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3/08/30)  
 신임 마사회장에게 바란다 ③ - 王처럼 모신 댔지?


미국 경제가 대공황을 겪었던 1930년대에 대통령을 네 번 연임한 사람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하반신의 불구를 극복하고 미국의 경제를 일으켜 세웠으며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인물로 기억한다. 시사잡지 타임(Time)은 20세기를 이끈 인물로 아인슈타인에 이어 그를 꼽았고 링컨, 워싱턴과 함께 '미국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의 반열에 올렸다. 그 이유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지도력이 단순히 그 당시에만 국한되어 발휘된 것이 아닌 시대를 초월하여 인류가 보편적으로 추구해 온 가치를 가장 잘 헤아렸기 때문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국민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가. 그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것은 살림살이 나아지고 행복해지는 바람이 아닐까? 루스벨트는 국민이 경제공황과 실업난으로 불안에 떨고 있을 때 그 사람들을 직접 만났다. 대통령 관저의 난로 옆에서 이웃 아저씨처럼 친근한 말투로 노변담화(爐邊談話)를 했다. 정기적인 대화의 자리는 깡마른 정치와 경제에 피가 흐르게 하고 국민에게 안도와 희망을 찾아 주었던 것이다. 국민으로부터 감동의 편지가 밀어닥쳐 정리하는 데만 10명의 임시직원을 고용했을 정도였다.

나는 정책시행의 최고 책임자가 당사자인 국민과 시민을 직접 만나는 고전적인 의식이 지금도 진행되는 현장에서 70년 전의 루스벨트가 존경받는 이유를 찾는다. 국민의 정부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통치권자가 국민을 만나는 것과 이명박 서울시장이 매주 토요일 정오에 시민을 초대하고 과천시장이 목요일 오후 한 시간을 비워 놓는 것도 그렇다. 정치적인 목적 때문이라 할지라도 이 같은 기조를 유지하는 성실함과 봉사의 자세를 높이 평가한다.

그런데 경마팬 제일주의를 실현하겠다던 박창정 신임 마사회장의 약속은 공약(空約)이었나 보다. 팬서비스 개선을 통해 경마팬을 주인으로 모시겠다던 그의 취임사는 부하직원의 의례적인 수사(修辭)를 대독(代讀)한 것이 틀림없다. 취임한지 벌써 보름이 지났지만 경마팬을 직접 만나겠다는 구체적인 일정이나 계획은 찾아볼 수 없지 않은가.

그는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바쁘게 움직였다. 마주 단체장을 직접 찾아가 만났고 조교사협회와 기수협회를 방문하여 협조를 부탁하고 관계 개선을 약속했다. 이해를 구하는 과정은 신속하고 정중했지만 경마팬에겐 대고객 인사가 전부였다. 그리고 지금은 한가롭게 해외출장 중이다.

물론 신임회장에게만 "왜 대통령이나 시장들처럼 당신의 고객인 경마팬을 만나 고충을 경청하고 요구사항을 수렴하지 않느냐?"라고 말하는 것은 가혹한 요구일지도 모른다. 전임회장들도 똑같이 고객을 왕으로 대접하고 서비스를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그 누구도 비좁은 통로에서 매출증대에 헌신하는 경마팬을 찾아와 위로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한결같이 말로만 고객을 찾았다. 경마고객은 마사회의 경영상 접대어였을 뿐이며 경마팬의 입장을 헤아리겠다는 다짐은 거대 공기업의 말장난이자 헛소리였다.

그나마 고객모니터제도를 운영하면서 경마팬들의 불만을 듣고 서비스의 개선을 연구한다는 마사회의 주장은 모니터 제도가 어용화(御用化)되기 이전에나 가능한 얘기였다. 경마팬의 목소리를 듣는 자세는 화장실에 휴지가 떨어졌다는 모니터의 보고서가 전부가 아니라 경마가 재미없어 팬이 떠나는 본질적인 물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람석 구석구석을 회장이 돌아다니며 여과되지 않은 민원을 직접 청취해야 한다. 간부들의 보고 속에만 갇혀있다 보니 방송 인터뷰에 나가 '경마장에 부정경마는 없으며 사기사건만 있을 뿐'이라는 눈감고 코끼리 더듬는 소리를 하게 되고, 그런 편향된 사고에 안주하다 보니 검찰총장도 하지 못할 경마 사기를 예방하기 위해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겠다는 엉뚱한 대책을 내놓게 되는 것이다. 근절할 수 없는 부정경마에 대한 책임을 시행체인 마사회는 일부 경마관계자의 사기 사건으로 축소 왜곡하면서도 관리 감독권은 계속 보유하겠다는 공무원 정신이 한심할 따름이다.

이런 풍토에 익숙한 마사회장에게 '경마팬과의 만남의 자리'는 가당치도 않을 것이다. 뒤에서는 항상 청원경찰이 호위하고 관람대 6층의 그의 집무실로 향할 때는 재결의 신속성을 위해 경마팬도 양보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권위주의가 하찮은 노름꾼과 마주하기에는 고매하신 인품이 허락하지 않을 게다.

그럼에도 마사회장에게 바란다. 관악산에 올라 내려다보면 누구에게나 똑같아 보이는 경마장을 서로 다르게 그림 그리는 마사회와 경마 관계자와 경마팬의 그 다양한 시각에 귀 기울여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한 노력이 마사회장에게 부여된 임무다.

혹시라도 잊어버릴지 몰라 취임사에서 그대가 약속한 구절을 그대로 옮겨 놓을 테니 임기가 다하는 그날까지 두고두고 상기해주기 바란다.
"고객 없이는 경마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발상의 전환을 통하여 획기적인 서비스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경마팬들을 왕처럼 모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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