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3/07/05)  
 신임 마사회장의 조건 ①



전쟁은 대체로 백해무익하다. 아니, 살육의 공포와 파괴, 폐허 등으로 표현되는 전쟁의 이미지는 이념이 인간성을 말살할 수 있다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을 우리에게 들이민다. 그러나 유일한 유익함이 있다고도 한다. 바로 지리 공부다. 이라크가 어디 붙어있는지도 잘 모르는 많은 지구촌 사람들은 CNN과 BBC방송의 전쟁 보도를 통해 이라크의 소재지를 알게 됐다는 흥미로운 주장도 있다.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기수, 조교사 경마부정 사건의 보도를 접한 일반 국민은 그 때문에 경마장이 과천에 있고 전국에 28개의 지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또한, 마사회 사업이사가 거액의 뇌물을 받아 재임 중 구속되고 경마정보의 올바른 유통을 감시하고 부정을 적발해야 할 마사회 보안부 직원이 경마꾼에게 경마정보를 제공하다 불구속 입건되었다는 뉴스 덕분에 마사회는 복마전이라는 속담(?)을 상기하고 그래서 경마와 마사회는 뜯어고치고 개혁해야 할 것투성이라는 사회적 공감대를 모으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른바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고 그 악화를 또 다른 악화가 몰아내는 원리처럼.

마사회장 자리가 공석이 된지 한 달이 되어 가는데도 신임회장에 대한 보도가 나오지 않고 있다. 다만, 참여정부의 인사원칙대로 공모제를 거칠 것이라는 소식만 나왔다. 그러나 기존의 일방적인 임명관행을 과감히 개혁한 획기적 진전이라고 평가할 만한 이 같은 계획이 실질적 성과를 낳기 위해서는 강력한 실천의지가 뒷받침되어야 함에도 농림부에서는 공모제에 필요한 사장 추천위원회를 구성하는 등의 어떠한 세부 절차도 진행하고 있지 않다.

마사회는 마사회대로 먼 산 지붕만 쳐다보며 후임회장이 누구냐는 정보 구걸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개장이 2년도 채 안 남은 부산·경남경마장의 본부장조차 임명하지 못하고 있으며 한국 경마의 미래라는 그곳의 조교사 선발도 회장 유고 시에 결정되었다. 시험 과정이 석연치 않았다는 의혹도 있었으나 흐지부지 넘어갔다.

최근 경기침체와 카지노 등 경쟁 업종의 등장으로 매출감소를 겪고 있는 마사회는 지점개설과 야간경마일 수를 늘린다는 대안을 내놓았지만 회장 공백으로 후속 조치를 결정 못하기도 마찬가지다. 지난 추석을 고비로 급격한 매출감소와 재미없는 경마장에 등을 돌리는 경마팬이 급증해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정책 부재 집단인 마사회가 그나마 머리를 짜냈음에도 결재권자가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기껏 생각해낸 게 점방을 늘리고 야간경마 늘려서 매출을 올려보자는 임기응변뿐이지만 그것도 새로운 지점을 개설하려 한 전북 전주에서는 47개 시민단체가 나서서 결사반대하는 수모를 당했고 서울 논현 지점의 경우는 6월 말로 계약이 만기되었지만 재계약은커녕 다른 건물을 구하지 못하는 업무 태만으로 경마팬들은 발길을 돌려야만 한다.

그런데 전임회장은 어땠는가. 10개월 째 매출은 줄고 경마가 재미없다고 아우성을 치는 와중에도 사표 쓰고 나갔다. 주말이면 지역구 주민들 초대해 밥 사주고 관람대 6층 VIP실로 모셔 자기가 마사회장이라고 자랑하면서도 2년 7개월의 재임기간 동안 경마팬과 간담회 한번 가진 적 없이 국회의원 출마한다고 가버렸다. 대상경주가 열려도 그 흔한 사은품 하나 안주면서 또 다른 회장 감투가 탐나 마사회 돈 15억 원을 퍼주기로 하고 탁구협회로 자리를 옮겼다. 신음하는 경마팬과 도탄에 빠진 경마관련 산업 종사자들을 외면하고 제 살길만 찾아 떠난 것이다. 그래야만 총선용 이미지 관리에 차질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우리는 이렇게 한심한 사람들에게 경마를 맡기고 있었다. 경마에 대한 철학도 없고 정책도 없이 또는, 없는 그것을 올바르게 취사선택이라도 할 수 있는 기본 역량도 갖추지 못한 부적격자들에게 우리의 꿈과 미래를 위탁하고 있던 것이다. 낡은 경마문화와 공정하지 않은 시행제도의 행태로는 더 이상 경마팬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으며 아울러 구태의연한 권위만을 내세우거나 임기 내 불상사가 없기만을 기도하는 무사안일주의는 성숙한 경마팬의 의식 앞에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예 모르는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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