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3/04/12)  
 신분증을 까라고?



80년대를 뜨겁게 살아 온 사람들에게 최루탄과 닭장차와 불심검문의 기억을 떠올려라 하면 피식 웃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몸 속 어디에 그 많은 눈물과 콧물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게 해주던 최루탄의 효능은 매운 안주의 술자리에서나 간혹 꺼내는 추억이 되어버린 지 오래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그때 자유와 인권의 소중함을 혹독한 대가를 지불하며 몸으로 배웠다. 그러나 이미 획득했다고 여기는 탓인지 등한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그 인권을 요즘 다시 생각한다. 인권이 반드시 오랫동안 교도소에 감금된 양심수라든가 시국사건에 연루되었거나 정치적 주장 때문에 박해받는 사람들에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국가권력의 부당한 행사로 피해를 본다면 그것이 바로 인권침해다.

경마장을 찾는 대다수의 경마팬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경찰의 불심검문이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문제가 되고 있다. 4월 한 달을 수배자 검거 집중기간으로 정한 과천경찰서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경마팬들의 걸음을 가로막음으로써 불만과 원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객관적인 정황 근거 없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번 불심검문은 음주운전 단속처럼 모두가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일 것이라는 경찰의 지목을 받은 경마팬을 상대로 이루어진다. 그러다 보니 당사자는 모욕감을 느끼게되고 심지어는 하루에 세 차례나 검문을 당했다는 경마팬이 나오는 실정이다. 게다가 경찰이 소속과 성명을 밝히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검문의 목적과 이유 등을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현행 ‘경찰관 직무집행법’을 어기고 있다는 것이 검문을 당해본 사람들의 얘기다.

한해에 발생하는 15만 여명의 기소중지자가 모두 경마장에 은신하고 있다고 여기는지 시흥지점의 경우는 장내 객석에까지 들어와 불쾌감을 조성한다는 소식이다. 문 앞에서 하는 것도 모자라 안방에까지 쳐들어와 신분증을 내 놓으라는 것은 공권력의 남용이라는 지적이다.

지난해부터 세 차례에 걸쳐 경마장에서 촬영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영화사의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한 마사회가 현행범 검거도 아닌 기소중지자가 있는가 확인해보겠다는 경찰을 안방까지 불러들이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와일드 카드」라는 영화 내용 중에 범인의 검거 장소가 경마장이라는 설정은 강간범이나 살인범들이 들락거리는 매우 음습한 장소라는 이미지를 연상케 할 개연성이 충분하다며 영화사의 항의를 반박한 마사회다. 그렇다면 잘못 알고 찾아 온 경찰에게 이곳엔 범죄자들이 드나드는 음습한 곳이 아니라고 점잖게 타일러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경찰은 이미 경마장이 범죄자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라고 알고 와있는데 영화사에는 시치미를 뗀 셈이다.

편의성만을 고려한 경찰의 ‘낚시 수사’는 지양되어야 하며 불심검문의 요건을 강화하여 경마장에서 이뤄지는 경찰업무 전반에 걸쳐 인권의 사각지대는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한다. 아울러 마사회는 짜증나는 검문을 문단속할 막중한 책무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부당한 공권력의 과잉 사용에 따른 인권유린을 막아내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며 우리 경마의 대외적인 이미지 제고를 위한 첫걸음이다.

'아버지가 가장 불쌍해 보일 때'라는 질문에 적지 않은 초등학생들이 복권을 맞추어보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다는 통계가 있다는데 벚꽃축제가 열리는 경마장을 찾았을 때 불심검문을 당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마주한다면 아이들은 아버지를 구해야한다는 절박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같은 과천지역이라도 서울대공원에는 없는 불심검문이 서울경마공원에만 있었다고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까지 기억한다면 우리 경마의 이미지는 이 모양 이 꼴 그대로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마팬에 대한 비하(卑下)를 방치하는 것은 경마는 범죄자들의 놀이라는 왜곡된 등식을 더욱 굳건하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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