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5/03/12)  
 누가 이명화를 죽였나


부산 기수 이명화가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은 신병을 비관한 전 대법원장이나 우울증에 시달린 배우 이은주, 또 하루 전엔 승부의 압박감에 괴로워하던 여자 축구선수의 자살을 알린 언론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하루 평균 3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 증가율 1위 국가에서는 주목받을 사건도 아니었다. 하지만, 경마장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소식이었기 때문에 충격은 더했다. 가족 친지, 동료뿐 아니라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왜 한창 나이에 목숨을 버려야만 했을까.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을까. 스물여섯. 이제 막 시작일 뿐이었던 나이. 걸어온 길보다 걸어가야 할 길이 훨씬 길었을, 경주로에서 보여준 것보다 펼쳐 보여야 할 것이 훨씬 더 많아야 했는데 무엇이 그녀를 견딜 수 없게 했을까.

“체중을 더 줄여야 하는데 아무리 열심히 훈련을 해도 내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질책뿐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편히 쉬고 싶다”는 유서의 한 대목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부상의 후유증은 멍에가 되었고 앞으로 한발을 떼려 하면 무엇인가가 뒤에서 자꾸 잡아당기는 악령에 시달렸다. 그래서 기수생활을 반대한 부모의 걱정을 거역하고 택한 길에서 희망을 잃어버렸다. 어깨 위를 누르는 짐들이 너무 무겁고 버거워 스스로도 애통했지만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이명화의 극단적인 선택은 결국 자신에 대한 좌절이나 이로 인한 우울증 또는 승부의 냉엄한 논리 등이 모두 뒤섞인 혼돈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만, 그 혼돈을 자살로 재촉한 경마장의 상황이 그녀에게 필요 이상으로 가혹하지는 않았는가에 대한 점검은 남은 우리의 몫이다.

아직도 개장 여부가 불투명하고 시기도 유동적인 부산․경남 경마장을 경마의 지방화시대를 연다는 홍보용 헤드라인만으로 설명하고 이해하는 건 충분치 않다. 계획대로라면 개장이 불과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지만 아무것도 확정된 것이 없다. 레저세를 감면 안 해주면 개장을 연기하겠다는 방침은 공갈 협박용이었는지 협상의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던 고위경영자는 아직까지도 분명한 입장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부지선정부터 정치적 놀음에 의해 정해지더니 당초 계획보다 2천억원의 추가 건설비용을 뻘 밭에 쏟아 붓고 나서야 비로소 완공을 했다. 그러나 아직도 접근 도로망은 확충되지 않았다.

새로운 출발을 목표로 내려간 조교사․기수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막막한 상황에서 자신의 선택이 적정했는지를 스스로 묻고 있으며, 노조설립을 신고만 했을 뿐 일체의 활동을 제약받고 있는 관리사들은 엄청난 고용불안에 휩싸인 상태다. 장밋빛 청사진을 그려 보이며 성공을 호언장담하던 당시 경영진을 믿었던 사람들은 앞날에 대한 불확실성에 몸을 떨고 있다. 적자에 허덕이며 부산시로부터 인건비를 지원받고 있는 부산경륜을 코앞에서 바라보며 경마수요의 창출에 심리적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그 부담이 점점 압박으로 커져 번민하는 상황이다. 과연 이곳에서 경마가 열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우려 그리고 거대한 지출구조에 대한 개선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것이 그곳에 있는 경마장 사람들에게 엄청난 불안과 혼돈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자살을 사회학적으로 처음 설명한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은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한다고 믿지만 사회는 개인에게 강압하는 힘을 발휘한다고 보았다. 이명화의 죽음은 단지 그녀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부산 경마장의 안개 속에서 드러난 구조적인 문제일지도 모른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이와 유사한 슬픈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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