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생현 마사회장] "복마전 소리 안듣게 모두 바꾸겠다"2-15조선
과천 경마공원에 초비상이 걸렸다. 임원실에서 응접세트가 모두 사라졌고,수의 계약이 경쟁입찰로 바뀌었다. 매점과 식당은 값을 내렸다. 지난 1월5일 서생현(65) 마사회장이 취임한 후 40여일 동안 한국마사회에는 변화의 말발굽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마사회 변화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서 회장을 본격 인터뷰하기 전에 그가 입은 점퍼가 눈에 띄었다. 왜 팔꿈치를 기운 점퍼를 입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거 광업진흥공사 사장 때 근무복인데, 편해서 입고 있을 뿐입니다. 광진공 로고는 떼어냈죠."
응접세트를 어디에 처분하고 원탁을 들여놓았는지 물어봤다. "새로 만든 직원휴게실에 보냈어요. 소파는 쉬라고 있는 것이지 사무실에는 필요 없어요." 원탁은 창고에서 꺼내 니스만 새로 칠했다. 물론 다른 임원들도 소파를 포기했다. 남는 응접세트는 지점(장외발매소)의 고객용으로 내보낼 예정이다.
서 회장은 육사(14기) 출신에 통신병과로는 최고직인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통신국장(소장)을 끝으로 1987년 예편, 석탄공사 감사-사장, 일반기업체 근무, 광진공사 사장 등을 거쳐 마사회장으로 영입됐다.
말달리기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었다.
"경마를 어떻게 하는 줄 몰랐고 마사회도 몰랐죠. 여기에 온다고 했더니 아는 사람들이 축하하면서도 복마전이니 조심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서 회장은 공식 임명되기 전에 임명권자인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에게 요구 조건을 내걸었다. '한푼도 정치자금으로 가져갈 생각 말라. 특정업자와의 계약 청탁도 하지 말라. 만약 그러면 나는 그날로 그만두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회장으로 취임한 후 그는 마사회 운영에 칼을 대기 시작했다.
서 회장은 먼저 수의계약을 모두 경쟁입찰로 바꾸도록 했다. 마사회는 연간 2000여건의 계약을 맺는데, 거의 모두 업자가 지정된 수의계약이었다. 99년의 경우 건수로 94%, 액수로는 36%였다. 직원들이 규정을 들먹이면 "규정 무시하라"고 다그쳤다. 업자는 꼭 2명 이상이 함께 만나도록 했다.
주말이면 3만~4만명이 모이는 경마장의 매점은 따내기만 하면 돈 버는 자리. 그래서 '줄 타고' 오려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서 회장은 "자격요건을 정해 신문공고를 내 공개적으로 선정하라"고 지시했다. 기존 매점의 물건 값이 비싸다는 민원이 있자 동네 수퍼마켓에서 일일이 값을 파악, 그 수준에 맞추도록 했다.
매점업자들이 반발하자 "그러면 나가라"는 말로 잠재웠다. 15개 식당의 음식값도 낮췄다.
고객에게 인사하기, 경마장 화장실 냄새 없애기, 청소 잘하기, 경마장에서 지하철역까지 1㎞ 이상 되는 통로에 지붕 만들기 등 고객서비스도 강화하는 중이다.
서 회장이 승용차를 그랜저에서 중고 포텐샤 2000CC짜리로 바꾸려 하자 부하직원들은 "재고할 것"을 여러 차례 청했다. 그는 세 번째에 화를 벌컥 내고는 뜻대로 중고로 바꿨다. 그는 기밀비를 만들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돈 만들려고 영수증 가짜로 처리하면 맨 먼저 비서, 운전사, 경리직원에게 약점 잡힌다"며 "그러면 회장의 영(영)이 안선다"고 말했다.
서 회장의 '개혁'이 마사회의 겉모습만 바꾸는 데 그칠 수도 있다. "누구나 회장으로 오면 저러다 말더라"는 냉소적인 시각도 있다. 서 회장은 자신이 떠난 뒤에 조직이 달라졌다는 평가를 듣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나종호기자 : najh@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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