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장철규기자의 하니메일입니다
오늘은 가벼우면서 까다로운 물음으로 편지를 시작할까 합니다. 우선 소유권 이전을 업으로 삼고 있는, 반자본주의적인 도선생들이 직업활동을 하기에 가장 힘든 곳은 우리 땅 어디일까요? 그리고 도선생 잡는 걸 업으로 삼고 있는, 체제 수호의 최선봉장인 경찰이 본업은 팽개친 채 우르르 몰려들어 엉뚱한 일을 하는 곳은 또 어디일까요?
잘 생각해 보셨나요? 정답은 미국 대사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세종로에 있는 대한민국 주재 아메리카합중국 대사관입니다. 왜 그런지 이제 말씀드리죠.
서울 광화문 지하보도를 나오면 이순신 장군동상을 보기도 전에 그를 닮은 경찰을 먼저 보게 됩니다. 아마 이렇게 일년 365일 마르고 닳도록 경찰이 경비를 서는 곳은 광화문 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게 마주한 경찰의 모습은 광화문으로 향하는 내내 사라지질 않습니다. 지하도를 나와 조금 더 올라가면 미국 대사관 담벼락 한쪽에 늘 서있는 경찰버스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복과 사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종일 대사관 앞을 지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왔다갔다 하면서 한창 나이의 젊음을 죽이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미대사관 앞을 지나본 경험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대사관이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살펴보셨나요? 그리고 정문 담을 따라 심은 가로수를 찬찬히 감상해 보신 적은요? 아마 그런 경험이 거의 없을 겁니다. 그냥 지나가기에도 주눅이 들만큼 경비가 워낙 삼엄한 곳이니까요.
 
주한 미국대사관 앞 가로수는 이런 꼴을 하고 있습니다. 절반의 족쇄만 풀린 모습이 대한민국과 아메리카합중국의 관계를 상징하는 듯합니다. 게다가 우리 젊은이들이 미국 대사관을 지키는 데 청춘을 바치고 있습니다.
대사관 건물 앞 가로수들은 만화에나 나올 법한, 사나운 개들이 맨 목걸이처럼 쇠꼬챙이로 된 족쇄를 차고 있습니다. 지난 해 6월에 미국은 50년 된 은행나무 8그루, 20년 된 잣나무 3그루, 플라타너스 1그루 등 모두 12그루의 나무에 각각 2개씩 족쇄를 채웠습니다. '기습 시위대가 담을 넘지 못하게 하겠다'는 이유를 대면서 말이죠.
그런데 2000년 6월이면 정상회담으로 남과 북에 사는 모든 이들이 감동먹던 때인데, 그러한 긴장완화가 미국의 이익을 해친다고 판단했던 걸까요?
대사관 앞 가로수는 엄연히 대한민국 소유인지라 서울시는 시설물 훼손행위를 그만두고 족쇄를 철거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 말에 기죽을 그들이 아니겠죠, 눈 가리고 아웅하듯 10월쯤에 족쇄 1개씩만 철거하곤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담당직원이 공문도 보내고 직접 찾아가 철거하라고 요구해도 '담장 보완공사를 끝내고 없애겠다'는 말만 녹음 테이프처럼 되풀이하고 있답니다. 지금도 뾰족한 쇠창살이 박혀있는 담장을 어떻게 '보완'할지 지켜볼 일입니다.
식목일인 지난 5일 아메리카 대사관 앞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이 날 정오께 '나무를 사랑하는 봉사모임' 시민들이 대사관 앞에 모였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죠. '식목일에 나무를 심는 것도 좋지만 심은 나무를 잘 가꾸는 일도 중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멀리 제주도에서 올라오신 분도 있었습니다, 교통사고로 불편한 몸 때문에 목발을 짚고서.
하지만 그들은 쇠 족쇄를 자르는 대신 자신들 앞을 막고 나선 경찰과 몸싸움하느라 힘을 다 쓰고 말았습니다. 나라 재산을 지키겠다는데, 그리고 관공서가 하지 못한 일을 시민이 대신 하겠다는데 경찰이 이를 막고 나선 것입니다.
젊은이들과 한창 실랑이를 하다 지칠 즈음 종로경찰서 간부가 현장에 나와 대표자를 만났습니다. 서로 밀고 당기는 얘기 끝에 사흘 동안의 말미를 갖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멀리서 뒷짐지고 그 소동을 처음부터 지켜보던 미 대사관 직원들도 점심을 먹으러 발길을 돌리고 다시 대한민국 주재 아메리카합중국 대사관 앞은 조용해졌습니다.
볼일 보고 밑 안 닦은 찝찝한 기분으로 돌아서는 제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쇠꼬챙이 족쇄가 미국에 쓸모가 있는 동안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사흘이 아니라 삼 백일이 지나더라도 우리 요구를 들어 없애지는 않으리라고.
 
식목일을 맞아 늦었지만 우리 나무를 잘 돌보겠다는데 그냥 두랍니다. 그런데 쇠꼬챙이 색깔을 처음 사진과 비교해 보면 '세심'하게 흰 나무엔 흰색, 검은 나무엔 검은 색을 칠한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무 열두 그루가 문제가 아닙니다. 아메리카 대사관이 문제가 아닙니다.
한미주둔군 지위협정(우리에게 아주 불평등하고 불편한 협정인데도 편안함을 상징하는 '소파'라고 불립니다)에 따라 주한 미군이 사용하는 우리 땅은 전용지역, 지역권 지역, 임시 지역 모두 합해 93곳에 7445만 평이라고 합니다.
서울 용산을 비롯한 21개 미군 기지, 경기도 화성군 매향리를 비롯한 12개 훈련장, 그리고 기지와 훈련장을 겸한 60곳을 미군이 쓰고 있습니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87배나 되는 땅을 사용료 한 푼 내지 않고 공짜로 말입니다. 그 가운데 상당부분이 개인 소유의 사유지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개인 재산을 거의 반강제적으로 점령한 미군이 어떤 일을 하는 지 봅시다.
서울 중심에 자리잡은 96만 평의 용산 기지-지난 90년 합의각서을 맺어 96년까지 모두 이전하기로 했던 곳입니다. 그에 따라 91년에 예상 이전비용을 17억 달러로 산출해 국방부에 제시했던 미국은 해가 바뀌자 95억 달러라는 터무니없는 수정 금액을 내놓아 기지 이전 문제를 교착 상태에 빠뜨리더니, 94년 '북한 핵 위기' 이후로 이전 문제는 사실상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약 2백만 평에 이르는 경기도 오산 미군기지-미 제 7공군 사령부가 있는 이 기지는 태평양지역에서 가장 큰 공군 기지입니다. 3만 7천여 주한 미군과 그 가족들은 이 곳을 통해 우리 나라에 들어오거나 나갑니다. 언제, 누가, 무엇을 가지고 드나드는 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군산 공군 기지-미 제7공군 제 8전투비행단이 1백 20만 평의 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 배치된 78병기 분견대의 핵 무기 호송 등의 임무로 미루어 보아 핵 저장시설이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24시간 이루어지는 출격 연습으로 주민들은 50년 이상 소음 공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민간 항공기들은 공짜로 땅을 쓰는 미군에게 돈을 내고 활주로를 쓰는 '적반하장'의 현장입니다.
부산시 범전동, 연지동 일대의 캠프 하야리아-16만 8천 평의 땅에서 그들이 하는 일은 왜관 이남의 미군들에게 공급할 빵을 굽는 일 뿐입니다, 군사적 목적으로.
대구 미군 기지-대구시 남구의 22만 3천 평을 차지한 캠프 워커는 하사관 숙소가 밀집한 주거지역 및 종합 레크리에이션 센터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이천 2동에 있는 5만 8천 5백 평의 캠프 헨리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다 있는 사실상 '미국의 한 주'입니다.
그 밖에도 아시아 최대의 군수보급 기지인 경북 왜관의 캠프 캐롤(97만 평), 잦은 기름 유출 사고로 심각한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경북 포항의 유류 저장소 캠프 리비, 유격장과 레크리에이션 센터를 겸한 제주도 기지 등 미군 기지와 훈련장, 탄약고 등은 이 땅 곳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인천 부평에 자리잡은 미군 기지 '캠프 마켓'입니다. 기지 안에는 군용 트럭을 비롯해 승용차, 가구, 침대 등 전국의 주한 미군이 버리는 폐품들이 가득 쌓여 처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땅은 뉘 땅일까요?
-16만 1천 평의 인천 기지에 상주하는 미군은 몇 명일까요?-
한겨레 장철규 기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