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3/03/22)  
 경마중독의 책임


거의 20여 년을 도박에 심취했던 도스토예프스키가 '도박자'라는 자전적 소설에서 "그토록 수많은 감각들이 지나쳤지만 내 영혼은 만족이라는 것을 모른다. 오로지 초조하게 안달이 나 아직도 더 많은 감각들에 대한 갈망으로 넘친다...완전히 소진될 때까지...갈망은 강해진다"고 도박 충동에 저항하지 못하는 병적 도박자의 감정을 표현했듯이 중독이 가져다주는 폐해는 심각하다. 도박에 지나치게 탐닉하고 몰두했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을 피폐화시키고 가족을 파탄에 몰아 넣는 사회적 손실을 초래한다.

마사회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지난해 공동 실시한 '병적도박 실태조사 및 치료프로그램'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나라 성인 도박중독자 비율은 9.28%로 미국 1~2%, 캐나다 1.3%, 호주 1.0%에 비해 9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경마팬 가운데 중독자의 비율은 43.5%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도박중독증이 정신장애 진단에 포함되는 정식 질환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겨우 20년 전인 1980년의 일이다. 우리네 정서는 도박에 지나치게 탐닉하는 것을 병이라기 보다는 사회적 규범과 가치에 반하는 반도덕적 행위이거나 잘못된 습관 정도로 여겨왔다. 그래서 도박은 치료와 교정의 대상이 아니라 법적, 사회적 규제의 대상이었다.

지난주에 한 여성 경마중독 피해자가 윤영호 마사회장을 상대로 7천 만원의 손해 배상을 요구하는 청구소송을 법원에 냈다. 그녀는 농림부 산하기관인 마사회가 경마를 건전한 레저 스포츠로 현혹하는 바람에 심각한 경마 중독에 걸려 정상적인 사회 생활이 어렵게됐다면서 병원 치료비 등 재산피해와 정신적 피해에 대해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1차 적으로는 경마에 빠져든 자신에게 책임이 있겠지만 승마투표 약관에 규정된 마권구매 상한선을 어긴 채 마권을 판매하는 등, 일시 오락의 수준을 넘는 도박을 방치한 책임이 마사회에 있다고 주장했다. 정확하게 10년 전, 마사회가 부정경마를 저지른 사실이 검찰 수사결과 밝혀졌다며 해당기간 동안 구매한 마권 5백4매의 권면 금액인 8천여 만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한 오영환씨에 이어 성격은 다르지만 마사회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두 번째 경마팬이 된 셈이다.

우리 나라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들은 불법적인 도박산업을 규제하면서도 한편으로 복권, 경마, 경륜, 카지노 등의 도박산업을 합법적으로 육성 장려하는 이중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과 반 자본의 이해관계를 국가정책 내에 참여 혹은 배제시키는 선택적 메커니즘에 의해 작용하기 때문인데 재정수요의 확충을 위해 양면적 성격을 갖는 도박을 이중적 제도화의 과정으로 통제하는 것이 문제를 발생시키는 원인이다. 즉 사적 영역의 오락성 도박을 제외한 나머지는 범죄화하는 반면에 국가가 운영하거나 허용하는 도박은 탈 범죄화시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놀이 문화 창달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뒤집어 쓴 도박은 국가 재정확보의 빠르고 편리한 수단이 된다. 그와 동시에 개인의 자제력을 지목하여  질환화시킴으로써 사회, 경제적 문제에서 의학적 관리의 대상으로 책임을 이관하고 축소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선택과 결정이 개인의 능력과 자제력에 맡겨져 있고 그 의무를 다하라 요구하지만 욕망은 무한하고 개인의 자제력은 허약하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허약한 자제력에만 의지한 채, 한계 없는 욕망을 부추겨 도박의 길로 유혹한다. 습관성 도박은 자제력의 장애일 수도 있지만 욕망을 생산하고 부추기는 것은 국가다. 따라서 도박의 여건과 기회를 합법적으로 제공하는 국가와 사회가 병적 도박자와 그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증가하는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것이다.

경마장의 홍보실은 사람들을 초대하고 안내실은 경마하는 법을 가르쳐 주지만 같은 건물의 상담실은 경마를 끊도록 권유한다. 이 같은 이중기준은 개인보다는 이 사회의 모순이며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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