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4/02/07)  
 ‘국민기수’ 박태종

매일 매일이 곤욕이었다. 87년, 거리엔 입춘대길을 염원하는 글귀들이 대문마다 붙어있을 무렵 면허를 받고 6개월간 보수교육 겸 마방 실습을 거쳐 정식으로 데뷔했지만 1승도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같이 시작한 25명의 동기생들은 벌써 몇 승씩 거머쥐면서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금, 토, 일요일 3일간 경마를 했던 까닭에 그만큼 기승 횟수가 많았지만 좀처럼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15번을 경주에 나섰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 기수가 그를 조용히 불렀다. 그보다 2년 먼저 데뷔한 11기 선배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웬만하면 짐 싸 들고 시골로 내려가라!”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기수후보생 모집 공고를 보고 천직이다 싶었던 기수 생활을 그것도 재수 끝에 시작했지만 극단적인 자신에 대한 평가를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16번째 출전 끝에 ‘궁궐’을 타고 첫 승을 거뒀다. 아직도 현역 견습 기수인 그 선배의 박태종에 대한 평가는 정확히 빗나갔지만 1천 승의 처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자신의 오늘이 있기까지 그 선배의 한 마디를 아직도 고마워 하는 박태종 기수가 마침내 한국 경마 신기록을 달성했다. 그는 지난 토요일 마지막 경기에서 제일 먼저 결승선을 통과함으로써 통산 1천 번째 우승을 기록했다. 87년 데뷔한 이래, 17년 만의 업적이며 6,760전 만에 이룬 금자탑이다. 실황중계를 맡았던 아나운서가 “우리도 천 승의 기수를 갖게 됐다”고 말한 것처럼 박태종은 한국 경마 사에 커다란 획을 그었다.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외유내강’형의 성격이다. 그러나 그의 어눌한 말씨와 표정에서 알 수 있는 유순함만으로 그를 규정짓는 것은 절반의 포착일 뿐, 나머지를 못 본 실수다. 그것은 ‘왕눈이’라는 신체의 일부분을 확대한 별명만을 알고있는 사람들의 잘못은 아니다.

잘 알려진 일화들을 살펴보면 그의 오늘이 저절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세간의 평가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85년의 12기 기수시험에서 낙방의 고배를 마신 후, 그는 매일같이 마포에서 여의도까지 달리며 이를 악물었다. 낮에는 이모부 가게의 힘든 배달 일을 도맡으면서도 집에 돌아와서는 필기시험 공부에 매달렸다. 주경야독(晝耕夜讀)이었다.
그가 가장 믿고 따르는 영예 기수 최봉주는 박태종에 대해 “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독종”이라고 표현한다. 그에 따르면, 한번은 휴게실에서 탁구를 치고 있는데 그가 다가왔다. 몇 판인가를 함께 했지만 기초 실력이 형편없었다. 한참 동안을 주위에서 구경만 하더니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리고는 한참 후에 다시 나타났는데 아무도 그를 당해낼 수 가 없었다. 웬만한 탁구선수 수준의 실력이었다. 알고 보니 잠실의 체육진흥공단에서 실시하는 탁구강습을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지지않고 다녀왔던 것이다.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722승의 한국 신기록을 보유했던 김명국은 그를 “지독한 연습벌레”로 기억한다. 결국, 지기 싫어하는 천성과 노력이 자신이 직업으로 선택한 경마에서 크게 꽃을 피운 셈이다. 당시만 해도 훨씬 안정적일 수 있는 중장비 기사를 포기하고 장래가 불투명한 경마 기수의 길로 들어섰음에도 그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훌륭한 몸과 타고난 센스가 있었지만, 그가 명기수로 거듭날 수 있었던 데는 남보다 1시간이라도 더 훈련하는 노력이 있었음을 주변 사람들은 알고 있다.

경기를 앞두고는 상대 마필들의 경주 동영상을 보며 필승의 전략을 찾았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녹화해 둔 비디오를 통해 그날 그날의 잘잘못을 분석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이 한 번이라도 기승 했던 마필들의 단상을 꼼꼼히 기록해 둔 ‘박태종 파일’을 중요한 참고 자료로 활용했다. 신기록은 그렇게 완성되었던 것이다.

그의 업적달성을 계기로 신기록이 상품화되고 이벤트를 거쳐 언론이 박태종 알리기에 나선 최근의 노력은 긍정적인 일이다. 그렇게 경마를 세상에 알리는 일은 80년 경마 역사 대대로 애증의 사이였던 기수와 경마팬의 관계를 좀 더 성숙하고 떳떳하도록 만들지 않겠는가. 그에게 국민기수의 호칭을 선사하는 것을 아직은 사회가 용납하지 않을런지 모르지만 박태종이 이룩한 혁혁한 성과를 경마팬들마저 무시하는 편견은, 경마는 영원히 노름일 뿐이며 우리는 노름꾼이라는 불명예를 간직하는 어리석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오척단구(五尺短軀)의 촌놈이 묵묵히 한국 경마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새로 쓴 천 번의 승리와 앞으로 덧붙여질 기록들은 더 이상 숫자가 아닌 신화로 기록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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