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3/07/12)  
 신임 마사회장의 조건 ②

평소 흉금 없이 터놓고 지내는 경마장의 아는 사람이 지난주의 칼럼을 보고 전화를 했다. 마사회장이 공석이 된지 오래인데 무슨 까닭이 있는 지 궁금하다는 물음이었다. 그밖에도 몇 가지가 있어 주고받은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Q) 마사회장은 언제 오나
(A) 농림부가 약속한 한 달의 시한이 다되었고 더 이상 회장 공백을 방치할 명분이 없다. 오늘이 될지 내일일지 모르겠다. 늦어도 다음주까지는 윤곽을 드러내지 않겠나.

(Q) 왜 한 달이 필요했나
(A) 설명하자면 좀 긴데...윤영호 전 회장이 물러난 이유를 아는가. 마사회 직원 노조가 그에게 부산경마장의 본부장을 직원출신 이사로 임명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를 들어줄 능력이 없었다. 농림부를 설득해야 하는데 그것도 만만치 않았다. 노조는 체육대회를 무산시키면서까지 윤 회장을 압박했고 농림부는 회장의 조직 장악력에 하자가 있다고 빨간 줄을 쳤다.

(Q) 근데 왜 한 달이냐고
(A) 설명이 길다고 했다. 참여정부 들어서면서 농림부는 새 회장을 내려보내고 싶었지만 윤회장의 임기가 남아있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붓자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여러모로 종용했지만 윤 회장이 끝까지 버티다가 이 지경이 됐던 것이다. 그런데 얼씨구나 하고 새 회장을 내려보내면 너무 속보이잖아. 회장 공모제를 통해서 추천을 받고 검증받은 인물을 임명한다는 참여정부의 방침을 따르는 시간도 필요했고.

(Q) 공모제는 안 했다면서
(A) 그건 언론 보도용이었던 모양이다.  

(Q) 어쨌든, 경마장을 갈아엎을 개혁적인 회장이 필요한데
(A) 그런 인물이 온다 면이야 경마장 대문에 마중 나가 큰절이라도 하고 싶다. 경마팬들이야 그런 사람 원하지만 한번 따져 보자. 마주협회나 조교사, 기수협회는 자신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결국 상금 많이 책정해줄 회장이 최고 아니겠나. 그래서 그런 사람 기다릴 게고 마사회 노조는 직원들의 집단 자부심과 이익을 위해 벌써부터 뻘건 천에 낙하산 인사 반대한다고 써서 경마장 곳곳에 걸어놨다.

(Q) 낙하산 회장 오면 노조가 농성하나. 마사회 노조가 그리 대단해?
(A) 어느 공기업이든 새 회장이 오면 노조의 길들이기는 의례 있는 일. 당연히 경마를 모르는 사람이 오면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흠집을 내며 기선을 제압하고 조직의 중 상위 간부들은 자신의 전문성을 무기로 최고 경영자를 교묘하게 조종하려는 경향을 드러낸다. 정통성이 떨어지는 낙하산은 이를 상쇄하기 위해 '당근'을 약속하며 노조에 많은 복지혜택을 준다. '좋은 게 좋은 것'이고 '기브 앤 테이크'다. 그렇게 노조와 타협을 하게 되고 대개 밀월을 한다. 몰랐나.

(Q) 하긴, 3년 전에 윤 회장 올 때도 그랬던 것 같네
(A) 대단한 기억력이군. 당시 노조에서 출근 저지운동을 했다. 정문에 현수막 걸고 본관 입구에서는 머리띠 두르고 데모한 거 맞다. 노조의 파워가 상대적으로 강한 공기업 노조가 자주 쓰는 수법이다. 한 번도 내부승진으로 직원출신이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마사회의 운명이랄까.

(Q) 그럼 이번엔 낙하산 회장이 안 온다는 건가
(A) 그렇게야 되겠나. 지금 노조가 주장하는 반대운동은 엄밀히 말하면 부산본부장 자리에 낙하산을 보내지 말라는 요구다. 그 자리에 직원출신을 임명해달라는 거다. 마사회법에 직원출신 이사를 '2명까지'에서 '2명 이상'으로 개정했거든. 그러니깐 사회적으로 여론의 대접을 못 받는 '낙하산'을 부각시키면서 목적을 달성하자는 계산이다.

(Q) 직원출신 이사가 두 명이냐 세 명이냐가 그리 중요한가. 그러니까 노름판에서 고리나 뜯는 좀팽이라는 소릴 듣지.
(A) 배포가 작긴 작지? 최소한 부회장 정도는 직원 출신이 맡아야 한다고 해야지. 그래야 낙하산 이사들을 통제할 수 있을 텐데.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기인데 지난 6월 18일에 노조간부들이 농림부장관을 면담하러 과천청사를 방문했지만 쫓겨났다더라. 노조는 삼천 명이 넘는 경마장 아르바이트생을 포함해 4,052명의 서명을 받아 들고 보무도 당당하게 들어갔는데 장관이 노조간부를 만난 전례가 없고 이사의 임명은 마사회장이 하고 농림부는 승인만 하는 건데 왜 여기 와서 떠드는 거냐고 문전박대를 당했단다. 후훗. 할 말 없지 뭐.

(Q) 그 얘기 그만하고 솔직히 말해봐라. 회장은 누가 오나.
(A) 회장이 공석 되니 정말 말 많더라. 후보가 3천 명이 넘는다 서부터 농림부에 이력서가 150여 통 쌓여 있으며 자기가 잘 아는 사람이 회장으로 올 거라고 큰소리치는 사람들, 경마장에 수 십 명 있더라.

(Q) 치열한 경쟁이군. 마사회장이 남는 게 많은 모양인가
(A) 지난 해 매출이 7조 원을 넘었고 한 해 예산이 2천억 원을 웃도는 살림살이며 생색내기 안성맞춤인 각종 공익기부금과 축산진흥기금 등을 총괄하는 자리인데 탐나지 않겠는가. 예전에는 퇴역장군들 노후보장 자리였다가 그 이후로는 정치권의 곳간 지기라는 달갑지 않은 소릴 들으면서도 서로 오겠다고 힘쓰는 걸 보면 남는 건 몰라도 올만한 자리인가보다.

(Q) 몇 일전에 보도를 보니 마사회 해고자 13명이 복직 승소판결받아서 경마장으로 출근한다던데
(A) 대법원이 지난 98년 강제해고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묘하게도 판결 시점이 회장 공석 때인 점을 들어 신임회장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라는 분석도 있다. 해고자들이 정식 출근을 한 다음에 부임하는 것이 모양새가 좋다고 본 모양이다. 윤 전 회장이 판결을 피해 먼저 나갔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건 오버이지 싶다. 그는 98년 강제 해고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대법원 판결 날짜를 알고 있지 않았을 거다.

(Q) 지루하군.
(A) 알았다. 아는 대로 얘기하겠다. 현재 네 명 정도가 강력한 후보로 압축됐다더라. 회장 공석 되자마자 모 공기업 감사가 민주당의 후광을 업고 올 거라 했고 지난 대선에서 역할을 했던 농민운동가가 농림부에 연고권을 갖고 본인의 결심만 남긴 상태라 했다. 처음에는 이 중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전직 마사회장을 지낸 인물이 적임자라는 뜬금없는 소문도 돌았고 며칠 전부터는 현 마사회 부회장이 승진할 거라는 꽤 신빙성 있는 추측도 돈다.

(Q) 왜 하필 박창정인가
(A) 그 양반은 농림부 출신이다. 차관보에 농업진흥청 차장까지 지내다 마사회로 왔다. 마사회가 농림부 산하기관이니깐 퇴직 후의 자리를 보전해 준거지. 워낙 새 회장에 대해 억측이 분분하다 보니 잡음 없이 결정하자는 게 이 사람을 신임회장으로 앉히려는 것 같다.

(Q) 그럼 내부 승진이네
(A) 그렇게 된다면 농림부는 마사회 노조의 반발을 무마할 수 있고 자기 식구를 내세움으로써 친정체제를 확고히 할 수 있으니 꿩 먹고 알 먹고 이겠지. 무색무취의 관료 스타일이니 통제하기도 쉬울 테고. 노조에는 부산본부장을 직원 출신으로 하라고 선심을 쓰는 척하면서.

(Q) 색깔 없는 회장이라면 탈없이 임기만 마치려는 전임회장들과 다를 게 없잖아. 게다가 공석인 부회장 자리엔 어차피 낙하산이 내려올 텐데.
(A) 이상한 그림이 그려지지? 또한, 진짜 할 일없는 부회장이 온다면 62년에 폐지됐다가 90년 부활된 부회장 제도의 무용론이 또다시 고개를 들지도 모르지.

(Q) 그 밥에 그 나물이고 마사회 개혁은 물 건너간 건가
(A) 다 알면서 뭘 물어보나. 그렇게 안 되길 기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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