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이정우 기자의 하니메일입니다
“신문의 날에 신문기자는 놀고, 방송의 날에 방송기자는 특집하느라 더 바쁘다.”라는 우스갯 소리가 있습니다.
한데 지난 7일 신문의 날, 저는 제법 바빴습니다.사진부 당직 근무를 서면서, 몇 꼭지의 일이 있었거든요.그 중 가장 중요한 일은 ‘신문개혁국민행동’이라는 시민단체 연대기구가 벌인 ‘독자주권의 날 선포식’을 취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행사는 서울 인사동 거리를 새단장하면서 만들어진 ‘남인사마당’이라는 조그만 노천극장에서 열렸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저는 제법 큰 기대를 했죠.“참여연대, 경실련, 언개련, 민주노총 등 150 여개의 내로라하는 시민, 노동 단체들이 연대해 벌이는 행사이니 만큼,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꺼야.”하면서 말이죠.“5. 18 주간에 광주 금남로 인파만큼 모이면 어떻게 하지, 어디 높은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그 열띤 함성을 한 눈에 담아내야 할테데....” 이런 하릴없는 걱정까지 했답니다.
한데 막상 인사동에 도착해 저는 저으기 실망했습니다.아주 조촐하게 모여 계시더군요.어쨌든 마당놀이, 노래공연, 독자대표들의 주권 선언 등의 행사는 아주 아기자기하게 감동적으로 치러졌습니다. 그 몇 장면을 보시죠.
집회 첫번째 순서로 '조폭언론'을 상징하는 건달로 분장한 마당놀이패가 신문을 상징하는 펜을 들고 나와 조폭언론을 풍자하자 참석자들이 폭소를 터뜨리고 있다
독자 대표로 나온 시민 한쌍이 독자주권선언을 낭독하고 있다.
참석자들이 "신문개혁, 국민의 힘으로"라는 구호를 외친 뒤 풍선을 날리고 있다.
하지만 행사장 주변에는 무심히 지나쳐 가는 시민들도 꽤 많았습니다. 이렇게 바쁘고 무심한 발길로.......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주변에서 언개련 회원들이 나눠준 신문개혁 유인물 위로 시민들의 발길이 지나치고 있다.
제가 이런 모습을 보여드리는 까닭을 이제부터 말씀드릴께요.
저는 69년에 초등학교를 들어갔습니다. 그 때, 저희 집이 서강대 근처의 마포구 신수동에 있었거든요.학교를 다녀오는 길에 대학생 형님들이 시위하는 모습을 자주 보곤 했죠.
제가 4학년 쯤 됐을 때,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서 서강대 정문 쪽으로 갔습니다.경찰관 아저씨들이 잔뜩 늘어서 있고, 대학생 형님들은 ‘독재 타도’, ‘유신 철폐’ 뭐 이런 소리들을 외치더군요.
한 순간 경찰 아저씨들이 학교를 향해 ‘와’ 소리를 지르며 막 뛰어가더군요. 형님들은 돌을 던지며 도망가구요.그러더니 좀 뒤, 경찰관 아저씨들이 형님들을 짐승 다루듯이 막 때리면서 끌고 오더라구요.걸어오면서 때리고, 트럭에 실으면서(?) 또 때리고, 트럭에 올라가 또 때리고.......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심하게 때리는 모습을 처음 본 저는 기절할 듯이 놀라 집으로 쏜살같이 도망쳐 왔습니다. 집에 와서 어머니께 이 이야기를 했다가 아주 혼구멍이 났습니다. 저녁에 아버지가 돌아오시니 어머니가 제가 한 짓을 이르시더군요.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시면서 “다시는 그런 곳에 얼씬도 말아라.”고 하시며 야단을 치셨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셨다고 텔레비전에서는 하루종일 조곡이 나오고, 학교가 온통 뒤숭숭했습니다.노 아무개 장관의 아들이 학교에 오지 않았다며, 선생님들이 걱정을 하시구요.저희 학교는 여의도에 있었는데, 장관 아들, 장군 아들 이런 친구들이 좀 있었거든요.
저도 눈물이 찔끔 났습니다.제가 태어나서 이 때까지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 한 분 뿐이었는데, 그 분이 돌아가셨다니........할머니께서도 나랏님이 돌아가셨다며 꺼이꺼이 우시더군요.
그런데, 고 3이 되니까 더 신기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대학생 형, 누나들이 끝이 안보일 정도로 긴 행렬을 지어, ‘군부 독재 타도’라고 적힌 머리띠를 한 채 어깨동무를 하고 뛰어가더군요.학교 복도 유리창으로 우리 고 3 친구들은 시험 준비도 잊은 채 넋을 잃고 바라봤습니다.
누나만 네 명인 저는 집에 와서도 대학생 누나들로부터 시위 이야기를 듣느라 혼이 쏙 빠져나가곤 했습니다.저희들끼리 방에서 쑥덕이고 있자니, 아버지가 누나들을 부르셨습니다.
“너희는 절대 데모하는데 휩쓸리지 마라. 우리 집 전체가 풍비박산난다. 너희 큰아버지가 6.25때 납북되셨는데 이북에서 제법 높은 자리까지 하셨나 보더라. 우리 집은 이사만 가도 파출소에서 나오고, 한번은 아버지도 작은 아버지와 함께 끌려가서 엄청나게 맞고 나왔다.”
어머니가 옆에서 거드셨습니다.
“얼마나 맞으셨던지 런닝셔츠가 피범벅이 돼 가위로 잘라서 벗겨드렸단다.”
아버지가 다시 한번 힘주어 말하셨습니다.
“너희는 절대 데모하면 안돼. 우리 식구 다 죽어!”
누나들이 합창하듯 소리쳤습니다.
“우리는 그런 짓 절대 안해요.”
한데 저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려대에 다니던 둘째 누나가 매일 운동화를 신고 나가고, 저녁에 들어오면 발냄새가 심하게 났습니다.무슨 여자가 발냄새가 나도록 뛰어다닐 일이 있었겠습니까?저는 어깨동무하고 뛰어다니던 형, 누나들이 거의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이었고, 그렇게 뛰어다니면 발냄새가 많이 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 해인 81년에 저도 대학에 들어갔습니다.대학에 들어가니 형사들이 신문에 무전기를 말아들고 귀에는 리시버를 꽂고 벤치에 앉아 있더군요.
낯선 학교 생활에 채 적응도 되지 않았을 때, 빈 수업시간에 도시락을 먹으려고 구내식당으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어디선가 호르르륵하는 호각소리가 나자, 경상대 옥상에 확성기를 든 학우가 나타났습니다.“전두환 독재 타도하고, 민주주의 쟁취하자”라고 외치더군요.한데 그 구호를 세 번도 채 외치기 전에 옥상에 경찰관들이 들이닥쳤습니다. 사지가 붙들린 채 끌려가더군요.
곧이어 이번엔 학교 본관 건물에서 빨간 야구모자를 쓴 여학생 한 명이 뛰어나왔습니다.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얀 여학생이었는데, 그 가냘픈 여학우가 ‘독재 타도, 독재 타도’라고 외치며 유인물을 뿌리면서 제 앞으로 달려오는 것이었습니다.그러자 형사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었습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그 여학생을 가려주려고 형사들 앞을 가로막았지만 한 방에 나가떨어졌습니다.순식간에 모자가 벗겨져 나가고 머리채를 잡힌 여학생은 마구 두들겨 맞더군요.꼭 ‘심은하’처럼 생겼는데 말이죠.그 여학생이 형사들에게 끌려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무 짓도 할 수 없었던 제 자신에게 더욱 화가 났습니다.
이 때부터 경찰이 그렇게 무섭기만 하지는 않더군요.그리고 그들을 ‘아저씨’라 부르지 않고, ‘짭새’라고 부르게 되더군요.그 뒤로 간간이 돌도 던지고, 어깨동무하고 ‘훌라송’도 부르고 “꽁지가 빠져라”하고 도망도 치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군에 갔다가 85년에 복학을 했습니다.학교에 상주하고 있던 경찰이 물러가고 없더군요.한데 어느 날, 중앙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경찰이 들어왔습니다.시위하다 도망친 학생들을 잡겠다면서요.
학생들이 항의를 하자 이른바 짭새들이 학생들을 패더군요.도서관에 있던 많은 학생들이 한꺼번에 덤비려하자 일대 아수라장이 됐습니다.짭새들이 책상 위로 뛰어 다니면서 마구 휘두른 주먹에 안경이 날아가고, 여학생들이 울고.......
그 다음 날, 복학생들이 모두 예비군복을 입고 학교에 왔습니다. 복학생들이 앞장을 서겠다는 거였죠.
저는 입학한 이래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한 것은 처음 봤습니다. 금잔디광장, 대성로가 학생들로 가득 찼더군요.
예비군복을 입은 복학생들이 무려 천여 명은 되었는데 저는 국문학과라 과별로 서다보니 거의 맨 앞줄에 섰습니다. 어느 학교나 국문학과가 과 순서 중 가장 앞이잖아요?
동대문경찰서장의 사과를 받아야겠다며 어깨동무를 하고 밀고 나갔습니다. 워낙 화가 나있던 참이라 거침없이 경찰을 밀어제치고 정문을 돌파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거봐, 예비역들 화나니까 무섭지!!!!!”
하지만 왠 걸요. 한 이백 명 쯤 몰려나왔을 때, 시위대열 중간으로 청쟈켓을 입은 닌자거북이(?)들이 마구 곤봉을 휘두르며 밀고 들어오더니, 교문이 닫혔습니다. 밀고 나온 이백 여명의 개구리복 예비역들은 그 날 정말 디지게(?) 맞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 시험에 거푸 낙방을 한 저는 87년에 한 금융회사에 들어갔습니다.
학생 때, 늘 라면이나 먹고 파전 한 장으로 소주를 대여섯 병 씩 나눠먹던 제가 삼겹살도 먹고 골뱅이도 먹고 하니까 몸이 나더군요.
입사 초, ‘타조’라는 별호를 들었던 제가 ‘발레리나’라는 비아냥까지 감수해야 했습니다. 타조는 다리가 길고 말랐다고 해서 동료들이 부쳐준 꽤 자랑스러운 별명이었습니다. 제가 이래봬도 제법 롱다리거든요.
발레리나라는 별명은 좀 문제가 있는 것이었습니다.몸이 부는데 바지를 새로 장만하지 않고 계속 입으니 너무 꼭 끼어서, 그 왜 발레에 중요한 부분이 강조돼 보이는 타이즈를 신고 나오는 남자무용수들 있잖아요.
어쨌든 이럴 즈음에 87년 민주화 투쟁이 시작돼, 저는 바지가 타지도록 발레리나의 유연한 몸짓으로 밤거리를 쏘다녔습니다. 이른바 ‘넥타이부대’라는 것 있었잖아요.
학생들과 같이 어깨동무하고 구호를 외치다 경찰들이 치고들어오면, 슬그머니 길 한 옆에 서 있다가 점잖게 소리쳤죠.
“거 왜 어린 학생들을 때리고 그래.”
여럿이 웅성웅성하며 거들면 효과가 좀 있더군요.
삼수 끝에 90년에 <한겨레>에 입성했습니다. 그리고는 대규모 시위 현장은 빠짐없이 다녔죠.
울산 현대중공업 노동자 대 투쟁의 현장.
명지대 강경대 군이 경찰에 맞아 죽은 뒤, 계속됐던 분노와 함성의 현장.
제 대학 후배 김귀정 양이 또 경찰에 맞아 죽었을 때, 일어났던 눈물의 시위 현장.
통일을 염원하며 떨쳐 일어섰던 범민족대회 남쪽 집회 현장 등, 등, 등.......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제 부끄러운 추억이 너무 길었죠.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일제시대에는 친일하고,
박정희 시대에는 유신찬양하고,
전두환 시대에는 구국의 결단, 민족의 영도자 운운하며 사세확장했던
그런 신문들을 우리 국민 100명 중 74명이 보고 있답니다.
이 거대한 신문들에 의해
독립운동가들은 천황폐하를 시해하려한 무뢰배로,
영구집권을 획책한 유신 헌법에 저항한 민주화 운동가들은 반체제 혁명가로,
광주의 민주화 열사들은 무장 폭도로,
반독재 통일운동가들은 용공 혐의자들로,
왜곡돼 철저히 유린당해 왔습니다.
결국 우리 사회가 나가야 할 방향이 이들에 의해 비틀리고 퇴보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는 현재진행형입니다.
70년대 서강대에서 매맞던 형님들,
80년대 어깨동무하고 독재 타도를 외치며 서울역, 명동, 여의도를 누볐던 형, 누나들
예비군복 입고 싸웠던 제 학우들,
90년대 울산에서 오토바이 몰고 다니며 싸웠던 노동자들,
경대야, 귀정아 눈물을 흩뿌리며 스크럼을 짰던 후배님들.
이제 신문개혁에 동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렇게 매 맞으며 죽 쑤어서 X 줄꺼에요?
이정우 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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