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3/12/06)  
 고의냐? 실수냐?


정평 있는 변호사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다.
“존경하는 변호사님. 경범죄에 보면 길거리에 침을 뱉어서는 안되며 그럴 경우 범칙금을 물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웃다가 큰 침이 튀었다면 어찌 됩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변호사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퉤~! 소리가 났으면 벌금을 내야 합니다”

지난달 1일, 동아일보배 대상경주 우승마 ‘도미라이더’와 전 날 1군 경주에서 우승한 ‘퍼펙트챔피언’에서 사후약물 검사 결과 금지 약물인 ‘케토프로펜’이 검출되었다. 당시 재결은 약물 검출 사실이 바깥에 알려지는 걸 극도로 꺼리며 항시 해오던 검찰에 수사의뢰조차 생략한 채, 내부 조사만을 벌였다. 그런데 조사 결과가 세상을 웃겼다. ‘도미라이더’는 관리사가 소속 조 다른 말에게 해당 약물을 발랐던 손으로 다리 부분을 만져 양성반응이 나타났으며, ‘퍼펙트챔피언’은 손을 다친 유재길 조교사가 ‘케토프로펜’이 함유된 파스를 붙였는데 이게 말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것이다. 때문에 유재길 조교사는 자신이 발랐던 파스를 증거물로 제출하기도 했다.

지난 21일, 마사회 심판처는 이를 토대로 “이들 경주마의 도핑테스트 결과는 경주가 치러진지 며칠 후에 나온 것이기 때문에 당일 이뤄진 우승 확정 및 배당금 지급은 변경이 불가능하나 매달 초에 지급하는 경주 상금은 취소한다”라고 발표했다. 우승은 인정하나 상금은 몰수한다는 얘기였다. 다시 말해 약물 검출은 마필 관리자들의 고의가 아닌 단순 실수였음을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쟁점은 두 가지다. 고의든 실수든 약물이 나왔으면 경주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니 마권을 환불하라는 요구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확정된 착순은 해당 경주의 승마투표 적중자에게 교부하는 환급금의 산출에 있어서 최종적인 것이며 이후 어떤 사유가 발생하더라도 변경되지 아니한다’는 경마시행규정 62조 2항을 들여다보면 할 말이 없다. 이미 환급이 끝난 해당 경주는 이제 와서 환불 못하는 게 맞다.

하지만, 경마 경력이 어느 정도 된 팬들은 “지난 98년 ‘무파싸’ 사건 때에는 환급이 끝났는데도 몇 년에 걸쳐 다시 환불을 해주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그 때는 신고를 받아서 환불을 해줬는데 왜 이제는 안 된다는 것이냐는 주장이다. 정확한 지적이다. 그러나 두 개의 사건은 본질이 다르다고 본다. ‘무파싸’사건은 경주가 끝난 후검량에서 2KG이 부족한 것을 착순 판정위원이 알았다. 그럼에도 착순 확정위원은 실격을 시키지 않고 2등으로 착순을 확정하고 환급을 했던 것이었다. 따라서 착순 확정 전까지 사후 약물 검사 결과를 재결이 인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의례적인 사후 검사 대상으로 지정했지만 혹시나 하고 결과를 이 삼일 기다렸다가는 경마장에 폭동이 났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정작 문제는 두 번 째다. 이번에 상금을 몰수당한 두 마리는 ‘제61조의 규정에 의하여 실격된 말에 대하여는 일체의 상금을 지급하지 아니한다’는 경마시행규정 제 70조 4항에 의거되었다. 그렇다면 61조의 규정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규정에 의한 금지약물의 영향 하에 있을 때 해당 말을 실격으로 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쉽게 얘기해서 약물이 나왔으니 실격으로 하며 실격당한 말은 상금 안 준다는 말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중간에 무엇인가 빠진 느낌이 안 드는가. 실격으로 처리했기 때문에 일체의 상금을 몰수한다는 것인데 어찌 실격된 말이 우승의 기록을 유지하는가 말이다. 경마시행규정은 위의 사례를 포함해서 아홉 가지 경우에 실격으로 처리하도록 되어 있으며 61조 2항에는 분명하게 ‘실격된 말은 당해 경주의 착순에서 제외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도대체가 중학생만 되어도 가능할 법리해석을 이 따위로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금지 약물이라고는 했지만 고의가 아닌 실수였고 경주 능력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을 참작하여 우승마로 남기는 것이 타당했다면 상금도 주는 것이 옳았다. 이도 저도 아니게 양측 모두를 바보로 만든 이번 결정이 재결의 작품이라면 경마심판의 자질을 거론해야 마땅할 것이다. 자기네들이 만들어 놓은 규정조차 파악 못하면서 누구를 심판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재결은 두 마리를 실격 시키지 않았으며 상금만을 몰수했다고 우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여기는 경마시행규정과 국제 통용의 룰에는 그 어디에도 상금을 몰수한 말을 실격 시키지 않을 수 있다는 명문이 없다. 또는 ‘그러지 아니한다’는 단서나 예외 조항을 찾을 수 없다.

나는 이번 두 마리의 말이 ‘케토프로펜’을 이용해서 경주 결과에 부정한 영향을 주었다고 믿지 않는다. 사람 사용량의 최소한 10배가 필요한 말에게 극소의 약품이 검출된 것을 가지고 떠들 필요도 없는 것이라고 본다. 재결은 경주일로부터 역산하여 며칠 걸려야 약물이 안 나오는지도 모르면서 제재하는 건방 떨지 말고 허용치를 적용하여 규제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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