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5/03/05)  
 법대로 하자


93년 추석 무렵, '케뷔'가 발주 직후 기수를 낙마시키자 경마팬들은 경주 무효를 주장하며 재 발주를 해야 한다고 항의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몹시 화가 난 일부 팬들에 의해 집기가 부서지고 쓰레기통이 불타는 등의 불미스러운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흥분한 꾼들의 폭동으로 경마장이 아수라장이 됐다는 기록으로만 남아있을 뿐 경주 불성립이나 재발주의 사유 여부에 관한 논의는 이슈가 되지 못했다.
이후로 '왓어스퍼' '하비동주'가 비슷한 상황을 연출하면서부터는 휴지조각이 된 마권소지자에 대한 억울한 심정을 소비자 주권 개념으로 접근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최근 들어 '폴리골드'가 그 논쟁을 이어갔다. 논쟁이라기보다는 만국 공통의 룰에 입각하더라도 억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찾아 달라는 팬들의 요구였다.

그럼에도, 팬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90년대 초반 10미터 예주 거리제도를 없애고, 95년 7월20일에 "발주위원의 발주신호 후 발주기가 정상적으로 개문되면 발주는 성립한다"고 시행규정을 개정해 놓은 마사회는 발주기의 정상 작동 여부만으로 모든 책임의 한계를 그었기 때문이다. 문만 제대로 열어 주고 나면 나머지는 말과 기수를 한 묶음으로 팬들과의 당사자 간 문제라는 원칙만을 고수한 것이다.

그러나 마사회의 대응 논리를 뒷받침해주던 규정을 스스로 지키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 지난 일요일 선행습성의 '족패천하'는 다른 말보다 발주기 문이 늦게 열리는 바람에 늦발주를 하게 되었고 초반에 벌어진 거리 차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결국 6착에 머물렀다. 마사회가 제공한 경주화면을 보면 누구나 문이 늦게 열린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음향효과에서도 두 번의 문 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발주기 문이 정상 개방되지 못하면 재발주 사유에 해당하며 경주에 중대하고 명백한 지장을 초래한 경우에는 경주 불성립 처리한다는 마사회가 직접 만들어 놓은 규정에서 빼도 박도 못하게 된 셈이다.

경주 장면을 현장에서 본 팬들이 문제를 발견했음에도 재결은 이를 몰랐고 경주 장면을 다각도로 녹화한 화면도 지나쳐버렸다. 대기실의 모니터를 본 다른 기수들도 이 사실을 알았는데 해당 기수를 불러 확인조차 하지 않고 경주를 확정해버렸다. 재결이 부재중이었다는 조롱과 야유는 등록이 취소된 마주의 말이 경주를 치렀는데도 몰랐던 지난 1월에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딱 걸렸다'는 표현이 어울린다며 경마팬들은 마사회가 제정신이냐고 묻고있다.

마사회장이 마사회 명예퇴직자들이 설립한 분사업체의 입찰 비리와 관련하여 청와대 민정팀의 압수수색을 받고 사의를 표명한 날, 발매마감을 불과 3분여 남기고 발매기 160여 대가 전산시스템 오류를 일으켜 마권발매가 중단된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마권을 구매하려던 팬들이 창구로 몰려가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음에도 경마개최위원장은 이 사실을 몰랐나보다. 경주가 끝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양해를 구하는 안내방송만으로 얼렁뚱땅 넘어갔다.

팬들의 항의와 비난이 빗발치고 있는 건 1억 7천만원을 들여 새 단장한 인터넷 홈페이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안정화 기간 동안 접속 속도가 느린 건 이해하지만 디자인만 고려한 까닭에 글씨가 작아져 보기 힘들며, 주로 찾는 경마팬 광장이나 기수광장 등이 찾기 힘들고 여러 번을 거쳐야 들어갈 수 있도록 감춰 놓은 것은 팬들의 입을 막으려는 저의가 아니냐는 비난을 받고 있다. 특히, 배팅을 위한 실시간 배당률 역시 빠른 검색이 기본인데도 사용자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배치했다는 불만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엄청난 '실수'와 '졸작' 행진이 이어지는데도 누구 하나 나서 사과하고 사후 대책을 설명하지 않는 곳이 바로 요즘의 경마장이다. 이러다간 규정이 또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발주위원의 깃발 신호만 정상이면 발주가 성립한다"고.

"발주위원의 발주 신호 후 발주기가 정상적으로 개문되면 발주가 성립한다"는 시행규정 52조는 '발주기가 비정상적으로 열리면 발주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코 차이로 승부를 겨루고 1/1000초로 순위를 가리는 경마에서 이번 사태는 중대하고 명백한 장애였다. 해당 경주는 원천 무효이며 전액 환불해야 함이 옳다.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사실 앞에서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다. 법대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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