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4/09/25)  
 한 번


흔히 마권이라 부르는 승마투표권을 한 번에 살 수 있는 금액은 얼마치 일까. 마권구매 상한제의 적용을 받아 당연히 10만원이다. 그 이상은 한 장의 마권에서 허용되지 않는다. 권면금액이라해서 10만원을 초과하면 22%의 기타소득세가 부과되기 때문에 아예 마사회가 발행하는 마권은 이를 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 경주에 살 수 있는 금액은 얼마일까. 정답은 시간과 재력이 허용하는 한 맘먹기에 달렸다. 예매시간을 포함하여 해당경주 마권발매가 마감될 때까지 돈만 있다면 가능하다. 몇백만원부터 몇천만원까지 사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지난주 저녁 9시 뉴스에 보도된 1억2천만원어치 마권을 산 사람의 경우에서 보듯이 액수에 구애받지 않는다. 다만, 한 장의 마권에 1억원으로 표시하지 못하니 번거롭게도 최소한 1,200장의 마권을 교부받았을 게다.

뉴스 앵커는 경마가 건전한 오락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한 사람에게 파는 마권의 상한선인 10만원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운을 뗀다. 이어서, 대단한 특종이라고 흥분한 TV기자는 베팅할 때 걸 수 있는 내기 돈이 얼마냐는 컨셉으로 마이크를 들이댄다. 쉽게 말해 한 사람이 한 경주에 어떻게 10만원짜리 마권을 다발로 살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같은 창구에서 연속 구매를 했다는 명확한 증거를 들이대며 연속 발매를 하지 말라는 약관을 어겼다고 추궁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앞서 말한 구매상한제의 근거가 되는 경마시행규정에는 '승마투표자가 1회에 구매할 수 있는 마권구매액의 최고한도를 정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며 승마투표 약관에는 '1인이 1회에 구매할 수 있는 금액은 10만원까지로 한다'로 규정해 놨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1인 1회'의 해석 여부가 관건이다.

형법 250조의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규정을 예로 들어보자. A가 B의 목을 졸라 죽인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면, 이 사안의 해결은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대전제 아래 'B는 사람이고 A는 B를 살해했다'는 소 전제를 대입하여 'A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간단 명료한 3단 논법에 의해 해결이 된다.

하지만, 간단 명료하게 언급된 승마투표 약관은 추상적이다. 판매자와 소비자와의 거래 시 분쟁을 대비하여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를 받은 승마투표 약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추론해석이 필요하다. 해석 여부에 따라서는 당사자가 편한 대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즉, 파는 입장에서 많이 팔았다고 문제가 생기면 약관을 '경주 당'이 아니 것으로 우기면 되고, 사는 입장에서는 '경주 당' 10만원 이상 못산다는 규정이 없으니 제약받을 일이 없다고 강변할 수 있다. 도대체 1회는 어떤 1회를 말하는 것일까. 하루에 한 번일까. 한 경주에 한 번일까 아니면 구매표를 창구에 들이미는 횟수를 말함인가.

최근 마사회는 일부 마주들이 경마정보를 독점하여 고액 베팅을 일삼는다는 비난 여론이 일자 마주실의 동반 입장인원을 제한하고 출입을 까다롭게 했다. 아울러 이 같은 사실을 알리는 팸플릿을 마주실 곳곳에 붙여놓은 적이 있다. 그중에는 마권 구매시 준수사항이라며 '1인당 1경주 10만원 초과 마권구매를 제한한다' 했다.

의아해하는 마주가 있어 이를 항의하면 마사회는 약관을 근거로 제시할 것이지만 마주가 납득할 수 있을지는 분명하지 않다. 또한, 준수사항의 위반이 법적 구속력을 갖는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경기도 소재 B지점에는 연속구매를 할 수 있는 창구가 따로 있다. 비공식적이지만 지점장의 재량으로 한 사람이 여러 장의 마권을 살 수 있다. 지점 측에선 일행 중의 한 명이 대신 마권을 구매한다고 인정하여 고객의 편의를 봐준다. 매출을 최대한 올려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거나, 지점장의 평소 소신이 마권구매 상한제는 철폐돼야 한다고 여기는지는 모르지만 창구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애용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연속구매를 허용 안 하는 여타 지점에서도 창구를 전전하면 가능하다.

물론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사안을 세세하게 법규정으로 규율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법은 어느 정도의 추상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법의 해석은 추상적인 법조문을 구체적 사안에 적용하여 풀어내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마사회의 승마투표 약관은 귀에 걸면 귀걸이고 목에 걸면 목걸이다. 고의일까. 실수일까.

현재 경마시행규정의 모체가 되는 조선마사회 경마규칙 19조에는 1인당 1경주에 1매의 마권을 20원이 넘지않는 한도 내에서 구매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10원 미만일 경우에는 두 장을 살 수 있고 단식과 복식으로 구분해서 총 40원까지 한 경주에 살 수 있었다. 거슬러 올라가 42년까지 발효된 조선경마령 4조에도 '2원 이상 20원 이하의 권면금액으로 1경주당 1인 1매에 한한다'고 못박았다. 이렇게 되면 법과 규정을 해석하기 위해 문리적이고 논리적이며 목적론적 방법을 동원할 필요가 아예 없어진다. 한 사람이 한 경주에 상한선 이상 구매 못 한다고 했으니 왈가왈부할 여지없이 얼마나 깔끔한가.

61년에 한국마사회법이 개정될 때에도 이 조항은 존속했다. 그러던 것이 90년에 일본식 제도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취지 아래 재개정될 때 바로 문제의 '한 경주에 한하여'라는 조항이 삭제되었다. 문제가 생길 여지를 사전에 봉쇄하고 책임 모면을 위해서였다. 또한, 발매에 제한을 두지 않음으로써 매출액을 증대하려는 경영진의 의도였다.

숨겨 들여간 TV카메라를 통해 드러나는 장외발매소의 어두운 모습을 보는 심정은 안타깝다. 그곳을 배경으로 기자가 어떻게 억대의 마권을 살 수 있느냐고 흥분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심정도 답답하다. 그러나 그보다 측은한 건 자체감사 결과에 따라서 응분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마사회 관계자의 잘못을 시인하는 인터뷰 내용이다.

도대체 누가 마사회법을 어겼고 승마 투표약관을 위배했는가. 문제가 되는 건 한 창구에서 연속발매를 했다는 지적뿐이지만 약관 어디에도 이를 규제하지 않으며 다만, 발매원 교육에 쓰이는 지침일 뿐이다. 죄인의 모습으로 TV에 나오는 경마장과 마사회가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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