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권혁철 기자의 하니메일입니다
10일치 <조선일보> 는 `드디어' 미디어면을 신설했다는 안내를 1면에 실었습니다. 저는 지난해 6월22일치 <미디어오늘>에 아래와 같은 글을 싣어 조선일보도 미디어면을 만들 것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너희는 털면 먼지 안나냐”
전화벨이 울리자 “한겨레 여론매체붑니다”라고 공손하게 전화기를 들었건만 얼굴도 보이지 않는 통화자는 대뜸 욕설부터 늘어놨다. 독자전화의 요지는 `한겨레가 뭐가 잘났다고 다른 언론을 신나게 비판하느냐. 너희는 털면 먼지가 안나느냐’였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한겨레 여론매체부는 88년 창간이래 매체비평을 해오고 있다. 최근 대한매일 등이 매체비평 대열에 합류하긴 했지만 동업자 비판을 금기시하는 침묵의 카르텔이 지배하는 언론판에서 한겨레 여론매체부는 튈 수밖에 없다. 언론계 선후배들도 한겨레 여론매체부를 `신문 조지는 곳’으로 알고 있는 정도니 일반 독자들이 보기엔 동업자를 씹어대는 한겨레가 얼마나 이상하게 보이겠는가.
`너희는 털면 먼저 안나느냐’는 힐난조로 묻던 그 독자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한겨레도 털면 당연히 먼지가 난다. 한겨레가 무슨 지고지선의 도덕적 성인군자들이 모인 결사체도 아니다. 허점과 모순 투성이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니 비판받을 점이 많다. 그러나 이런 한겨레가 무슨 자격으로 동업자를 비판하느냐는 논리엔 동의하지 않는다.
다른 동업자를 비판하는 한겨레를 욕할게 아니고 동업자의 잘못을 알고도 눈감는 다른 언론을 비판해야 한다. 조선일보나 중앙일보 등 다른 언론들도 매체비평란을 만들어 한겨레를 비롯한 다른 동업자들을 활발히 비판했으면 좋겠다. 다른 곳에선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는 견제와 균형의 논리가 언론판에선 왜 비껴가는가. 이 침묵의 카르텔을 깨기위해 한겨레는 매체비평의 주체에서 대상으로 기꺼이 나설 뜻이 있다.”
말 나온 김에 이 기회를 빌어 언론계 선후배들에게 부탁드린다.
"빨리 지면에 매체비평란을 만들어 장마철에 먼지나도록 한겨레를 신나게 두들겨주기 바랍니다.”
물론 조선일보가 제 말을 듣고 미디어면을 만들었 리가 없었겠지만, 어쨌든 반가운 마음으로 미디어면이 있다는 5면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첫' 미디어면을 보는 순간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였죠. 기사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래와 같은 제목의 기사였습니다.
한겨레-대한매일 등 5개 97~99년 법인세 납부 `0'
95~99 법인세 조선 633억, 중앙 426억, 동아 141억 납부
또 기사 본문에서는 한겨레가 세금도 창간이후 법인세를 한푼도 내지 않았다는 내용도 실려있었습니다.
조선일보가 이 기사를 통해 주장하고 싶은 핵심은 같은 날 신문에 실린 `조선만평'에 정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세금 한푼 안내고 부채 제일 많은 신문들이 여지껏 언론개혁 운운 하는 코미디언 이주일을 `웃기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런 조선일보의 주장은 전후 사정을 정확히 모르는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먹힐 법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한겨레> 게시판과 독자 투고란에는 조선일보의 기사를 진실인 것처럼 믿은 채 `세금도 안내는 것들이' 하는 비아냥의 글과 조선일보 보도의 사실 여부를 밝혀달라는 독자의 글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독자들에게 한겨레가 부도덕하고 모순덩어리 집단이란 인상을 주려는 조선일보의 기획의도가 성공한 셈이죠.
제 목 한겨레 세금 0
몇년동안 세금한푼 안낸 신문사 새끼들이 떠들어대며 언론 세금조사해야 된다고 하더니 지금까지 세금 한푼 안낸 새끼들이 이렇게 떠들어댔으니 할 말이 없다 나쁜 새끼들. .
제 목 이것이 사실이 아니길
오늘자(10일)자 조선일보 1면에 실린 기사는 실로 나에게 충격이었다. 그기사의 요지는 일부 언론사가 세금을 탈루했다는 것인데 그중엔 한겨레 신문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겨레 신문사는 88년 창간이후 지금껏 한푼의 법인세도 내지 않았다고 한다.
진정 이것이 사실인가? 그것이 사실이라면 과연 한겨레 신문은 자신들이 그토록 부르짖는 개혁대상 언론사와 무엇이 다른가? 혼자서 고고하고 깨끗한척 하면서 다른 언론이 누리는 특혜를 어부지리로 얻은것이 아닌가.
분노한다.지난 87년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동아일보에 났던 광고를 보고 전재산이나 다름없던 70만원을 한겨레에 바쳤던 창간주주로서 느끼는 이 배신감. 한겨레는 말하라. 그것이 사실인지를...
한겨레가 상법상의 회사이고 법인인 이상 법인세를 비롯한 세금을 내지않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부당한 특혜를 누리면서 무엇을 위해 싸우는 신문사라니..'
단돈 50억원, 그것도 세계 최초로 국민주라는 방식으로 탄생한 한겨레를 남들은 기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오늘의 한겨레를 만든건 기적이 아니다.
그건 오직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화를 열망하던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된 것이다. 그런 한겨레의 법인세 탈루는 죄악이고 배신이다.
일단 조선일보 기사에 언급된 내용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금 한 푼 안내고 부채 제일 많은 신문'이란 주장은 전혀 진실이 아닙니다.
`사실이지만 진실은 아니다' 말 장난같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숨겨진 진실이 보입니다. 조선일보는 자기들 입맛에 맞는 사실만 선택적으로 골라 인용해 독자들에게 진실과는 한참 거리가 먼 엉뚱한 결론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먼저 한겨레가 88년 창간이후 법인세를 내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독자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특혜를 받아 법인세를 내지 않거나 세금을 탈루하지 않았습니다.
법인세법에 따르면 법인세는 매출액에 대해 부과하는 것이 아니고 당기 순이익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입니다.
한겨레는 창간이래 몇 해만 흑자를 기록하고 나머지 년도는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회계연도에 적자를 봐서 순이익을 내지 못한 기업에 법인세는 부과되지 않습니다. 또 흑자를 보더라도 관련 세법 규정에 따라 몇가지 요건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법인세가 면제됩니다.
다시 말해 한겨레의 경우는 (세법에 따라 순이익을 내지 못한 법인에) 법인세를 부과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는 탈루도 탈법도 아닙니다. 내야 될 세금을 돈이 있으면서도 안낸 것이 아니라 내지 않아도 될 세금을 내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법인세 면제를 신문업계나 한겨레만 받았다면 부당한 특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신문업계는 말 할 것도 없고 다른 업종들의 모든 기업들도 순이익을 내지 못하면 법인세를 내지 않습니다.
조선일보는 이런 객관적 근거들을 무시하고 한겨레가 법인세를 한푼도 의도적으로 내지 않는 탈세집단이나 특혜집단 인양 몰아갔습니다.
그리고 기업이 내는 세금이 법인세 하나 뿐이 아닙니다. 한겨레는 법인세를 내지 않지만 다른 세금들은 내고 있습니다.
한번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우리 현실에서 99년 기준으로 매출액 838억원인 한겨레신문사가 세금 한푼도 내지 않는 영업을 하고 신문을 발행할 수 있습니까.
한겨레는 `내지 않아도 되는' 법인세를 내지 않을 뿐 법에 따라 `내야 하는' 다른 세금은 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겨레가 법인세를 내지 않는 것과 세금 한 푼 내지 않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중간 말만 살짝 바꿔 독자들을 헷갈리게 하는 수법이죠. 조선일보가 즐겨 사용하는 교묘한 왜곡보도의 전형적 사례입니다.
그리고 `부채 많은 신문사들이 언론개혁 운운한다'고 했는데, 그럼 부채가 많은 신문사들을 한번 순서대로 나열해 볼까요.
99년 기준입니다.
한국일보(5590억원)> 중앙일보(3683억원)> 동아일보(3602억원)> 대한매일(2339억원)> 조선일보(1421억원)> 경향신문(1328억원)> 세계일보(1246억원)> 한겨레(433억원)> 국민일보 (206억원)> 문화일보(134억원)
부채(액수)로 치면 조선일보가 한겨레의 3배가량 됩니다.
각 신문사 99년 부담한 이자비용만 따져 보면 이렇습니다.
중앙일보(311억원)>동아일보(265억원)> 대한매일(150억원)> 세계일보(145억원)>경향신문(118억원)> 조선일보(91억원)> 한겨레(23억원)> 국민(1억8천만원)
한겨레가 조선일보보다 부채액이 휠씬 작지만 부채비율이 높은 것은 자본금이 작기 때문입니다. 6만3천여 주주들이 한푼 두 푼 모은 돈이 한겨레의 자본금이 되었습니다. 70년 넘는 역사를 통해 온갖 방법으로 수천억원의 자본금을 축적한 조선일보나, 재벌 그룹이나 종교집단의 재정 지원으로 손쉽게 엄청난 자본금을 모을 수 있었던 신문사들과 88년 창간된 한겨레는 출발부터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한겨레는 적자를 봤을까요. 세상에 적자보고 싶어 적자를 보는 기업은 없습니다.
조선일보나 중앙일보 같은 거대신문들은 막대한 판매촉진비를 쏟아부으며 공짜신문, 경품 제공 등 무차별 물량공세를 펴며 신문시장을 싹쓸이하는 작전을 펴고 있습니다.
경품 때문에 조선일보를 본다고 하면 독자의 수준을 무시하는 발언이라고 화를 낼 분이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모든 조선일보 독자들이 경품 때문에 신문을 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논조가 마음에 들어, 어떤 사람은 다양한 정보가 좋아, 어떤 사람은 그냥 보던 신문이니까, 어떤 사람은 경품 주니까 등 구독동기는 다양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경품이나 공짜신문은 독자 확장의 아주 중요한 요인입니다.
한국언론재단이 최근 낸 <수용자 의식조사>란 책에 보면 이런 조사결과가 있죠. 현재 구독하는 신문의 구독기간을 조사했더니 2년미만(28%)> 5년미만(20.8%)> 1년미만(20.2%)> 3년미만과 10년미만 각각 16.8%로 나와 있습니다.
1년미만 20.2%와 2년미만 28%입니다. 이 말은 2년안에 (조선일보를 포함한 평균적으로 모든 신문의 )독자의 48%가량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전체 신문 구독자가 정해진 신문시장에서 조선이 중앙 독자를 뺏어오고 중앙이 동아 독자를 뺏어오고 동아는 조선 독자 뺏고 등등 물고 물리는 혼전이 되풀이 된다는 것이죠. 한마디로 제로섬게임입니다.
1999년 한국신문협회 공정경쟁심의원회의 `공정경쟁규약 위반사례'에 따르면 독자의 뜻과 관계없이 신문을 넣은 강제투입은 22개 신문사 3290건, 경품제공은 196건, 장기 공짜신문 제공은 98건이 신고 접수됐습니다.
강제 투입은 중앙일보가 1040건으로 가장 많았고 조선일보 857건, 동아일보 675건이었다. 경품 제공은 동아일보 55건, 중앙일보 46건, 조선일보 44건 순이었습니다.
거대언론들은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신문시장에서 불공정한 행위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어떤 언론학자는 한겨레와 거대신문과의 시장 경쟁 상황을 `대학생과 유치원생의 싸움'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원칙적으로 `주식회사' 한겨레는 이익을 내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한겨레신문사가 제대로 이익을 내지 못한 것을 불공정한 외부조건에만 돌릴 수 없습니다. 한겨레 구성원들이 좋은 신문을 만들기 위해 더 노력하고 분발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을 부인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더구나 조선일보 같은 신문으로부터 `세금도 한푼 내지 않은 신문이 언론개혁을 주장한다'는 황당한 주장의 빌미를 주는 일이 없기위해서라도 더 이상 적자를 내지 말아야 하겠지요.
조선일보는 자신들의 납세 실적을 들먹이며 신문업계 법인세를 가장 많이 냈다고 자랑합니다. 솔직히 부럽기도 했지만 `할말을 하는 신문임을 자처하는 조선일보가 어디 할 자랑이 그리 없어서 고작 돈자랑인가 하는 측은한 생각도 납니다.
`법인세 많이 낼수록 좋은 기업'이란 등식을 좀 비약해 볼까요. 조선일보가 아무리 법인세 많이 냈다고 해도 삼성전자가 낸 법인세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에 불과합니다. 비록 업종은 다르지만 삼성전자가 조선일보보다 훨씬 나은 기업이란 주장의 근거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법인세를 많이 내고 적게 낸 것이 아니고 법에 정한 회계처리상 내야 할 법인세를 제대로 냈는지 하는 문제입니다.
저는 `조선일보는 법인세 많이 냈다'는 조선일보 기사를 읽으며 며칠전 동네 놀이터에서 보았던 우울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제 아들 또래의 꼬마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자기 아파트 평수가 넓다고 자랑하고 있더군요. 저는 어린 녀석들에까지 아파트 평수와 행복이 비례한다고 믿게 만든 어른들의 이기심과 탐욕이 미웠습니다.
`돈 많이 번 놈이 제일이다. 조선일보는 법인세 제일 많이 낸 좋은 회사다'는 물량주의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하는 조선일보의 기사와 `행복은 아파트 평수와 비례한다'는 철부지들의 졸부적 믿음이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조선일보 미디어면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한겨레를 비판하려면 돈 문제같은 `쫀쫀한' 이야기 대신 한겨레의 기사 논조에 대한 문제제기 같은 `정공법'을 취했으면 합니다.
이왕 말 나온 김에 한겨레 동료들부터 `이적행위'란 비판을 받을 각오를 말씀드리지요. 한겨레를 가장 아프게 비판하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진보를 표방하는 한겨레 지면이 얼마나 충실하게 진보적인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는지를 검증해 비판하세요.
`한겨레가 진짜 진보적인가'란 문제를 조선일보 지면에서 논리적으로 체계적으로 비판하세요.
이를 위해서 진보란 역사적 내용과 성격, 한국사회에서 진보란 무엇인가, 한국사회에서 진보언론의 위상,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대한 관점과 논조, 노동과 생태주의의 충돌 동북아 문제 정보화와 인권 등 많은 문제를 공부하고 분석해야 할 겁니다.
그런데 조선일보 안에 이런 작업을 제대로 할만큼 진보와 언론문제를 공부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있는 지는 알 수 없군요. 어쨌든 한겨레의 아킬레스 건을 제보하니 조선일보가 `능력있으면' 마음껏 비판해보세요.
제 말은 한겨레와 조선일보가 정연한 논리를 바탕으로 진보와 보수의 다른 관점에서 상대방 기사를비판하는 생산적인 논쟁을 벌이자는 것이죠.
부디 조선일보 미디어면이 세무조사가 끝나도 존속되면서-과연 될까?- 본격적인 매체비평의 세계에 동참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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