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4/04/03)  
 '신명나라'와 사지선다(四支選多)



단순해 보이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경마퀴즈 문제가 나왔다. 물론,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전에도 이와 비슷한 유형의 문제가 나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아직 결과를 알 수 없는 현재 진행형의 사건이다.

지난 3월 27일, 토요일 제 7경주. 국내산 4군, 1400미터, 4세 이상마 별정경주. 최근 1년간 조건 상금을 기준으로 500만 원을 초과하는 경우, 300만 원 마다 1KG을 증량하는 별정 I-A경주다. 쉽게 말해서 조건 상금이 800만 원을 넘지 않으면 정해진 말의 나이를 기초로 부담중량을 받는 마령 경주인 셈이다.

출마투표 결과 확정된 대진표를 보니 모두 12마리가 출전 신청을 마쳤다. 경주 조건에 맞게 4세마 열 마리와 5세마 두 마리가 나왔다. 그런데 눈길을 끈 것은 5세마 가운데 10번마 "신명나라"였다. 총 11번을 뛰는 동안 2착 1회를 기록한 그저 그런 말이었다. 선행을 하면 유리할 것이라는 예상 전문인들의 평가가 있었지만 5살이 되도록 1승도 올리지 못했다면 경마장 용어로 "똥말"이었다.

하지만, 변변치 않은 '신명나라'를 주목한 것은 마령을 기본으로 부담중량을 더해야하는 조건에 나온 말들의 조건상금을 살핀 결과 이 말이 국산 5군마라는 사실이었다. 조건 상금이 400만원 이상이어야 하는 국산 4군마 게임에 그동안 번 상금이 320여 만 원에 불과한 5군마가 점핑 출주를 한 것이었다.

경마시행규정에 모든 경주마는 1개 상위군에 한해 점핑 출주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니 문제는 없었다. 그렇다면 왜 월군(越群)했을까가 우승마 추리를 하는 관건이었다. 7경주 자체가 혼전 경주로 분류되어 있었고 복병마를 고르는 팬들의 구미에 부합할만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명나라'는 단승식과 연승식 인기도에서 모두 5위에 랭크되었다. 복승식에서는 해당경주 최고 인기마로 팔린 "한라의기적"과 묶어서 14.6배라는 비교적 낮은 배당을 만들어 냈다. 복연승식으로는 인기마 세 마리와 엮어서 10배 미만의 점배당을 과시했다.

배당판의 바람을 주목하고 있던 옆자리의 지인(知人)이 갑자기 무릎을 치며 탄성을 질렀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연합의 상임고문인 그는 앞선 5경주를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5경주를 보라구! 5군마 경주가 따로 있고 이번 경주하고 조건이 똑같잖아! 근데 왜 4군마 게임에 나온거냐구?"

그랬다. 경주거리도 1400미터였고 4세 이상마라는 연령 조건도 같았다. 다만, 부담 중량이 마령 경주라는 것이 달랐다. 하지만 "신명나라"의 경우에는 어느 경주에 출전을 해도 부담중량은 54KG으로 변동이 없었다. 출전 두수도 9마리로 단출해서 제한 규정두수까지는 다섯 마리의 여유까지 있었다. 3착만 해도 승군할 정도로 조건상금에 여유가 있어서 이를 기준으로 하는 투표 탈락의 우려도 없었다. 그렇다면 왜 7경주를 선택한 것일까.

3월 경마시행 계획에 따르면 국산 5군에 한정된 조건의 게임은 모두 33경주. 그 중에서 "신명나라"에게 유리한 4세 이상의 조건은 4개 경주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우승이나 입상을 하여 상금을 벌 기회를 마다하고 상위군에 출전하는 모험을 강행한 것일까에 대한 결론은 세 가지로 좁혀졌다.

심상치 않은 배당판의 분위기처럼 깜짝 월군하여 깜짝 강 승부를 펼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5경주나 7경주 모두 강력한 우승 후보마가 없는 혼전의 상황에서 오히려 7경주의 상대마들이 훨씬 수월할지도 모른다는 예상이 이를 뒷받침했다. 두 번째는, 3착 승군에 걸려있는 상황에서 '센 말'들과의 일전을 통해 전력을 다지려는 계획일거라는 추론이었으며 마지막으로는 마주의 출마투표 권한을 위임받은 조교사가 해당일에 5군마 경주가 있는 것을 몰랐다는 체념적인 의견으로 모아졌다.

아직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여러 가지 가정이 가능했지만 '신명나라'는 결국 6착에 머물렀다. 유심히 경주를 지켜 본 주위의 사람들은 첫 번째 가능성이 빗나간 데 대해 아쉬워하는 눈치였지만 나머지 어느 경우인지에 대해서는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능력을 아껴두었다가 속칭 쏴 먹으려 했지만 실패한 것인지 아니면 한번 더 때를 기다리는 "가꾸시"였거나 말 그대로 쉬운 길을 애당초 모르고 있었는지는 당사자들만 알 일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국산 5군에 머물러 있는 5세 마필들의 공통점은 싹수가 노란 말이라는 점이다. 발전 가능성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이 났고 마주나 마방의 기대는 포기한 지 오래다. 대체적인 말로(末路) 역시 그러다가 슬그머니 사라지는 게 통례인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많은 사람의 관심권 밖에 있게 마련이다.

그 점이 바로 이번 문제를 푸는 핵심 키워드는 아닐까. 능력있는 우승 가능마를 추리하기보다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운 군별 제도를 다양하게 시험하는 우리 경주마들의 의도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현실에서, 다음달이면 어김없이 주로에 모습을 드러낼 '신명나라'의 행보가 궁금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첫 번째 추론은 어긋났지만 과연 답은 2번일까, 3번일까 아니면 준비된 계획을 수정하는 의외의 4번이 정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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