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4/06/05)  
 또 다른 만남

기수양성소를 졸업하고 뚝섬에서 정식 기수로 데뷔할 무렵이었다. 어느 날, 부친이 돌아 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본가가 있는 서울의 달동네까지 어떻게 갔는지조차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러나 울면서 집에 도착한 그는 정신을 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단칸 판잣집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하늘같았던 대 고참 선배기수는 물론이고 얼굴도 이름도 잘 모르는 조교사, 관리사를 합해 수 백명은 되는 것 같았다. 일가친척들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출세했다고 격려했다.

그는 출세라고 기억하지만 애당초 그들은 각별한 사이였다. 93년 개인마주제 이전까지만 해도 같은 마사회 직원 신분으로 그야말로 한솥밥을 먹는 가족 관계였다. 사제지간인 동시에 선후배 서열에 입각한 형제였다. 애경사가 생기면 십시일반 힘을 모으고 정을 함께 한 식구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개인마주제와 더불어 개인사업자의 신분으로 더 이상 마사회 직원 신분이 아니다. 그러던 것이 기수들이 조기단(調騎團)에서 탈퇴하여 독자적인 협회를 만들면서 이들의 관계는 소원해져 갔다. 준마아파트 전화 단자함에서 경마꾼들이 도청한 테이프 사건으로 기수복을 벗을 위기에 처했던 당사자들은 새로 부임한 마사회장과의 거래를 통해 기수 독립이라는 총대를 멨다. 기승과 관련하여 부당한 지시를 내린다는 의혹이 있던 몇몇의 조교사를 공개 처형시키며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었을 정도로 자구책은 피비린내를 풍겼다.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이상 스승이 아니었으며 친형제 간은 더더욱 아니었다. 오직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만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멀어져 갔다.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갔다. 공정 경마를 구현하며 기수들의 권익을 위한다는 명분을 드높이고 기수협회가 출범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앙금만 쌓여갔으며, 대외적으로 내걸었던 취지가 실현되고 있는지의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근래 들어 애경사는 그들만의 모임이 되어 버렸다.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제외하면 조교사는 조교사끼리 기수들은 기수끼리만 얼굴을 내민다. 하고 있는 일들은 동반자적인 업무인데도 이해득실을 따지며 철저히 계산하는 형편이 되어 버렸다. 예전의 장례식장에 기수와 조교사의 부인들이 하얀 소복을 입고 궂은 일을 마다 않으며 손님을 맞이하던 정겨운 풍경들은 이제 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개인마주제의 출범이 이들의 관계를 벌려놓았다는 지적도 있다. 조교사는 마주의 우승기대 심리를 만족시켜야 할 부담감이 새로 생겼다. 마사회가 나눠준 말을 배급받아 대충 먹고살았던 93년 이전과 비교하면 밥줄을 거머쥔 마주의 어떤 요구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기수들은 박탈감을 느끼게 되었고 마주는 책임을 돌릴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기수 기승에 관한 전권을 가진 조교사가 소속 조 기수에게 능력마 기승을 시키지 않으면서 대는 핑계가 마주의 뜻이라고 둘러댈 수 있다. 실제 마주의 의중인지를 알아볼 수 없는 기수입장에서는 조교사에 대한 오해와 불신이 생겼다. 매 경주 최선을 다하고 정비된 프로의식하에 우승열패를 다툰다는 경마의 기본 메커니즘과 관계없이 기수들의 부익부 빈익빈은 심화되어 절반이 넘는 기수들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기수들의 경마부정이 생계형 사건임을 부인 못 하는 상황에서 경마 창출자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스스로 짚어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10년이 넘었어도 제대로 정착 안 된 마주제 때문에 반목과 불협화음이 불거져 온 것이나, 소속 조 기수의 기승 비율을 50% 이상으로 규정한 제도가 유명무실해진 것이나, 1일 기승 횟수를 6회로 제한한 한시적 제도가 아직도 폐기되지 못하는 속사정 등은 난마처럼 얽힌 마방 내부의 상황을 대변해준다. 이런 모든 현안에 대해 서로의 인식을 확인하고 해결방안의 모색을 더 이상 회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내일 모레 현충일 다음날, 경마공원 잔디밭에서는 조교사와 기수가 이색적인 만남을 갖는다. 매일 매일 마방에서 얼굴을 맞대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이지만 이 날만큼은 모두가 한자리에 모인다. 사제관계이자 선후배 사이에 오해가 있었다면 풀고 미움이 있었다면 용서하고 새로운 약속이 가능하다면 서로 손을 맞잡는 자리다.

그들이 해결해야하는 난제들만큼이나 우리 경마가 풀어야 할 숙제들은 많다. 때문에 경마라는 상품을 직접 제조하는 창출자들 간의 반목은 경위와 곡절을 떠나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은 각자가 개인 사업자의 신분이지만 우리 경마를 책임지고 있는 실질적인 대표들이다. 이번의 만남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진정한 의미의 노사간 협력의 기틀을 다질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6.25동란 중에도 뿔뿔이 흩어진 말들을 모아 명맥을 유지한 선배들의 혼과 정열을 이어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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