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3/03/08)  
 반칙과 심판

규칙을 어기면 이길 수 있다. 여럿이 지키기로 한 표준의 질서와 규범을 가리키는 규칙을 무시하고 악용하면 승리로 연결되는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01년 7월1일부터 발주 후 일정 구간 동안 진로변경을 금지하는 제한 규정을 시행하는 경마장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 규정은 발주 후 100미터까지는 주위에 다른 경주마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진로 변경을 금지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기수는 1일 이상의 기승 정지 제재를 당하며 무리한 선행작전을 지시한 조교사도 처벌을 받는다. 발주 후 직선거리가 짧은 1,700미터는 50미터로 단축 운용하고 뒷말이 없는 상황에서 추입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변경을 인정한다. 이 제도는 기존 경마규정 시행규칙에 명시된 ‘발주 후 일정거리 이상 진로변경 금지규정’을 더욱 강화한 것으로 출발과 동시에 무리하게 안쪽으로 파고들어 다른 말의 주행을 방해하는 사례가 빈번하고 그에 따른 사고의 위험이 높아 도입된 제도다.

재결이 발표한 일지(日誌)를 하나하나 살펴보았더니 2001년 7월7일 김형수 前 기수가 기준을 위반하여 1일간 기승 정지 제재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말까지 18개월 동안 모두 62명의 기수가 165건의 위반사례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동안 1,645경주가 열렸으니 하루에 한번 이상의 위반 사례가 나온 셈이다. 조용배 기수가 10회로 최다 위반의 영예를 차지했고 원정일 기수 9회,  김재섭, 윤기정기수가 각각 8회로 그 다음을 이었다.

이 제도의 허점은 통 털어 단 한번만을 위반한 강병은, 김효섭, 우창구 등 11명의 기수가 모두 입상에 성공했고 각각 두 번과 세 번을 시도한 박태종, 박윤규 기수 역시 100% 입상에 성공했다는 점에 있다. 13명이 총 16번을 시도했는데 16번 모두 2착 내 입상에 성공했다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 1일의 기승 정지를 감수하더라도 초반에 진로를 변경하면 단 한번의 실패 없이 입상할 수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한편, 일곱 번을 위반한 문세영 기수는 여섯 번을 입상하며 86%의 높은 복승률을 자랑했고  2001년 11월 17일에는 같은 경주에서 '힘찬파도'의 강경식, '달리마' 의 송석헌 기수가 동시 위반을 하고 동반 입상에 성공했다.

공명정대한 규칙에 입각하여 겨루는 '페어플레이' 정신이 스포츠를 존재하게 하는 까닭임을 모르지 않는다면 예시장에 모인 기수들에게 진정한 스포츠맨십에 입각하여 규칙을 준수하며 경기에 임할 것을 다짐하는 선서라도 시켜야할 지경이다. 규칙을 어긴 대가는 당연히 패배여야 하는데도 반칙 자(Rule Breaker)가 거의 승리한다는 것은 경마라는 스포츠 정신에 대한 불경(不敬)이며 관전하는 경마팬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이다.

165회의 위반건수 가운데  71번 성공하여 43%의 복승률을 기록했다는 놀라운 사실 앞에서  다른 말의 주행에 피해를 주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진로만을 열심히 달려 우승하라는 주문은 소박한 바람이 되어 버렸다. 부담 없는 처벌을 감수하고 승리하려는 위반자들에게 심판이 관대하니까.

처벌의 효과가 재발을 방지하고 사고의 위험을 줄이고자 함이라면 당연히 제재의 수위를 높여야 한다. 강착과 실격제도에 준하는 정도로 처벌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위반 건수와 입상률과의 관계를 예의 주시하여 필요하다면 더 강한 제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솜방망이를 휘두르는데 그들이 개의치 않는다면 쇠몽둥이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덧붙여 무리한 선행 작전을 지시한 조교사에 대한 제재도 가능해져야 한다. 기수만의 단독범행이라 믿을 수 없는 현실에서 작전권자인 조교사를 처벌할 수 없다면 위의 규정은 사문화(死文化)된 불문법(不文法)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새로 출범한 참여정부는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를 끝내자고 강조한다. 우리 경마장에서 용인되는 반칙도 여기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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