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4/10/16)  
 쓸모없는 국정감사

헌법이 보장한 의회 민주주의의 꽃이 국정감사라고 노래한 어느 시인은 후회하고 있을지 모른다.

여야 원내대표들이 만나 정쟁 중심 국감을 지양한다는데 합의했으며 열린우리당 초선의원 17인은 폭로와 정쟁의 국감시대는 마감되었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들은 한건주의식 폭로에 대한 미련은 낡은 구시대의 정치행태로써 국민의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며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는 정책경쟁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짐했다. 그러나 중반을 넘어선 올해 국감도 여전히 폭로와 정쟁의 무대다. 새로운 17대 국회가 개원하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이번 감사는 187명에 이르는 초선들이 등장하여 정치의 새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됐지만 구태와 악습을 답보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16대 국회를 기준으로 감사를 받는 기관의 평균 감사시간이 4시간 안팎이었던 점도 개선되지 않은 채 또다시 수박을 겉핥는 바쁜 일정이 되풀이되고 있다. 더구나 올해 마사회 국감 배정 시간은 두 시간에 불과했다. 새로 원구성을 마친 결과, 22명의 의원 중 19명이 교체된 농림 해양수산위원회 감사의원들은 경마장을 방문하지도 않은 채 국회 회의실에서 감사를 마쳤다.

불충분한 일정 때문에 서면으로 질의와 답변을 대부분 대체했다. 그나마 직접 질문도 구태의연한 내용들뿐이었다. 갑자기 생겨난 병폐인 줄 아는 모양인지, 부정경마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을 세우라고 호통을 치고, 이미 시행되고 있는 경마중독자의 예방․치료를 위해 마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설경마 단속을 강화해 음성적인 지하 경마를 근절해야 하고 경마 고객들이 마권 분실 등으로 찾아가지 못한 미지급금이 마사회 자체 운영비로 사용되고 있으며 제주경마장의 조랑말 경마가 형식에 그쳐 관광객 유치에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의원들을 보면 그들의 임기인 4년을 주기로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처럼 보인다.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경마 전문가는 없고 전부가 보좌관이 적어주는 질의서를 낭독하던 선배들의 모습과 달라진 게 없다.

국회의원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자기 지역구의 민원과 이익을 대표한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무산된 경주경마장 인근 지역의 모 의원은 16대 국감 때부터 경주(慶州)가 안 되면 자기네 동네에라도 경마장을 지어달라며 떼를 쓰는 중이다. 또한, 제주경마장 지역의 의원은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지원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마사회를 제주로 이전하도록 종용하기도 했다. 서울경마장의 지방 이전은 서울 고객의 접근을 봉쇄하고 막대한 이전 비용을 감안할 때 어렵다는 입장을 마사회가 밝혔지만 그는 마필생산 최적의 자연환경과 입지여건을 가진 제주도가 이전대상지로 손색이 없다고 철없는 소리만 되풀이했다.

의욕적으로 준비했지만 촉박한 일정과 짧은 질의 시간만으로 모든 걸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었기에 “국감이 이런 거냐”고 혀를 내두르는 초선 의원들도 많다고 들린다. 따라서, 국감시기를 예산심의 직전으로 잡은 것은 마사회와 농림부의 잘못된 점을 알아내 다음 예산에서 견제를 하라는 의미지만 지역구 예산과 견제를 맞바꾸는 통과의례가 되어버렸다는 반성 아래, 마사회에 대한 정기국회 국감을 수시 감사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매년 이맘때면 되풀이하는 ‘국감에의 희망을 놓지 않겠다’는 바람이 내년에도 연례 행사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일 년 농사 끝났다고 달콤한 겨울잠을 준비하는 마사회도 그렇지만 내년 가을을 기약할 수밖에 없는 국회도 애처롭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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