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5/04/22)  
 케토프로펜 (ketoprofen)

87년 2월14일 새벽, 칠흑 같은 어둠이 뚝섬경마장을 온통 휘감고 있었다. 군데군데 설치된 경비초소에는 벌겋게 단 연탄난로를 마주한 채 졸고있는 경비원들이 보였다. 그때, 약물과 주사기가 든 손가방을 든 사람들의 희미한 그림자가 140개의 마방이 있는 신마사 쪽 출입문 근처에 나타났다. 85년 경주마 약물투여사건에 연루되어 실형을 받았던 이들 조직원들의 수법은 간단했다. 야간에 경마장에 침입하여 다음날 출주 예정인 우수 능력마를 골라 중추신경마비제인 콤벨렌을 투여하고 해당경주에서는 능력마를 빼고 배팅하여 고액배당을 노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지난주 7경주의 강력한 우승후보마인 ‘서방님’과 ‘한여름’에게 주사를 놓고 나란히 꼴찌로 경주를 마치게 하여 159.4배의 고배당을 독식하고 오늘은 ‘천만장자’와 ‘불국사’를 찾아 나선 길이었다. 호랑이 담배먹던 옛날일 같지만 당시 사건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전직 기수와 마필관리원, 장제사 등 총 13명이 월담하여 자그마치 51마리의 경주마에게 약물을 투여한 사건이었다.

세계에서 제일 먼저 영국이 경주마에 약물투여를 금지한 때가 1903년이었으니 올해로 정확히 100년째가 된다. 예전부터 경주마의 능력을 고의적으로 가감시키려는 부정경마의 획책은 경마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가장 오래된 약물의 사용은 약 2천3백년 전부터 아편과 에페드린(Ephedrine)이 사용된 기록이 있으며, 경마에 있어서는 1백여년 전부터 자연에서 추출이 가능한 몰핀(Morphine), 코카인(Cocaine), 카페인(Caffeine) 등이 주로 사용되었고, 이때의 약물검사는 이들 약물을 검출하는 것이었다.

제7회 동아일보배 대상경주 우승마 ‘도미라이더’(11조, 이인호 조교사)와 외국산 1군 경주 우승마 ‘퍼팩트챔피온’(23조, 유재길 조교사)에게서 금지약물인 ‘케토프로펜’(ketoprofen) 양성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1착을 차지한 두 마필의 경우, 도핑검사소의 양성반응 결과에 따라 마사회는 정밀 검사를 의뢰한 상태이며 곧 수원지검에 수사를 의뢰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지 약물은 마치 악령처럼 서울경마장을 괴롭혀왔다. 뚝섬에서 과천으로 이전한 89년 이후 16번째 약물 사건으로 기록되며, 2000년대 들어 7번 가운데 6번이 공교롭게도 ‘케토프로펜’ 때문이 되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두 마방의 경우, 11조는 지난 98년 6월 ‘쿨터피’에서 ‘카페인’이 검출되어 3개월간 마방이 해체되었으며, 23조의 경우에도 지난 6월 ‘푸른지평’에서 ‘케토프로펜’이 검출되어 조교관리 정지처분이 내려진 바 있다.

관절염, 근육통, 타박상, 좌상, 염좌 등에 외용성 연고와 주사제로 광범위하게 쓰이는 ‘케토프로펜’이 또다시 문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경주출전 16일 전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이 완화되었지만 실제 체내 잔류기간이 모호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마방 관계자와 수의사 그리고 재결이 합동으로 실태를 파악하고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와는 별도로 경마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약물사용에 관대해지려는 경향은 공정성의 후퇴라는 지적이 훨씬 우세하다. 경마관여금지부터 면허정지 1년 등에 이르던 처벌 양형(量刑)이 1개월 단위로까지 줄어드는 추세는, 고의가 아닌 실수로 인정하여 처벌을 경감함으로써 미필적 고의를 발생시키는 여지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대부분의 마방이 아예 ‘케토프로펜’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속 편하다 해서 치워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일부 마주들의 경우, 해외에서 구입한 이 약품을 마방에 건네주며 자신의 소유마에게만 사용하도록 한다는 소식이다. 지난 90년, 스포츠서울배에 출전하는 자신의 말에게 어린이 영양제인 ‘삐꼼씨’를 투여했던 인중권 조교사가 사전 적발된 뒤 “말에게 좋다면 뭐든지 먹이고 발랐다”고 말한 무지(無知)가 재현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약물의 오·남용(誤濫用)을 막기 위해 마필보건소와 마사회가 허가한 두 곳의 동물병원에서만 가능토록 한 약품반입과 사용의 규정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사전검사의 역할도 재고할 필요가 있어졌다. 사전에 금지 약물이 검출되면 해당마를 출전 취소시키면 되므로 경주 결과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문제는 이번 경우처럼 사전 검사에선 밝혀지지 않았다가 정상적으로 경주를 시행한 뒤에 검출됐을 때다.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착순을 확정하지 않으면 간단하지만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확정을 마냥 유보할 수도 없는 노릇이며 입상마에서 금지 약물이 검출됐다고 해서 이미 시행한 경주를 무효화할 수도 없고 통상적인 방법으로 환불을 해주기도 불가능하다. 결국, 피해는 선의의 경마팬들에게 돌아간다.

선의의 피해를 예방하고 경주의 공정성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전 검사를 강화해야 한다. 150분에 불과한 촉박함 속에서 대표적인 약물만을 검사하다 보니 형식적일 수밖에 없다. 그 때문인지 2000년대 들어서는 모두가 사후검사에서 적발되고 있는 실정이다.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사전 검사 대상을 피해 약물을 고의적으로 투여하면 그 피해를 어찌 감당할 것인가. 한 두 번도 아니고 번번이‘케토프로펜’이 사후에 검출되었다면 아예 사전검사 대상으로 지정을 하든지 했어야 옳지, 허구 헌 날 소 잃은 외양간만 쳐다보고 있으면 어쩌자는 건지 답답할 따름이다.‘케토프로펜’처럼 단골이 된 메뉴는 출마 확정 단계에서 일찍 검사를 실시할 수도 있지 않은가. 술집에 비치된 음주측정기처럼 의심이 되는 마필의 경우 조교사가 소정의 비용으로 미리 측정을 해볼 수 있는 방법은 어떤가. 양성반응이 의심되는 말을 사전 검사할 수 있는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만 유명 무실하게 방치되어 있는 것은 반드시 보완해야 할 대목이다.

사전검사가 끝난 후에 이용하는 출주대기마사의 활용에 대한 불만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경주마들이 출주 전 약물검사를 받고 마방에 되돌아간 후의 약물투여 가능성을 막기 위해  한 곳에 모아놓는 출주대기마사가, 98년 12월 완공 후 1년 4개월간‘개점휴업’상태를 면치 못했던 까닭은 26억 원의 공사비를 들였지만 장소가 협소하여 불편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관리체계와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며 다분히 전시행정의 표본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마사회는“출주대기마사를 운영하면 공정성을 높이고 마필 관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지난여름에는 출주대기마사에서 마체 검사를 받던 출전 예정마가 편자를 개조하는 불법을 저지르기도 했고 비좁은 마사에서 경주마의 뒷발에 차여 갈비뼈가 부러지는 사고가 일어나는 등 크고 작은 사건들이 빈발하고 있다. 따라서, 시설규모를 전 경주 출주 두수에 상응하는 160석 정도로 확장하고 관리 인력을 확충하며 책임범위를 확실히 하는 신뢰를 확보해야만 명실상부한 대기마사의 역할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976년 3월 경주마 약물투여에 의한 불공정 경마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처음 업무를 시작한 도핑검사소가 설립된 지 30년이 되어간다. 겨우‘박층(薄層)크로마토그라피’(Thin Layer Chromatography)에 의한 경주 후 시험적인 검사에 머물렀던 초기에 비하면 이제는 세계경마화학자협회(AORC)에 가입되었고 국제 공인시험기관 인정서를 획득하여 국제적으로 시험능력을 공인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의 도핑검사 업무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국제경마연맹이 제시한 경마와 생산에 관한 국제협약(IARB) 가운데 금지약물의 종류와 한계치 부분에서는 아직 국제수준과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이에 대한 인력과 설비의 보완을 거쳐 명실상부한 공인 기관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단순한 검사만을 전담하기보다는 약물과 관련한 사양관리와 질병치료의 이해를 널리 알리고 예방 홍보에 적극 나서는 모습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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