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5/04/02)  
 기수의 독단



인간이 만든 최고의 걸작품 가운데 하나가 바로 법인(法人)이다. 개인으로서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사업을 수행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법률관계의 주체로 지위를 인정받기 때문이다. 비슷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자연히 회원의 권익보호를 우선으로 이권을 중시하는 성향이 일반적인 법인의 모습이다.

98년 발족한 서울경마장 기수협회도 사단법인이다. 그전까지는 조교사·기수가 모여 조기협회를 구성했지만 기수들이 협회를 만들면서 법인으로 발전했다. 당시 기수협회는 창립이유에 대해 공정성의 확보를 최우선으로 꼽았다. "기수와 조교사가 짜고 경마를 한다는 항간의 루머를 완전히 불식시키는 등 투명한 경마운영의 초석을 마련하기 위해 독립을 감행했다"고 밝혔다.

독립이라는 표현은 충격적이었다. 조교사의 부당한 작전 지시 때문에 부정 경마가 자행되어 왔다는 간접적인 시인은 이듬해 2월 기수협회 초대회장 취임과 기수 신축 숙소 개소식 행사에 조교사와 관리사의 불참을 가져왔고 급기야는 박원선 조기협회장의 사퇴로까지 이어졌다. 동시에 바깥에서는 둘의 연결 고리가 끊어짐으로써 공정 경마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당시, 경마 담당기자는 "기수가 조교사에게 밉보이면 좋은 말을 타기가 힘들었고 이 같은 관계가 공정 경마를 해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면서 "기수 협회의 독립은 기수들이 더 이상 조교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음을 뜻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둘의 관계가 '기승계약'이라는 계약관계로만 존재하게 됐다면서 앞으로는 조교사에 소속되지 않고도 기승 할 수 있는 '프리 자키' 제도가 활성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보면 성급하고도 빗나간 전망이었다. 기수의 독립으로 조교사들의 부당 지시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는 요인이 제거되어 공정성이 확보된 걸로 알았지만 그 이후로도 부정사건은 줄어들지를 않았다. 이를 계기로 마사회 역시, 강력한 부정경마 척결의지를 갖고 경마계의 구조 개혁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경마사건은 근절되지 않고 현재진행형이다. 결국, 부정경마의 근절이나 공정 경마의 구현이 조교사와의 관계를 절단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은 들어맞지 않았다. 한 식구로부터 부정경마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일방적으로 누명을 쓴 조교사와 기수의 관계는 감정대립을 넘어선 지 오래다.

악화된 그들의 관계가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으로 보인다. 지난 월요일 경주마 조교에 전원 불참함으로써 기수는 주5일 근무 의지를 확고히 했고 조교사는 경주마를 우선해야 할 기수들의 프로의식에 중대한 하자가 있음을 다시 확인한 상태다. 관리사들 역시 가중된 업무 때문에 대책 마련의 목소리가 높은 실정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조교사와 관리사의 모습이 그나마 다행일 뿐이다.

사단법인 기수협회의 실력행사는 팬들에게도 우호적이지 않다. 99년과 2001년에 19기와 20기 신인기수 등록을 출전 기회가 줄어든다며 거부하고 재해위로금 추가 지급을 요구한 것은 내부적인 일이라 그렇다 쳐도, 2001년에 협회 운영비를 상금에 얹어 지급해달라며 예시장에 나오지 않고 경주로 입장 때에는 관람대 쪽 펜스에 붙어 윤승하는 단체행동을 벌였다. 팬들의 야유와 항의가 빗발치자 제7경주부터는 종전처럼 트랙 중앙으로 입장했지만 처우 개선을 위한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비상식적인 편법도 불사한 곳이 바로 기수협회였다.

어느 단체든 협회든 법인이든 간에 처우 개선을 위해 단체행동으로 요구하는 것이야 법으로 보장된 권리이지만 경주 또는 질을 담보로 한 편법 실력행사는 경마의 근간을 훼손하는 처사로써 경마 창출자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몸을 돌리기도 힘든 두 평 남짓한 감옥에서 이틀 동안 바깥구경도 못한 경주마를 나흘 만에 우승마로 골라 승마 투표해야 하는 팬들의 심정을 헤아린다면 이번과 같은 사태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사태의 마무리 방식 여부와 관계없이 그때까지 조교 공백의 책임은 기수협회에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법인의 힘을 빌린다해서 모든 무리한 요구가 관철되는 건 아니라는 선례를 만들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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