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4/05/01)  
 발레리노


"학교를 거의 다니지 못하고 경마장에 들어와서 말하고만 살았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는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남들처럼 정상적인 길을 걷지는 않았지만 말을 너무나 좋아해서 결국 조교사가 되었다는 고백은 일전의 공식적인 행사에서 그가 자신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솔직한 그의 모습에 반했다.

20여 년을 마필관리사로 일하다가 지난해 조교사가 되었다. 불과 1년만에 25마리의 관리마를 보유한 것도 따지고 보면 그의 성실함과 남다른 노력 때문이었다. 마방을 처음 개업할 당시 불과 몇 마리로 시작했지만 관리사 퇴직금을 털어 마방 앞의 양지바른 공터에 일광욕을 겸한 마필 놀이터를 손수 만드는 열의를 보였다. 오후의 정해진 운동 시간이 아니면 햇볕 구경을 못하는 말들을 위해 2천만원의 자비를 들였다. 마방의 터가 원래 공동 마사였던 까닭에 주변에 약간의 공터가 있었던 것이 그에게는 행운이었다. 스스로도 자신은 복 받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마방 내부의 낡은 구조물들을 고치고 관리사 대기실을 개조하여 다용도실로 개조하였으며 사료 급식시설을 현대화한 그의 열정은 아무리 칭찬을 해도 모자를 것이다.

커다란 덩치에 비해 심성은 순박함 쪽에 가깝다. 조교사 생활 1년만에 지난달에는 최고로 많은 200만원을 벌어 집에 갔다 줬다며 부끄럽게 웃었다. 가족들과 함께 조촐한 삼겹살 파티를 했지만 남부럽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관리사 시절의 월급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자신이 직접 마방의 책임자가 되어 신마를 순치 조교하고 경주에 내보내 잘 달리게 하는 조교사의 역할이 천직이라며 자랑스러워한다.

사실, 경마장에서 조교사의 능력을 가름하는 잣대를 설명하기는 쉬우면서 어려운 문제다. 조교사 입장에서는 마방 상금 많이 벌고 신마수급 적절히 이루어지고 기수, 관리사와의 호흡에 문제가 없다면 그야말로 '장땡'이다. 하지만, 현실이 어디 그런가. 현재 476명의 마주 가운데 절반 정도가 평균 3두의 경주마를 보유하는 상황에서 말 한 마리 가격을 삼천만원 정도로 잡으면 마주의 절반 정도가 1억원에 육박하는 투자를 하는 셈이다. 그런 그들이 유능한 조교사와 능력있는 마방을 고르는 것은 당연지사. 따라서 조교사가 소지해야 할 능력은 마주의 요구 수준을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요구 사안이다. 아무래도 좋으니 상금만 많이 벌어달라는 마주가 있을 것이며, 염불보다는 젯밥이라고 상금보다는 승부 타이밍을 정확하게 맞춰달라는 마주도 있을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마주와 마방 관리사들을 아우르고 보살펴야 하며 기수 선정에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게다가 실질적인 고객인 경마팬의 입장도 헤아려야 한다. 조교사가 갖고있는 경주 작전권이 오용되거나 왜곡 사용되어서 공정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는데 대해서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아무리 개인사업자라지만 이쯤되면 한국경마를 책임지는 최일선의 책임자라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서, 말을 경주에 내보낸 이상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를 얻으면 경마팬을 비롯한 모두에게 보답하는 것이라는 그의 소신과 지론은 고맙기까지 하다.

그런 그이지만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 어려움은 있다. 지난주 토요일 7경주. 그가 내보낸 '발레리노'는 팬들의 승마투표 결과, 단식, 연식, 복식에서 두 번째로 높게 팔렸으며 쌍식에서는 속칭 '대가리'로 팔렸다. 최근에 장기 휴양을 하긴 했지만 지난해 코리안더비에서 5착을 한 '발레리노'에 거는 팬들의 기대가 그만큼 컸던 까닭이다.

하지만, 7착에 머무른 '발레리노'는 이번에 전력질주하지 않는다고 이미 예고를 한 셈이었다. 최근 들어 또 다시 건염이 재발한 그에게 56KG의 부담중량은 너무 무거웠다. 그렇지만 이 무게를 고수하기로 한 것이다. 바로 다음 날 예정된 3세 이상, 국산 4군, 1700M 경주는 별정 경주라서 지난 1년간 수득조건상금이 0원인 그는 -3KG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편성강도가 오히려 약한데다 3KG을 덜 달고 나올 수 있는 경주를 마다하고 불리한 조건에 출전한 것은 '안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이해될 상황이었다.

그가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은 '경주에 승리하고자 하는 의사가 없이 말을 출주시켜서는 아니 된다'는 경마시행규정 제40조를 준수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얇고 가벼운 서울경마장의 말들 가운데 특히 국산마들은 육성과정의 취약함과 근본적인 문제 때문에 골막염을 숙명처럼 달고 살아야 한다. 재발의 우려를 무시하고 매 경주 혹사를 했다가는 마방의 모든 말들은 육용으로 용도 전환해야 할 상황이 바로 우리 경마의 현실인 것이다.

그런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아쉬운 것은 해당경주에 '발레리노'에게 건 팬들의 돈이다. 최선의 질주를 전제로 한 팬들의 선택이 결국 지붕 위의 닭을 쳐다보는 꼴이 되어버린 셈이다. 안타깝게도 어쨌든 그에게는 불명예스러운 결과였지만 그 결과에 대해 책임져야 할 당사자는 그뿐만이 아니다. 당사자는 경마인 모두다. 우리 모두가 불합리한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고 순수한 열정으로 시작한 그의 경마 인생을 보살펴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경마가 공정해지고 발전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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