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5/07/30)  
 대박을 꿈꾸십니까




영국과 아일랜드를 통털어 최고의 경마배당인 194,000배를 적중한 리버풀의 한 영국남자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안 카스웰(37세, Ian Carswell)은 6개 경주의 우승마를 맞추는(picking the six winners), 우리말로 바꾸면 육중승식이고 미국이나 홍콩에선 Six Up이라고 부르는 [Lucky 63] 승식을 적중시켰습니다. 배당금으로 796,706.52파운드(약16억6천만원)를 손에 넣었죠.

[럭키63] 11만6,848.27파운드(약 2억 3,370만원) 와 럭키63의 보너스 2만9,104.06파운드(약 5,820만원)를 합해봐야 3억원 정도지만(이것도 큰 돈이네요 ^^) 우리의 로또복권처럼 적중자가 없어 이월된 누적액이 65만754.19파운드 (약 13억150만원)에 달했던 겁니다.

그래서 엄청난 행운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카스웰은 Ladbrokes라는 북메이커의 영업소에 가서 두 개의 구매표에 28파운드(약 56,000원)어치 마권을 샀습니다. 그는 마권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곤 채 두 시간이 안 되는 사이에 벌어진 6개 경주를 집에서 TV로 시청합니다.

그가 구매한 경주는 해밀튼과 브라이튼 경마장에서 각각 3개 경주씩 열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첫 경주의 Regents Secret이 우승하자 그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희망을 갖고 지켜보자”고 했으며 세 번째 경주까지 연속 적중하자 다시 전화를 걸어 “희망은 계속 살아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마지막 경주에서 Redwood Star가 우승하는 순간에는 “너무 큰 돈을 벌게 되어 오늘은 잠도 못자고 먹지도 못할 정도로 흥분된다”고 소감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Regents Secret) 해밀턴 경마장 (3시15분) - 단식 6.5배
(Corker) 해밀턴 경마장 (3시45분) - 단식 13배
(Blackmail) 브라이튼경마장 (4시) - 단식 8배
(Dizzy in the Head) 해밀턴 경마장 (4시15분) - 단식 13배
(Saxon Lil) 브라이튼 경마장 (4시30분) - 단식 3.5배
(Redwood Star) 브라이튼 경마장 (5시) - 단식 15배

영국의 경마신문인 레이싱포스트가 지난 7월7일에 보도한 카스웰 이야기는 경마를 모르는 뭇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국내언론에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전에는 이런 가십성 기사가 흔하게 박스 처리되어 실렸죠.

5년 전 제주에서 2만7871.3배로 한국 경마 승식 전체 최고배당을 기록했을 때는 구매자가 단돈 100원으로 전액을 독차지했다는 해외토픽으로 재생산되기도 했습니다. 우리 언론은 홍콩 경마의 삼중 삼복승식(Triple Trio)에서 무려 1335만7696배라는 어마어마한 초고배당이 나왔다며 이 정도면 로또 복권이 따로 없다고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일본의 지방 경마장 오오이(大井)에서 975만2820배의 최고배당이 나온 2002년에도 탄성을 질렀고, 미국 브리더스 컵(Breeders’Cup)에서 한 경마팬이 여섯 경주의 우승마를 차례로 맞추는 육중승식(Six Up)마권으로 268만 달러의 대박을 맞았다며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외국이나 우리나 별반 다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위 기사의 제목이「£800.000, Liverpool punter lands biggest ever payout on racing bet-for just £30!」입니다. [겨우 30파운드]라는 거죠. 엄청난 배율의 튀김은 도박에서 가능하고 그것이 경마에서 실현됐다는 의역(意譯)입니다.

이런 논조를 접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아! 경마장에 가면 한 탕할 수 있구나!”싶겠죠. 그렇지만 경마를 오래한 사람들은 오히려 무덤덤하지 않을까요. 경마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반드시 자신이 주인공이라고는 단정하지 않죠. 초 슈퍼 울트라 급의 행운이 동반되어야만 가능한 천재지변이라는 거죠.

어쩌다 몇 번 999를 맞춘 사람이 자신은 대박 전문이라며 위와 같은 행운이 자신을 위해 준비된 것이라고 항변한다면 그는 틀림없는 하수일 겁니다. 몇 년에 한 번 터지는 초대형 대박의 폭발시점을 정확히 예견하고 기다렸다 나꿔채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 정도 초식의 보유자라면 노름판이 아닌 좀 더 건전한 시장에서 더 큰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겁니다.

대박의 주인공은 항상 정체를 숨기는 게 상례인데도 카스웰의 신분이 밝혀진 건 특이합니다. 기사의 내용을 찬찬히 보면 그의 정체가 재밌습니다. 그는 마권을 산 사설 마권업체인 Ladbrokes회사보다 훨씬 메이저인 Stanleybet사의 직원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인터넷 트레이더로 일하다 그만둔 지 며칠 안됐던 겁니다.

패리뮤추얼 시스템에선 아무리 고배당이 터져도 환급하는 입장에서는 손해를 안 봅니다. 하지만 북메이커의 경우는 환급배당을 미리 결정하고 마권을 팔기 때문에 손해를 볼 수 도 있습니다. 고배당이 아닌 곳에 그에 상응하거나 상회하는 액수의 마권이 팔렸다면 상관없지만 그 이하였다면 손해를 보게 되죠.

Ladbrokes가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Ladbrokes의 홍보담당인 Warren Lush는 “카스웰이 우리 회사의 역사에 최고의 우승자로 기록될 것이며 그 덕분에(?) 현재 100만 파운드인 환급 상한선을 두 배로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상용어를 구사하지만 뉘앙스는 웬지 속이 쓰린 것 같군요. ^^



얘기가 길어졌습니다. 줄기도 잠시 샜습니다만 대박의 방법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옮깁니다. 어떻게 대박을 맞았는지 궁금해 할 독자들에게 기자는 그의 코멘트를 인용합니다.

“나는 경마를 즐기고 사랑한다. 그러나 그 어떤 예상지나 예상가의 의견도 참조하지 않는다. 다만 내 스스로 말을 보고 느끼는 형식으로 배팅을 결정한다. 눈을 감고 말과 기승한 기수를 생각한다. 이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눈을 감고 말과 기수를 본댔으니 무슨 [쏘스]를 받는 건 아닌 것 같구요. 남의 얘길 듣지 않는다니 소신과 철학이 뚜렷해 보입니다. 더구나 말을 보는 자신만의 형식으로 배팅한다는 대목은 뭔가 있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 어려운 승식의 우승자였으니 말이죠.

그럼에도, 미용실 원장님께 감사하며 단지 잘 먹고 잘 자는 게 비결이라는 미스코리아 당선자나, 남들 잘 때 자면서 학교 수업에만 충실했다는 서울대 수석 합격자의 얘기처럼 들리는 건 뭔가 남다른 노하우가 있잖겠냐는 호기심일 겁니다.

뭔가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카스웰도 뚜렷이 설명하지 못한 것. 그것은 역시 운이 아닌가 합니다. 조만간 카스웰이 그의 방법으로 또다시 우승자가 된다면 몰라도, 그의 지론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지만 경마가 방법론만으로 정복할 수 있는 게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편하게 생각하렵니다.

그게 정신건강에도 유익하며 쓸데없는 아집으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잖겠습니까.

집착할수록 멀어지는 연인처럼, 잡으려면 모습을 흐려버리는 신기루같은 경마를 포획하겠노라 덤벼들었다가 퇴각하고 전사한 선배들의 말로를 인정하지 못하는 철부지들은 오늘도 답습의 길을 걷습니다. 물론, 그들에게 있어서 카스웰은 추앙의 대상이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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