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3/11/08)  
 대박의 주인공이 되십시오



‘한동안 로또에 몰렸던 대박의 꿈들이 이제 경마장으로 달려가겠군요. 오르는 물가에 월급은 제자리, 그나마 일자리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하니 그런 대박의 꿈만 좇는 이들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실정. 나랏일 하는 분들, 제발 부탁이니 일반 서민들의 마음 흔들리지 않게 안정된 경제경영 좀 해주십시오’
지난 26일, 국내산마 5등급 1200m 제4경주에서 14마리 출전마 중 인기 10위 마와 꼴찌 마가 나란히 1·2위에 입상하면서 이를 순서대로 맞히는 쌍승식에서 서울경마장 개장이래 최고인 1만5954.3배당이 터진 데 대한 신문기사를 보고 독자투고란에 올라온 글이다.

이날의 사건은 한 곳의 방송사와 두 곳의 종합일간지 그리고 다섯 곳의 스포츠지가 보도했다. 심지어 [속보]라는 눈길끌기 소제목을 붙인 곳도 있었다. 대충 제목만 훑어보면 “경마, 사상 최고 고배당 터져”“5000원이 8천만 원 대박”“경마 사상 최고 배당 1만5000배 빅뱅”“쌍승식 초고액 배당 1만5954.3배”“5000원 걸어 7977만 원 탔다”“21명 횡재…경륜-경정 통틀어 사상 최대”등으로 이미 생활어가 되어 버린 대박 신드롬을 인용하고 있다. 돈벼락을 맞았다는 의미의 횡재까지 등장한다.

신기록이 갱신되던 예전에도 그랬다. 우리 경마사상 지금껏 깨지지 않는 지난 98년 12월, ‘흑광’과‘금배’가 세운 7328.8배의 복승식 최고배당 때에는 거의 모든 언론이 펜을 들었다. IMF 환란 중에 터진 대박 소식에 경마의‘경’짜도 모르는 사람들이 경마장을 찾았다. 그 덕분에 환란이 경마장에서 물러갔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3년 전 제주에서 2만7871.3배로 한국 경마 승식 전체 최고배당을 기록했을 때는 구매자가 단돈 100원으로 그것도 혼자 구입해서 전액을 독차지했다는 해외토픽으로 재생산되기도 했다. 홍콩 경마의 삼중 삼복승식(Triple Trio)에서 무려 1335만7696배라는 어마어마한 초고배당이 나왔다며 이 정도면 로또 복권이 따로 없다고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일본의 지방 경마장 오오이(大井)에서 975만2820배의 최고배당이 나온 지난해에도 탄성을 질렀고, 불과 얼마 전 미국 브리더스 컵(Breeders’Cup)에서 한 경마팬이 여섯 경주의 우승마를 차례로 맞추는 육중승식(Six Up)마권으로 268만 달러의 대박을 맞았다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뿐인가. 로또 광풍이 불 때는 어땠는가. 누적되어 가는 매출액을 실황중계까지 해가며 대박 열풍을 선도했다. 아무 것도 모르던 사람들은 언론의 보도를 통해서 주위의 사람들이 로또복권을 구입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자신도 반드시 사야 될 것 같은 심리적 충동과 유혹을 받게 되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자신의 원하는 부(富)를 이룰 수 없다는 좌절을 경험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당신도 인생을 역전할 수 있다고 꼬드기면서 단돈 2천 원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가장 가까운 구입처를 약도까지 첨부하여 일러주며 광기를 북돋은 범인이 바로 언론이었다.

멀지도 않은 지난봄이었다. 로또 신드롬에 깜짝 놀란 경마언론은 ‘경마장에서도 대박 터졌다’는 마사회 홍보실의 보도자료를 건네 받아 ‘경마 1천228배 터졌다 로또 안 부럽다’ 고 쓰는 홍보영업을 대행하기까지 했다. 사행행위를 할 수 없는 언론의 의무는 간데 없고 심지어‘월초엔 100배 고배당 노려라’라며 아예 노골적인 호객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최근의 경마팬 성향조사를 놓고는 아직도 경마장엔 돈 따러 간다는 대답이 지배적이라는 헤드 카피를 뽑고 마사회는 사행성을 줄일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점잖게 훈수를 했다. 그 많은 질문결과 가운데 유독 경마를 폄하는 흥미성 제목은 그렇다 치자. 그러나 이번 신기록 배당 보도는 어떤가. 총 적중자는 구체적으로 21명이며 그 가운데 3명이 5천 원 씩 가장 많이 샀다는 것도 모자라 대박의 탄생지는 일산과 마포, 과천 구관 3층이라고 심층취재를 마다하지 않는다. 억제대책이 필요한 게 사행성이라 했다가 기사 거리를 위해서는 포옹도 마다하지 않는다면 황색저널리즘과 무엇이 다른지 모를 일이다.

경마 문외한이 이번의 대박 보도를 보면서 주머니에 단돈 5천 원만 있으면 경마장에 가서 8천만 원을 만들 수 있다는 환상을 갖게 되진 않을까. 금전적인 곤궁에 처해 대박이 시급하거나 마땅한 재테크를 찾던 사람이라면 천문학적인 배율에 경악하며 자신이 그토록 사회의 이단아로 취급하던 경마꾼의 대열에 참여해 욕을 먹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게 될지도 모른다. 또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말이면 어김없이 경마장을 찾는 골수팬들은 21명의 명단에 자신이 포함되지 않은 사실에 아쉬워했을 것이다. 자신의 판단착오를 한탄하지만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옷매무새를 고쳤을 게다. 본래 의도는 그렇지 않다고 변명을 할지 몰라도 경마 문외한들이 대박 환상을 좇아 경마장을 찾는다면 이 기사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셈이다.

대박으로 불릴만한 경마장의 고배당은 필연이라기 보다는 우연에 가깝다. 수혜자가 소수인 것이 그렇고 베팅액이 푼돈이라는 점에서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따라서‘누구나’대박의 주인공이 될 수 는 있지만‘모두가’될 수 있다는 환상은 경계해야만 한다. 대박이 경마의 본질인 것처럼 포장하지 말자. 사회의 공기(公器)이며 한국 경마의 긍정적인 발전을 선도해야 할 언론이 이를 조장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한번쯤 뒤돌아볼 일이다.

“당신도 경마장에 가면 대박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허황된 유혹의 속삭임은 경마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경마언론의 역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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