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4/05/22)  
 나흘 만 더 합시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 매출을 늘리기 위해 서점이 내 놓은 캐치 프레이즈 란 걸 눈치채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일 년 중, 가을철에 책의 매출이 가장 적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서점의 저의를 짐작하게 마련이다.

서점의 사례는 차라리 애교에 가깝지만 지금 우리 기업들이 펼치는 악전고투는 관전하기가 민망할 정도에 이르렀다. 장기 불황의 여파로 저조한 매출을 늘리기 위한 기업들의 몸부림은 더 이상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불황의 고비를 넘어서느냐, 주저앉느냐의 차이는 기업의 사활을 결정하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잘나갈 때에는 탱크주의를 앞세워 막무가내 식으로 밀어붙였지만 포화된 시장이 불황과 맞닥트리면서 보여준 추락의 모습은 역사로 증명하는 우리 경제의 자화상이다. 예전의 카드회사들이 그랬다. 수요가 포화되자 길거리 모집행위와 카드 발행 남발이 성행하고 기업형 모집인들이 오히려 카드사를 좌지우지하는 상황까지 빚어졌다. 당연히 경영수지는 악화되었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도 목에 휴대폰을 걸고 다닌다고 할 만큼 포화상태에 이른 휴대폰시장도 카드와 마찬가지다. 신규 가입자는 사실상 중단된 터에 매출을 늘려야 하다 보니 갖가지 무리수와 마구잡이식 고객유치가 저질러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계열사와 하청관련 업체들은 떠넘기는 휴대폰을 처리하는 게 골치 아픈 일상 다반사가 되어 버렸다. 휴대폰 가입자 3,000만명 시대를 자랑하며 최첨단 정보기술 강국으로 우뚝 섰지만 왜곡된 휴대폰시장 구조가 지속된다면 카드사들의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불과 몇 년 전 카드시장의 구태를 똑같이 되풀이하는 것은 통신회사 뿐만 아니다. 적어도 발상만큼은 마사회가 따라하고 있다. 30여 년 동안 매년 매출이 증대함에 따라 가마니에 돈을 담는 업무 처리만 기형적으로 발달한 마사회가 불황의 늪이 깊어지자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2002년 하루 평균 매출액은 749억원이었지만 지난해에는 599억원으로, 올해에는 5월 현재 504억원으로 추락했다. 2년 사이에 32.8%나 감소한 것이다. 올해 매출액의 손익분기점은 5조3천억원으로 하루 평균 564억원이다. 벌써 주말마다 120억원 씩 밑도는 상황이다. 입장인원마저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3월 17만9467명이었던 하루 평균 입장인원이 올해 같은 기간에는 15만5033명에 그쳤다.

지난 72년 공동 경마시행체였던 덕마흥업을 인수하고부터 태평성대를 노래하던 마사회가 최대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지난해부터 위기대책반을 가동하고 추락하는 매출액을 최고 경영자가 일일이 점검하기에 이르렀다. 올해 들어도 진정 기미가 안보이자 대책을 내놓았다. 94일로 예정된 경마일을 나흘 더 늘이겠다는 계획이다.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것이 경주마 보호를 위한 혹한·혹서기와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에도 경마를 열자는 발상이다.

겨우, 사흘 더해서 코 묻은 돈 얼마를 더 뺏어 먹겠다고 내놓는 대책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지난해 야간 경마 사흘 더하자고 했다가 경주마와 마필관계자의 피로 누적 때문에 사고 위험성이 높다며 거절당한 기억은 아랑곳하지 않고 또다시 철없는 대책을 들고 나온 것은 보기에도 딱하다. 매출 하락이 마사회장의 목을 날릴 정도의 심각한 인사 요인이라면 올 경마계획을 수립하는 지난해 말에 더 책정했으면 될 일이었을 텐데 이제 와서 부산을 떠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경기가 나아지고 금융권이 여신한도와 신용카드 한도액 높이길 기다릴 것이 아니라 매출액 하락의 근본 원인을 분석하고 실질적인 대책마련이 우선이다.

무분별한 자본투자와 경마수익재원의 과다한 외부유출이 매출 하락과 만나 마사회의 경영위기를 불러 왔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거기에, 흥미를 상실하여 경마팬들이 떠난 지금의 빈자리가 우리 경마의 몰락을 대변해주는 상황이다. 마사회가 5조3천억원의 매출로도 적자를 걱정해야 할 팔자가 되고 말았다면 대책은 더 큰데서 찾아야 한다.

부적절한 부지에 지역개발이라는 정치적 논리에 휘둘려 추진된 부산·경남경마장이나 장수 제2육성목장의 대형 투자 사업들과 그에 따르는 유지비용이 카드회사나 통신회사의 사례처럼 마사회의 뒷목을 조를 줄은 몰랐을 거다. 향후 5년 동안 무려 2,137억원의 누적적자가 예상되는 제2경마장은 지금까지 5천억원 가까운 투자를 한 것도 모자라 향후 엄청난 적자운영이 예상되는 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 없이 기껏 내놓은 게 나흘 경마 연장 책이라면 이 얼마나 단세포적인 집단의 기획력인가.

진정으로, 경영수지가 걱정된다면 2001년 지방교육세율 인상으로 1,984억원의 세전 순이익이 감소했고, 2002년 특별적립금 출연비율 확대 때문에 617억원의 투자재원이 줄었으며 FTA 기금 확보를 이유로 농어촌특별세를 2014년까지 10년간 연장한데서 보듯이 경마수익 재원의 과도한 외부유출로 빚어지는 피해를 줄이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이를 위한 조직의 역량을 집중하고 실천하는 것이 마사회 경영진이 할 일이며 마사회가 사는 길이요 경마산업 종사자 모두를 살리는 길이다.

사흘 연장 책은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 관련단체 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계획은 흐지부지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주먹구구식 셈본에만 집착하는 마사회 고위층은 또 어떤 꼼수를 내놓을지 궁금해진다. 경마 사흘 연장이 매출 하락을 만회하고 경영수지를 높이는 묘수라고 생각한다면 아예 주 5일 경마는 어떤가. 그래도 안되면 365일은 또 어떠랴. 경주마 자원이 열악하고 경주 질이 걱정된다는 비난 여론에 봉착하면 이렇게 대응하라. 2004년에 시행한 1,082회의 경주 수는 그대로 유지한다! 다만, 하루에 3 경주씩만 한다고. 그리하여 경마의 르네상스를 꿈꾸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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