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4/05/29)  
 차라리 경마실황중계를 없애자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이 얘기했던 '들러리 이데올로기'가 그 원인일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권력자 측근들의 처지에서는 자기 보스를 제외한 이 세상 모든 것을 들러리로 인식하는 사고방식이다. 형님의 노래를 빛내기 위해 주위 시선에 아랑곳없이 웃통을 벗고 형님을 무동태운 채 단란주점을 휘젓는 조폭의 행동 같은 것이다. 반드시 조폭이 아니라도'각하가 곧 국가'인 시대에 대통령의 차량행렬을 위해 서너 시간씩 뙤약볕에 서 있어야만 했던 국민 역시 각하의 들러리였다. 여기서 보스나 형님은 마사회 또는 마사회장이며 조폭이란 다름 아닌 경주실황을 20분 후에 녹화 방영키로 결정한 담당자를 말한다.

케이블과 위성TV의 경마 방송중계가 빠르면 이번 주부터 20분 뒤로 늦춰질 예정이다. 현재도 10분의 시차를 두어 녹화 중계를 하고 있지만 사설경마가 계속 늘어나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는 설명이다. 매출액과 입장인원은 갈수록 줄어드니 경마일수라도 늘려 매출을 올려보려는 마사회가 맞대기 사설경마를 원흉으로 지목하고 내놓은 또 하나의 대책이다.

도대체 맞대기가 경마 매출에 얼만큼의 영향을 미치기에 이렇게 미련한 방법이 필요한 것일까. 명확한 통계 수치를 내놓으며 맞대기의 폐해를 근절해야 된다고 설명하는 것도 아니고 막연한 추측과 짐작만으로 경마팬들이 불편을 감수하라는 일방적인 통첩은 무엇인가.

지난 2001년 2월에 처음 시작한 케이블TV 경마 생중계는 지역적 제한 때문에 가까운 지점조차 찾을 수 없는 경마팬들의 공간적 제약을 극복시켜 주었으며 본장과 각 지점의 환경공간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더 큰 수입은 방송법에 의해 원천 봉쇄되고 있는 경마광고보다 효과가 뛰어난 실시간 방송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경마의 부정적 사회인식을 순화하는 순 기능 홍보에 있었다. 요원할 것으로 보였던 경마의 대중화를 가능케 할 수 있는 유일한 지름길이며, 경마가 세상 밖으로 나와 진정한 의미의 레저 스포츠로 자리 매김 하는 중요한 교두보가 될 것으로 믿었다. 그리고 기대했다. 하지만, 작년에는 중계권과 관련한 로비의혹에 휩싸이면서 방송 자체를 폐지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가 결국 10분 후 녹화중계로 절름발이가 되더니 이제는 20분으로 후퇴하는 것이다.

실시간 방송을 하고 싶어도 원하는 방송사가 없어서 한숨만 쉬는 경륜, 경정 사업본부는 경마장을 바라다보며 배부른 소리한다는 표정이다. 그들은 현재로서 가능한 인터넷을 이용해 경주 종료 후 곧바로 실황 동영상을 보여준다. 매우 미안한 얼굴로 양해를 구하며 더 나은 팬서비스를 다짐한다. 방송사를 통한 실황중계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머릴 조아린다.

경마의 몰락원인이 경쟁 업종의 등장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마사회의 홍보 능력보다 그들이 훨씬 앞서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정적인 경마 관련 보도에 대처하는 데만 역량을 집중하는 마사회는 최고의 홍보수단인 실황 생중계를 매출감소라는 이유를 들어 홀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경륜, 경정에는 사설 맞대기가 없는 것일까. 직접 확인해 보진 않았어도 없을 수는 없다. 조세제도 뒤에는 이를 포탈하는 반 조세 세력이 반드시 있게 마련인데 하물며 경마와 똑같은 갬블에서 어찌 없을 수 있겠는가.

최근의 사설경마 조직은 일본 야쿠자의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릴 정도로 전국을 권역별로 나눠 지역 조직화하고 있다. 이들은 신원이 확실한 고객만을 대상으로 경주 전에 미리 입금받은 액수 내에서 배팅을 받아주며 휴대폰을 이용한다. 중요한 것은 점조직으로 움직이며 일정 단계 이상은 서로가 모르며 한 자리에 절대 모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안락한 소파와 실황중계를 보기 위한 TV는 필요치 않다.

그럼에도, 부동산의 '떳다방'처럼 영세한 뜨내기 사설업자 때문에 경마팬의 권리와 편의를 박탈하려 한다면 할 수 없다. 실황 생중계가 사설경마의 주범이라면 그래서 연 2조원의 매출을 빼앗겨 억울하다는 주장이 맞다면 방송중계를 아예 때려치우자.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지만 마사회가 만들어 놓은 아날로그 거점을 직접 찾는 수고를 마다 않을 테니 사설경마를 박멸할 수 있다면 중계 그만해도 좋다. 다만, 그랬는데도 사설경마를 뿌리 뽑지 못했다면 이번 결정을 기획하고 찬동한 자들은 경마 시행 능력에 중대한 결함이 있음을 인정하고 물러나라. 어떤가.

거래조건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들러리'들은 아마도 지난 월요일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지역 유선과 위성방송을 통해 하루 16시간 동안 편집 없이 생중계하는 국회방송(NATV)이 개국했다는 보도를 믿으려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의원들의 회의 불참과 지각, 함량 미달성 발언이나 욕설, 폭력 등 의사당에 찌든 각종 구태가 낱낱이 드러나서 국민의 정치불신과 혐오가 더 높아질 텐데 어찌 된 일이냐고 분노할지도 모른다.

그들의 책상 위에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 세상으로 통하는 인터넷 인프라 망이 구축되어 있지만 내놓는 결정들은 시대의 흐름을 역주행하는 것들 투성이다. 경마장 담벼락 너머에선 인식의 변화가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데도 담 안쪽의 고위 샐러리맨들은 시대의 흐름을 파악조차 못한다. 독재시절의 문제 혹은 한 개인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닌'들러리 이데올로기'는 지금, 마사회에 집단 무 의식화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런 충격적인 일이 무심하게 일상적으로 나타난다. 그들이 제 딴에는 경마발전을 위한다며 만들고 있다는 파티복이 사실은 흔한 평상복에 불과하지만 나중에 그 사실을 알았다 해도 허망함을 느낄지는 확실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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