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2/12/21)  
 한해를 보내며


지난 한해를 돌아보며 정리할 때 쉽게 떠오르는 단어는 다사다난(多事多難)이 아닐까 싶다.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다. 그만큼 사건도 많았고 어려움도 많았던 임오년 '말의 해'가 저물어 간다. 그리고 이번 주를 마지막으로 93일간 1,094경주의 대장정이 막을 내린다. 경마장은 올해의 10대 뉴스를 발표하면서 한 해를 정리하느라 바쁘다. 이런 작업이 없으면 연말답지 않으니까.

칭찬부터 해보자. 개장일이 연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고 공간 확보만을 위해 1,600여 억 원을 지출한 낭비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쾌적한 고객서비스를 마련 할 신 관람대가 개장했다. 또한, 경마가 사회 공익에 기여한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칭송받을 경마장에서의 성공적인 월드컵 응원전. 공정한 경마, 신뢰받는 재결을 위하여 경마팬을 대상으로 일일 명예재결위원 제도를 시행한 사례는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다.

박태종 기수가 900승의 위업을 달성하고 아시아 경마연맹(ARF) 총회를 유치한 성과 등도 축하를 아끼지 않을 일이었다. 하지만, 새해 벽두부터 김모 기수가 부정경마 혐의로 구속되어 면허를 박탈당한 것을 시작으로 박모 기수도 그의 전철을 밟았고 두 명의 강모 조교사가 마사회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한 달에서 석 달까지 면허정지 처분을 받은 기수도 넷이나 나왔고 경마정보를 주고받아 입건된 마필관리사도 여럿이었다. 이처럼 올 한해도 경마 부정은 근절되지 않은 채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져 왔다.

오영우 전 마사회장은 98년 정리해고 당시 근로기준법 위반 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되면서 업무상 배임과 공금횡령 혐의로 구속되어 유죄판결을 받은 김성광 제6대 마사회장에 이어 44년 만에 법의 심판을 받는 진기록을 세웠으며, 모든 예상지에 시장참여를 확대하여 자유 경쟁체제를 도입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된 공동판매제가 경마와 무관한 엉뚱한 두 단체에 특혜 분양되면서 결국 경마팬의 주머니에서 올 한해 80여 억 원이 넘는 돈이 추가 지출되었다.

또한, 광명과 대구의 지점 개설이 지역 주민의 반복되는 반발로 마사회의 근본적인 대책수립을 요구하기에 이르렀으며,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1일 기승 제한제를 시행하면서 헌법에 보장된 기수의 기승 권한을 침해할 수 없다는 기존의 논리가 마사회장의 지시 한마디로 무장 해제당했다. 경마의 기본 메커니즘인 우승열패(優勝劣敗) 원칙이 부익부 빈익빈을 우려하는 극 보수주의와 타협한 결과였다.

웃지 못할 소극(笑劇)도 있었다. 개 한 마리 때문에 기수를 폭행함으로써 그 동안 경마팬들에게 우호적이었던 조교사의 이미지가 추락한 사건. 출처 불명의 인터넷 게시물을 문제삼아 기수협회가 경마팬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는 어이없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사건이라면 끝 모를 고속행진을 구가해온 경마 시장의 폭락이다. 매출은 상반기 대비 20%의 하락을 가져왔으며 일부 관련 시장이 폐업과 도산하는 사태가 잇달았다. 필연적으로 패배와 손해만을 강요하는 경마 논리에 흥미를 유발하지 못하는 경주의 질이 가세한 결과였다. 더 이상 보여줄게 없어 경마팬의 등을 돌리게 하는 우리 경마의 자화상이었다.

한해를 돌아보는 지금의 암담한 현실은 경마행정의 무소신과 경마협력의 안이한 타협과  경마고객서비스의 홀대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분노했지만 그들은 길게 반성하지 않았으며 용서해서는 안될 일들까지 용서했다. 그래서 잘못은 고쳐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쁘고 슬펐던 기억은 기쁘고 좋았던 일보다 우성(優性)이어서 더 잘 유전되는 법. 지나간 잘못이라 치부하지 말 것이며 애써 잊으려하지도 말자. 과거의 잘못을 미래에 세우지 않으려면. 그리고 반성하지 않는 자에게 내려지는 더 큰 잘못의 반복이라는 형벌과 마주치지 않으려면 말이다.

밝아오는 근하신년에는 한국마사회가 나눠 준 달력에 희망과 재미를 기록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너무 거창해서 무리한 요구인지는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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