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4/12/04)  
 까불지마

영어 약자 KRA로 이름을 통째 바꾼 한국 경마시행체의 책임자급 고위 임원이 사투리를 쓰는 경상도 남자, 둘을 만났다. 처음은 아니다. 이미 부산과 경남의 경계에 경마장을 지을 때부터 자주 만나 온 사이다.
“큰일이에요. 서울경마장의 매출이 떨어져서 이러다간 직원 월급도 못줄 판입니다.”
“......"
“여기에도 2천억이나 더 들여서 경마장 다지어가지만 예정대로 문을 열었다간 적자를 볼 게 뻔합니다.”
잠자코 듣기만 하던 앞의 남자가 표지에 한국마사회 로고가 새겨있는 서류뭉치를 탁자 위로 던져 올리면서 화를 낸다.
“여보시오! 당신네들이 99년에 만들어준 사업계획서요. 여기 뭐라고 돼있소? 2005년 개장 첫해엔 58억원의 적자를 기록하지만 다음해부터 6년간은 1,818억원의 흑자를 올릴 거라 했잖소!”
옆의 남자가 거들고 나선다.
“근데, 이제 와선 거꾸로 1,300억 적자라구? 그래서 레저세를 절반으로 깎아달라는 말이요?”
“그건 경마가 잘나갈 때 짠 거죠. 누가 이럴 줄 알았나요…."
“어찌해서 적자가 생긴다는 건지 근거도 없는 얘길 하고 이제 와선 개장을 안 할 수도 있다면서 언론플레이나 하고 말이야. 도대체 약속을 지키겠다는 거요, 말겠다는 거요?”
“아니, 약속을 안 지킨건 우리가 아니죠. 경마장 입구까지 경전철을 대주고 도로도 깔아준다고 한 게 누굽니까?”
“누가 약속을 해요?”
“여기 보세요. 부산시장 문정수, 경남도지사 김혁규, 마사회장 김봉조 세 분이 99년 3월에 합의하고 싸인까지 했잖아요. 그뿐입니까, 제발 경상도에다 경마장 지어달라고 애원한 게 누굽니까? 근데, 이제 와선.”
“여보세요, 그건 우리가 모르는 일이죠. 그리구 그분들이 지금도 시장이고 도지삽니까? 당신도 참 딱하슈. 정치인들이 한 얘길 고지 곧 대로 믿다니, 쯧쯧”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군요. 그럼 저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2008년까지 도로와 전철을 깔아주겠다고 하셨으니 그때 개장하겠습니다.”
“당신! 지금 협박하는 거야!”
옆의 남자가 더 흥분해서 나선다.
“배 째라 이거지? 레저세 못 내려준 대니깐 아예 공갈을 하네. 우리도 부산 신문에다 언론플레이 할 꺼야! 할 수 있어!”
“정 그러시다면 할 수 없죠. 올라가겠습니다.”
일어서려는 마사회 고위 임원을 주저앉히며 처음의 남자가 나지막한 소리로 달랜다.
“냉정하게 생각해봐요. 아무리 당신네 회사 노조랑 경마팬들이 들고 일어난다 해도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 부산경마장 개장을 안 한다면 농림부나 정부에서 가만있겠소? 언론한테도 두드려 맞을 텐데. 잘 생각해봐요. 만만한 건 항상 마사회잖소. 절대로 우릴 못 이겨요.”
분위기를 눈치챈 또 다른 남자가 얄미운 시누이처럼 거든다.
“감면되는 레저세를 환급률 인상에 쓰는 것도 아니고 마사회 운영비에 필요하다는 당신네 주장은 설득력도 없어요. 경마팬들이 그 사실을 알면 가만있겠소?”
예정된 면담 시간은 아직 남아있었지만 처음의 남자는 탁자 위의 서류들을 정리하며 일어선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한 듯 회심의 한마디로 확실하게 못을 박는다.
“당신 고향이 이 근처고, 어차피 임기 끝나면 내려올 거 잖아? 까불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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