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3/12/13)  
 마사회 놈들이 편하자고 그러는 거여!


과천의 경마장은 주말이면 어김없이 서는 장터다. 이른 아침부터 하나 둘 씩 듬성듬성 빈자리를 메웠다가 경마가 끝나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그럴 즈음, 경마장 일대에는 목로주점들이 들어선다. 사람들은 값싼 안주와 소주로 하루 경마를 마감한다. 그날의 활약상이나 아쉬운 패배를 또 다른 안주 삼아 다음날의 전의를 불태우기도 하고, 경마를 끊고야 말겠다는 아직껏 지키지 못한 맹세를 되풀이하기도 한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은 몹시 흥분해 있었다. 페이지마다 깨알같은 총천연색 메모가 되어 있는 전문지를 안주머니에서 꺼내며 우리의 경마시행제도가 엉터리라고 했다.
“자! 보세요. 여기 보면 5번마가 게이트 들어갔다가 부상입고 경주 제외됐죠?”
지난 일요일 마지막 경주를 말하는 거였다. 발주준비 중 마체 이상으로 발주 제외된 ‘천년승’을 말함이다.
“경주 제외든 발주 제외든 좋다 이거예요! 이상이 있으면 빼는 게 당연하죠. 그런데 그랬으면 마권을 첨부터 다시 팔아야죠! 난 5번마가 선행을 나갈 꺼니깐 대가리로 팔린 효섭이 7번은 없다고 봤거든요”
“나두 저 친구 말 듣고 7번은 뺐어요. 5번이 설사 선행을 못한다 해도 7번이 어려운 선행을 나서서는 나중에 힘이 부칠 거 같았죠”
옆에 있던 그의 동료가 거든다. 처음의 남자는 내가 자리를 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동료를 제지하고 말을 잇는다.
“그런 것두 있죠? 발주기 문이 고장 나면 맨 끝 번 다음에 들어가서 뛰는 거요?” 예를 들어 1번 문에 이상이 있으면 14번 마 다음인 15번 예비 칸에서 출발하는 경마시행규정을 알고 있었다.
“그게 웃기는 거래니깐요. 아니 엄청나게 유리한 1번 자리에 선행마가 있는 것으로 경주전개를 생각하고 마권을 샀는데 발매 마감하고 갑자기 고장 났다고 15번 자리에서 뛴다는 게 말이 됩니까? 말이?”
말에 악벽이 있어서 발주기 문을 파손했거나 다른 말에 위험을 주어 불이익을 초래케 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될 경우에는 다른 발주기 칸에서 발주시킬 수 있다고 돼있다.
“아따! 마사회 놈들이 편하자고 그러는 거여!”
또 다른 동료가 거들고 나선다.
“그렇다면, 1번은 2번으로, 2번은 3번 자리로 한 칸 씩 밀리면 될 거 아니오? 그래야 공정한 거지. 아니면 첨부터 다시 가위 바위 보를 하던가!”

신관 6층에 가면 젊은 사람들과 같은 테이블에서 어울리는 반백의 신사를 볼 수 있다. 광화문 근처의 모 한의원 원장인 그는 칠순이 넘은 나이지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일산 자택에서 과천까지 직접 차를 몰고 온다.
뚝섬 시절부터 우리 경마의 역사를 꿰차고 있는 그는 평소에는 말수가 적은 편이지만 경마이야기만 나오면 어린아이처럼 신나 한다. 그러나 얘기가 마사회 쪽으로 흐르면 달라진다. 확실하게 알아두라는 노파심인지 옆에 앉은 나의 무릎에 한 손을 올려놓은 채 당부하듯이 말한다.
“자네 말야! 우리 나라에서 제일 돌대가리들이 누군지 아나?”앞뒤 상황이 연결되지 않으면 이것저것 과연 누구일까를 곰곰이 따져봐야 하겠지만 경마장에서 하는 대화 중에 ‘돌대가리’를 찾으라면 그거야 일단 반은 맞춘 셈이다. 하지만, 어른이 말하는 데 대뜸 안다고 나설 일도 아니다.
“그건 말야, 바로 마사회 놈들이야!”
왜 그러냐고 물어야 한다.
“내가 경마를 50년 하는 동안 세상은 엄청나게 변했는데 딱 하나 변하지 않은 데가 마사회야”
겉으로 봐서야 조직 내부가 어떤지 알 수 있겠나. 들어가 보지 않은 채 기웃거려 구경한 것이 전부는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마사회 역시 조직의 기본이랄 수 있는 생동감이 전혀 없는 곳이다. 생동감과 변화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그게 만물의 이치야. 죽어있는데 어찌 변화를 하겠나? 고인 물은 악취가 나고 죽은 것은 썩는 법이지”
썩었다고 했다가 명예훼손을 대들면 어떡할까 싶은데.
“개구리 배꼽 찾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해! 자네 여기가 어딘가?”
“신관 6층 정장실입니다”
“주위를 둘러봐. 다들 양복에 넥타이 매고 마권 사지?”
“그거야 정장을 안 하면 입장을 안 시키니까...”
“그러니깐 마사회 놈들이 돌대가리고 말이 앞뒤가 안 맞는다는 거야. 맨날 경마는 레저라고 선전하면서 말야”
“......”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레저를 즐기러 돈 내고 찾아가는 곳 중에 넥타이 안 매면 못 들어가게 하는 데가 대한민국 어디에 있나? 넥타이 매고 하는 레저가 어디 있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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