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4/08/28)  
 부자와 큰손


자본주의에서 가장 선망이 되는 대상은 단연 부자다. 우리나라 사유지의 절반 정도와 금융권 전체 예금의 55% 정도를 5% 내외의 그들이  보유하고 있으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특히나 요즘처럼 불황 때문에 소주도 안 팔리고, 라면판매도 줄어드는 판에 부자들을 상대로 한 100만원짜리 점심도시락의 매출이 늘고 있고 상하이와 방콕에 땅을 사고, 해외의 명품 구매 역시 여전하다 하니 서민의 입장에서는 부러움을 넘어 동경의 대상이 아닐까 싶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전, 경제부총리는“부자가 돈을 쓰게 해야 나라가 발전한다”고 말했다. 극단적인 소비형태는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며 부의 분배와 순환은 경제의 기본적인 명제라고 부연설명했다. 선진 자본주의 나라에서는 이의가 없는 원론적 얘기를, 그러나 깊은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우리 경제를 끌어내야 하는 책임자의 언급이라는 점에서 해석하면 내수진작과 투자 회복을 위해 부자들이 좀더 나서줘야 한다는 구조요청처럼 들린다. 그만큼 다급한 모양이다.

추락의 끝이 어딘지를 가늠할 수 없는 건 이 나라 경제와 경마가 똑같다. 재미없는 경마, 의혹으로 점철되어 신뢰할 수 없는 경마에 대한 팬들의 보복이 계속되고 있는 우리 경마는 얼마 전, 대대적인 이벤트를 준비하여 야간 경마를 치렀지만 매출액은 오히려 지난해에 비해 20% 이상 더 떨어졌다.

주위의 반대와 비난을 무릅쓰고 사흘 더 경마를 연장한 고육지책도 언 발에 오줌누기가 될 공산이 커졌다. 주간경마로 전환된 지난주의 경마장이 황량했던 것이 이를 예언한다. 토요일에는 심리적 마지노선인 400선을 드디어 밑돌아 39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틀간 평균 매출액은 437억원. 올 상반기 평균 499억원과 비교하면 12% 하락했다.

이런 와중에 뜬금없이 부자 타령을 하는 까닭은 불황 탈출과 관련하여 경마장의 부자들이 재조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거액의 마권을 사는 경마장의 큰손들이 돌아와야 매출회복이 가능하다고 여긴 탓인지 그들을 다시 불러오기 위해 마사회는 대책을 수립중인 모양이다. 여기까진 그렇다 치자.

하지만, 그들을 위해 예전처럼 고급경마정보의 유통을 묵인 방조해야 한다는 논리가 포함돼있는 것이 문제다. 90년대 후반까지 민간인들이 운영했던 장외지점 특실에는 큰손들이 자리했다. 고급정보를 돈 주고 산 그들은 거액의 자금을 바탕으로 승부를 조작해왔다. 그곳은 경마비리의 온상지였고 그들은 경마를 움직이는 말 그대로 큰손들이었다. 폭력으로 기수, 조교사를 제어했고 금전으로 회유한 결과는 경마가 돈 놓고 돈 먹기 도박이라는 설정을 확고히 정형화시킨 일이었다.

한국 경마역사가 증언하는 그런 병폐를 알면서도 단지 매출회복을 위한 일념에서 모든 걸 눈감자는 의도는 심각한 오류다. 발상 자체부터가 끔찍한 폭력으로의 회귀다.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이 비정상적이어도 무시되는 공산주의다.

나라 경제를 위하여 부자들에게 돈을 쓰라 권유하는 경제 장관은 직무에 충실한 재상이지만 행여라도 마사회장이 나서서 조직폭력형 부자들을 경마장으로 초대하려고 의심받는다면,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와전(訛傳)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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