결국 이 모두를 극복하고 한때 세계 조선수주 1위로 대우중공업을 만들어 놓습니다. 당시 김태구 사장이 매일밤 라면을 끓이는 등 밤참당번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옥포만의 파도소리를 들으며 쓴 책이 바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였습니다.
김 회장은 93년부터는 `세계경영'을 부르짖으며 해외로 눈을 돌립니다. 이때부터 `대우의 비극'은 본격화됩니다. 중앙아시아, 동구, 아프리카 등 이른바 `이머징 마켓'(Emerging Marcket)에 대한 선점효과를 노린 거였는데, 문제는 돈이 없었다는거죠. 이를 대우는 기기묘묘한 금융기법을 동원해 자금을 끌어와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점점 나락으로 굴러떨어집니다.
대우는 폴란드를 제외한 4개 해외 주요 자동차공장의 생산이 99년에 연간 생산능력의 30%에도 못 미쳤습니다. 당시 대우의 현지법인은 396개, 해외 투자규모는 80억달러. 그런데 해외법인의 차입금이 68억4천만달러(실제로는 더 될겁니다)로 드러난 통계수치만으로도 세계경영의 83%가 빚으로 쌓아올린 셈입니다. 김 회장은 이 시기 개인적으로도 크나큰 아픔을 겪는데, 그것은 큰아들 선재군의 갑작스런 사고였습니다. 당시 미국유학중이던 선재군은 어머니를 마중하러 공항으로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숨졌습니다.
67년 대우 설립 이후, 단 한 번의 휴가는 물론, 단 한 번의 결근도 없었던 김 회장은 이때 1주일동안 아무런 지시도 없이 두문불출합니다. 부인 정희자씨는 이때 우울증을 얻어 이를 극복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김 회장은 1주일 뒤, 툭툭 털고 일어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일에 매달립니다. 아들 선재군의 묘는 안산에 있는 농장에 있는데, 어머니 정희자씨가 자주 그 묘를 찾는 반면 김 회장은 농장에 가더라도 자식 묘에는 절대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얘기가 잠시 빗나갔는데, 세계경영으로 눈을 돌린 김우중의 신화는 90년대 이후 더욱 빛을 발합니다. 우즈벡, 베트남, 폴란드, 체코, 루마니아, 모로코, 수단 등등 마치 징기즈칸같은 기세였죠. 언론들도 이를 극구 찬양하기 바빴죠. 아마 지금 김 회장을 맹렬하게 비난하는 일부 교수들 가운데에서도 당시 김 회장을 칭찬해 마지 않았던 인물이 적지 않을 겁니다.
그만할까요? 세계경영 이후의 일은 대부분 다들 잘 아는 일일테고. 참 김 회장은 별다른 취미도 없는 사람입니다. 골프는 칠 줄도 모르고(예전에 대우의 한 임원이 해외출장을 가는데, 골프채를 들고 가다가 마침 공항에서 김 회장과 마주쳐 곧바로 짤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집에서 쉴 때는 홍콩 무술영화 비디오만 봅니다. 비행기 안에서는 바둑(아마 2급)을 두는데, 주로 비서들과 뒀습니다.
그런데 김 회장은 바둑도 꼭 돈을 걸고 내기를 했는데, 승부욕은 타고난 건지 지면 얼굴에 불쾌한 인상이 가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스톱도 꽤 잘합니다. 임원들이 상을 당하면, 상갓집에 가 밤을 새우면서 고스톱을 치는데 위너가 김우중 회장일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전용 비행기에 국내 유명인사들을 함께 태우고 그들과 오랜 이야기도 나누기도 했습니다. 도올 김용옥, 이문열, 최인호 등도 김 회장과 함께 여행을 했던 인사입니다. 김용옥씨는 여행 뒤, 김 회장과의 여행기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김용옥씨는 김 회장에 대해 “나는 섹스보다 일을 좋아하는 사람을 지금껏 보지 못했는데, 김우중은 섹스보다 일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다운 표현이군요.
두서가 없습니다만, 마지막으로 김우중의 실패에 대해 한 번 살펴보도록 하죠.
3.김우중은 왜 실패했는가?
아마도 김우중 회장 본인이 가장 많이 되씹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 출입하는데 그쳤던 제가 어찌 이를 속속들이 알 수 있겠습니까마는, 남들도 지적하는 몇 가지만 들어보죠.
1)물적토대 없는 금융자본의 한계
대우는 잘 나갈 때도 늘 `사상누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부실기업을 은행의 자금지원에 의해 거의 거저 줏다시피 얻은 뒤, 이를 마케팅 극대화로 매출을 늘려 정상화시킵니다. 자연 부채비율은 점점 올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또 금융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김우중 회장이 `세계경영'으로 치고 나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국내의 엄청난 금융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자, 외국의 싼 금리를 끌어들여, 이를 국내로 들여오기 위한 목적도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김 회장은 이에 대해 “자본, 기술, 자원, 아무 것도 없는 우리나라가 발전하는 길은 외국으로부터 자본을 빌리는 수 밖에 도리가 없다. 그런데 이를 두고 선진국과 똑같은 눈금을 갖고 부채비율을 줄이라느니 하면 어떡하느냐?”며 정부의 구조조정 방안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또 대우의 제품을 보면, 어느 것 하나 1위 제품이 없습니다. 대우전자, 대우자동차 등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들 제품은 과거 품질보다는 값이 싸거나, 다양한 할부제도 등의 메리트가 컸던게 사실입니다. 솔직히 대우는 기술개발에 등한했습니다. 대우가 신진자동차를 처음 인수할 당시만 해도, 신진자동차는 내수시장 1위 업체였습니다.
그런데 대우 인수 이후, 신제품 개발보다는 적당히 껍데기만 바꿔 끼우는 등 신차개발에 등한히 하면서 현대에 역전을 당한거죠. 당시 대우차에 있었던 한 고위간부는 “르망과 프린스 후속모델 개발을 위해 김 회장에게 신차개발 방안을 보고했더니, 김 회장이 책상을 두드리면서 벌컥 화를 냈다. `왜 지금 차가 잘 팔리는데 쓸데없이 후속모델 개발하려고 돈 몇 천억원을 버리려 하느냐'고”. 김 회장은 이른바 자동차도 와이셔츠처럼 박리다매 식으로 경영했습니다. 기술개발은 한 순간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기술개발을 등한히 한 업체는 서서히 무너지고, 특히 위기시에는 급격히 무너지고, 절대 회생하지 못하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2)화를 부른 최악의 수 연발
98년은 우리나라에 IMF가 밀어닥친 해입니다. 그리고 98년 대우는 결국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나 이때의 김우중 회장과 대우를 보면, 마치 카지노에서 큰 돈을 잃자 `이판사판'이라며, 카드 빚 내 마지막 베팅을 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97년말 대우는 쌍용차를 인수합니다. 그리고 98년 이른바 `빅딜'이라 불리는 삼성차 인수에까지 나섭니다. 당시 대우는 극구 부인했지만, 이미 밑둥치부터 가라앉는 대우를 회생하기 위한 방책이 아니었나 생각듭니다.
당시 전경련 회장직에 올랐던 김우중 회장은 또 `400억달러 무역흑자'론을 폅니다. 결과적으로 98년 무역흑자액이 400억달러를 넘어서 당시 100억달러 흑자를 이야기하던 정부 관계자들을 우습게 만들어 버렸지만, 여기에서 대우는 또한번 골병이 듭니다.
김 회장은 당시 400억달러 무역흑자론을 주창하면서, 정부에 저리의 무역금융 지원을 요청했죠. 하지만 정부는 이를 불허했죠. 대우그룹의 수출창구인 (주)대우는 98년 수출 1위로 급부상했는데, 이당시 대우의 수출내역을 잘 살펴보면, (주)대우가 (주)대우 해외법인에 판매하는 게 상당했습니다. 수출액 집계는 되지만, 실제 물건은 (주)대우 해외법인 창고에서 썩고 있는 게 많았죠.
또 이때 은행권의 무역금융이 극히 까다로워져 L/C(신용장, 통상 10일 이내에 수출액이 현금화됨:설명을 하려면 너무 길어지고, 솔직히 저도 설명할 정도만큼 잘 알진 못하니, 무역용어 사전 등을 참고하십시오) 베이스의 수출이 잘 안돼 대부분 D/A(수출환어음, 외상거래라고 보면 됨) 거래로 돌립니다. D/A는 통상 3~6개월 정도가 보통인데, 대우는 어차피 최종수출이 안 된 제품들이 많으니, 이를 (주)대우 해외법인에 1년~3년의 외상수출을 한 겁니다. 이러니 실제 수출액은 늘지만 정작 대우는 빈 손이기 마련이었던거죠.
그래도 영업자금은 필요하니, 어떡합니까? 고금리 회사채를 돌렸습니다. 당시 금리가 20%를 오르내렸던 것을 기억하시죠?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대우 회사채는 발행 자체가 점점 힘들게 됐습니다. 급기야는 사채(私債)까지 빌려쓰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영방식을 고수한 이유는 이른바 대우가 `달리는 자전거'였기 때문입니다. 빚을 얻어 빚을 막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영업이 끊기는 순간 엄청난 빚더미가 몰아닥치니, 어찌됐든 마지막 순간까지 가속페달을 밟을 수 밖에 없었던거죠.
김 회장의 마지막 실책 가운데 하나는, 혹 `대마불사'를 의식하지 않았나 하는 점입니다. 이처럼 회사의 자금사정이 하루하루가 다르게 목을 졸라 오는데, 김 회장은 이를 `한 큐'에 만회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대우차와 제너럴모터스(GM)의 제휴였죠. 이른바 GM에게 지분의 50%를 넘기고 여기에서 돈을 챙겨, 이를 통해 자금운용에 숨통을 틔게 하려 했던거죠.
대우는 처음에 50% 지분에 경영권 없이 50억달러(약 5조원이 넘겠죠?)를 GM쪽에 요구하다, 나중에는 요구액은 점점 낮아지고, 경영권까지 넘기겠다는 선언까지 하지만, 절대 손해보지 않으려는 GM이 협상을 미루고 미뤄 결국 대우가 먼저 쓰러지고 맙니다. 김 회장은 대우 워크아웃 이후, “GM 협상실패가 대우 몰락의 원인이었다”는 말을 할 정도로 이에 대해 쓰린 기억을 안고 있습니다만, 대우 몰락의 책임은 여전히 GM이 아니라, 김 회장과 대우 경영진들에게 있는거겠죠?
3)커뮤니케이션 부재
김우중은 다른 재벌 오너들보다는 덜 권위적이라는 인상을 심어줬던 게 사실입니다. 물론 `카리스마'는 별도로 하고요. 김 회장은 또 자식들의 나이가 어려서이기도 했겠지만, 다른 그룹들과는 달리 그룹 내에 일가친척 피붙이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이는 김 회장이 특별히 단속한 부분이라고도 합니다. 김 회장은 또 평소에 자신이 은퇴하고 나면, 자신의 지분을 자식들이 아닌, 대우에 그대로 물려주고, 전문경영인 다수가 공동운영하는 선진적인 경영방식을 보여주겠다고 공언한 바 있습니다. 대우가 계속 존속했다면, 그러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점 등 때문에 김우중에게는 족벌의 폐쇄적인 권위가 드러나진 않았지만, 김우중은 자신이 워낙 많이 알고, 자신이 회사 구석구석을 꿰뚫고 있기에 부하 직원들이 제대로 말을 못했습니다. 그리고 김우중은 “안된다, 어렵다”라는 말을 극히 싫어합니다.(이는 다른 그룹의 창업세대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그러면 “너는 왜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느냐”고 닥달합니다. 이러다보니, 대우에는 김우중과 `리틀 김우중'만이 가득차게 됐습니다. 다들 생각이 똑같다보니, 대우가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고 있을 때도 김우중 회장을 제외한 다른 경영진들이 이를 제어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부채질한 측면이 있는 겁니다.
4)불투명한 회계, 의심스러운 김우중의 도덕성
98년 대우그룹을 출입할 때였습니다. 당시 쌍용차 인수, 수출 드라이브 등에 대해 일부에서 막연하게 `대우의 무리수'를 지적하는 이들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때 대우가 자랑스레 내세운 것이 “지난해 34개 계열사 가운데 적자가 난 기업이 단 한 곳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잘 믿기지 않았지만, 경제부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데다가 `설마 회계 사실까지 속일려구'라는 순진한 생각에 `그런가 보다'하고 멍청하게 생각했었죠.
그런데 이번 수사에서 수면 위로 드러나더군요. 흑자를 내도록 분식회계를 했었다구. 사실 분식회계를 의심하게 된 것은 98년 대우가 워크아웃에 들어가기 이전에, 대우차의 매출액, 부채, 순이익 등을 뽑아본 적이 있었는데, 대우차는 신기하게도 90년대 이후 매년 흑자가 1억~2억 사이였습니다.
그때 저는 `아, 이거 분식이구나'라는 생각이 번득 들었습니다. 물론 증거는 아무 것도 없지만 자동차 경기와 무관하게 흑자가 그렇게 일정하게(마치 흑자 내기 위한 흑자처럼) 난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쟎아요? 대우차가 비록 비상장사이긴 합니다만, 뭘 믿고 그렇게 담대한 분식회계를 했는지 참 의아합니다. 재무제표를 정확하게 꿰뚫지 못하는 저같은 사람도 그 숫자만 보고, 금방 감이 왔는데, 당시 정부 관계자들이 몇 년이 지나도록 몰랐다는 것은 믿기지 않군요. 왜 가만히 있었는지.
결국 대우는 돈을 빌리려면 회사의 신용도가 좋아야 하고, 그럴려면 회사가 흑자를 내야하고, 그래서 분식회계를 한 겁니다. 대우는 또 세계경영 과정에서도 폴란드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투자한 곳이 없다고 하는 수사결과가 나왔습니다. 당시 대우의 세계경영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저와 사석에서 나눈 이야기에서 “김 회장이 루마니아에 당시 내수시장의 5배에 이르는 생산능력을 지닌 공장을 세우려 했다.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아무리 시장의 성장성을 본다고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터무니 없는 투자였다. 자금을 더 많이 빌리기 위한 방법이었을 뿐이다. 김 회장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김 회장을 파렴치범으로 폄하하기는 어렵고, 그도 분식회계를 통해 자기만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김 회장은 어린 시절의 일화에서도 드러났듯이 목적을 위해서는 모든 수단이 정당하다는 일종의 `마키아벨리적' 사고방식에 젖어있었던 듯 합니다.
지금 김우중 회장은 런던 금융센터(BFC)의 비밀계좌를 통해 10조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비자금의 규모, 사용처 등은 쉽게 밝혀질 것 같진 않습니다.
4.김우중, 우리 경제의 어두운 거울
김 회장은 대우에서 물러난 뒤, 사석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피해자다. 결국 미국의 자동차업체들이 대우차가 더 크기 전에 나를 밀어낸 것이다. 우리가 포드를 꺾고 폴란드 FSO를 인수한 이후부터 이런 흐름이 노골화됐다”는 말을 한 바 있습니다. 또 “정부(또는 은행)가 조금만 도와줬으면 될 것을”이라는 회한을 터뜨린 바도 많습니다.
대우의 역사는 한국경제의 어두운 한 단면을 그대로 비춰주기도 합니다. 희랍신화에 보면, 새의 날개를 촛농으로 어깨죽지에 붙이고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다 태양 빛에 가까워지자, 촛농이 녹으면서 추락해 죽고만 이카루스의 이야기가 나오죠. 저는 김 회장이 마치 그 이카루스와 비슷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입니다.
아직 뜨겁지 않은 여명의 기운 속에선 그는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었죠. 그러나 태양빛이 점점 뜨거워졌다면, 그는 산중턱에 잠시 내려 다른 방안을 강구해야 했습니다. 태양빛에도 녹지않는 가죽끈을 붙이든지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잠시 산중턱에 내려앉는 게 싫어 그저 `오르고 또 오르다' 결국 비참한 마지막을 고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지나친 부지런함과 승부욕이 화를 부른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경제가 김우중의 몰락을 보고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우중 회장께서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촉구합니다. 어차피 엉킨 매듭은 이제 김 회장이 아니면 풀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한편으론 비록 그가 우리 경제에 큰 짐을 얹은 건 사실이지만, 그의 지난 삶을 돌아볼 때, 그에 대한 여론비판이 너무 혹독하지만은 말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변명>제가 지금 미국출장 중에 이 글을 쓰느라, 별다른 자료없이 그저 기억에 의존했습니다. 따라서 구체적인 수치 등을 제대로 언급하지 못하는 등 글이 부실한 점을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마 연도라든지, 일부 작은 사건들이 조금 틀린 게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전체적인 큰 틀을 봐주셨으면 합니다. 혹 제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게 있다면, 지적해 주십시오. 다음번 이메일에 정정할 사실이 있으면 정정하겠습니다. 그리고 김우중, 김 회장 등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 대한 지칭은 혼용해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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