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6/07/18)  
 자장면 시키신 분

처음엔 그런 줄 알았다. 지금이야 그렇지 않지만 갈 수 없었던 북한 땅을 다녀온 작가 황석영이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고 탄식하기 전까지는.

“니들이 빨갱이를 아느냐”고 핀잔을 주던 전전(戰前) 세대의 가르침에 따르면 사람이 아닌 그들은 머리 양쪽에 두 개의 뿔이 솟아있으며 찢어져 솟구친 도끼눈과 벌건 피로 손톱을 물들인 괴물이며 괴뢰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자유롭게 금강산을 다녀온 100만 명이 넘는 남한 사람들은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주목한다. 거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93년도 보고서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감탄인 동시에 40여 년간 지속되어 온 북한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의미했다.

변화의 맥락에서 보면 황석영이 외쳤던 그 해에 우리 경마장에도 대변혁이 일어났다. 마사회 직원 신분이었던 조교사, 기수가 개인사업자로 변신했고 관리사는 새로운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마사회 소유의 경주마를 일반인에게 일괄 분양함으로써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시행체 단일 마주제에서 개인마주제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곳에도 사람이 안 사는 줄 알았다. 아니, 빨갱이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인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삼엄한 바리케이드 속에 있는 그들을 볼 수 없었으니까. 그들이 모여 있는 마사지역이나 협회 건물에는 특별히 허가된 사람들만 드나들 수 있을뿐더러 밖으로 얼굴을 내밀지 않았기에 더더욱 그랬다.

아예 경마장 안에 살림집이 있었던 뚝섬시절부터 경마장은 외부와 단절되어 밀폐된 감옥이었다. 밖으로 나가려면 외출증이라는 군대식 통행권이 필요했다. 밖에 나가 누구를 만나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항상 감시받았다. 마방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은 공정 경마 구현에 위배되는지의 여부를 판가름하는 매우 중요한 정보자료였던 것이다.

과천으로 이전하여 안양에 별도의 주거 시설을 갖게 된 직후까지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안양에서 택시를 타고 과부촌으로 가자고 하면 데려다 주던 준마아파트 역시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다. 마사회 보안담당직원이 상주하면서 출입자를 일일이 체크하고 방문목적을 꼬치꼬치 진술한 다음에야 출입할 수 있었다.

외부와의 단절을 당연시 하다 보니 어처구니없는 일도 발생했다. 목요일 정오부터 일요일 경마 종료 때까지는 그사이에 가정사가 벌어져도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경마 때문에 부모의 임종을 못했다는 불효자식들이 경마장에 많은 것도 그 이유다.

표면적인 이유야 부정경마 세력들을 차단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란 설명이 시행체의 입장이지만 자신들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획일적으로 기본권을 제한한 데 지나지 않는다. 부당통제로 인해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 권리가 침해당하고 억울한 피해 사례가 생겨났기 때문에 그렇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런 방법들이 애초 계획했던 부정경마 근절에 주효했다고 입증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억압하고 감금함으로써 부정경마가 줄었다는 연구 사례는 그렇게 하지 않았던 정반대의 사례가 없기 때문에 비교조차 할 수 없으니까.

물론 내부자들의 부정 단속만을 위해 격리시켰던 건 아닐 것이다. 월담해서 경주마에 약물을 투여하는 못된 경마꾼들 때문에 철조망을 높이고 항상 호루라기를 목에 걸어야 했던 슬픈 뽕짝노래가 지금도 읊조려지는 걸 보면 그 원인에는 외부로부터 보호받아야 당위성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더 무서운 함정이자 올가미였다. 보호라는 구실 아래 담장은 더욱 높아져만 갔고 경마장은 걸어서 들어갈 수 없는 섬이 되어갔다. 섬사람들은 웬만한 건 스스로 해결하려 했고 바깥사람들과의 교우에는 점점 소극적으로 변해갔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배타적으로 세상을 대했다. 뚝섬에는 세상으로 연결되는 다리가 있었지만 섬사람들은 강물이 길을 막아 생긴 외딴섬에 사는 걸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경마장 사람들의 집단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심리적 공감대는 그래서 바로 안주(安住)하는 습성이다. 타의적으로 시작되었지만 너무 오래 익숙해져서 이제는 반(半)자의적이 돼버린 속성이다. 외부와 단절하다 보니 새로운 것에 익숙하지 않고 따라서 변화와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상태가 지금 경마장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그게 무슨 시답잖은 소리냐는 반문도 길게 지적한 위의 속성에서 연유한다. 어느 집단이든 ‘우당당탕’ 하면서 폭발하는 내부의 에너지가 모여서 소속회원들의 권익을 도모하고 나아가 집단이 표방하는 발전을 이룰 수 있음에도 그동안 경마장 사람들은 안주해오면서 잃어버린 대외적 자생력 탓에 집단적으로 힘을 합쳐 이뤄야 할 정체성 확보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500번 이상을 우승해야 할 정도로 엄청난 인생 성공의 위업인 ‘영예기수’ 의 선정과 시상을 남의 손에 맡긴다거나 제 식구를 뽑는 신임 조교사 선발에 참고인으로 조차 관여 못 하는 처지가 바로 잃어버린 주권의 현주소를 잘 말해주고 있다.

연간 162%의 재해율에 시달리며 연간 통산 1,700일을 병원에 입원하는 기수들이 경륜선수보다 6.3배에 이르는데도 그들보다도 상금 인상률이 1/3에 불과하고 억대 연봉자가 64명에 비해 고작 9명에 불과하다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게 아닌가. 같은 울타리 안에서 근무하는 마사회 직원들의 점심 값보다 새벽부터 육체노동을 하는 관리사들의 그것이 300원이나 적게 책정돼 있다면 이는 폭동(?)을 일으켜도 무방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나 싶을 정도다. 먹는 것 갖고 치사하게 유린당하는 처지에 해마다 때 되면 모여서 어깨동무하고 체육대회를 하는 걸 보면 누가 철이 없는 건지 당최 모를 지경이다.

가격차이가 어디서 연유했는지 모르겠으나 이를 알고도 아무 말 못하는 마필 노동자들이 불쌍하고, 말에서 떨어지고 채여서 온몸 어디 성한 곳이 없음에도 그 노동의 위험성에 턱없이 부족한 대우를 받는 경마장 사람들이 안쓰러우며, 단체 상해보험 가입도 거절당하는 몸을 이끌고 오늘도 새벽에 출근해야만 하는 조직원을 둔 단체가 하염없이 애처로워 보인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들은 자업자득에서 연유했다. 스스로가 변화하지 않았고 불편부당에 항거해 올바른 대접을 받는 절차를 생략했기 때문이다. 세상은 변하고 변해 달라지는데도 섬 속에서 서로의 밥그릇만 흘겨보진 않았는지 한 번 돌아보자. ‘너나 잘 하세요’ 라는 최근의 유행어가 자기 성찰이 없는 비판문화에 대한 따끔한 일침이듯이 자기 잘못에 대한 반성 없이 현실이 암담하다고 불평만 늘어놓다 말아버린 건 아닌지 회고해 봤으면 한다.

위상은 스스로 지키는 법이라 했다. 아무도 대신 지켜주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열려있다. 인터넷의 발달은 세상 사람들과의 교통을 무척이나 원활하게 해주었으며 소외받고 억울한 사람들의 하소연을 경청하게 만들었다. 이제 세상으로부터 감시당하고 통제의 대상이 되어서는 영원히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과거의 굴레는 벗어던지고 동원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장애물은 철거하면 된다. 세상과 통화하자.

그래도 지금 정도면 장족의 발전을 했다고 자위하지 말자. 가장 기본적임에도 아무도 풀려 하지 않았던 문제부터 풀어보자. 한 번쯤 생각했음에도 지레 포기한 주문을 해보자. 거창하지는 않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바쁜 일터에서 간편하게 시켜 먹을 수 있는 자장면을 오늘 점심에 시켜보자. 대한민국 그 어디에도 배달이 되는 자장면을 시켜 먹을 수 없었던 유일한 곳, 그곳 경마장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


서울경마장 조교사협회가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협회보 "고삐" 2006년 3~4월호에 실린 기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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