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2/10/26)  
 경주로를 보수하고 시즌제를 검토하자


간밤에 비가 내린 탓인지 경주로가 젖어있다. 최고선임 기수가 회색 유도마를 타고 물기를 잔뜩 머금은 경주로를 천천히 둘러본다. 이곳 저곳을 살펴 본 기수는 말에서 내리며 고개를 가로로 젖는다. 잠시 후 장내 방송은 그날의 모든 경주가 취소됐음을 알린다. 정상적인 진행이 여의치 않다고 판단한 기수의 입장을 모든 사람들이 존중한다. 항의하는 경마팬이 없는 것도 무리한 진행이 그들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의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무 때나 경마가 열리고 그 모든 경주가 단일 주로에서 펼쳐진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지난 89년 개장한 서울경마장의 경주로가 15년간 한차례도 전면적인 보수 공사를 실시하지 않아 제구실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33센치의 자갈층, 10센치의 마사토(화강풍화토) 층, 6~7센치의 모래층으로 이루어진 서울 경마장 경주로는 이미 모래효과가 없어져서 딱딱하거나 미끄러운 잔디나 황토효과 등이 발생하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지난해 겨울에 발생했던 경주 취소소동 역시 60년만의 혹한과 더불어 이미 마모된 경주로가 한 몫 했다는 분석이다.  얼음판으로 변한 경주로에서 마필 3두가 골절상으로 퇴사했고 13명의 기수가 병원 신세를 졌고 잦은 부상으로  1월21일 당일에만 기승 기수 변경이 24회에 달했다. 폭설과 이에 따른 경주로 결빙의 여파가 경마 취소로 이어진 것은 자연재해라기보다 경주로 보수와 개선의 한계 때문에 빚어진 인재라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당시 박모 마주를 비롯한 일부 마주들은 경주 중 주로 상태 악화로 경주마가 골절상을 입었다며 마사회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져 경주로 상태 악화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말해주고 있다.

현재 서울경마장은 딱딱하게 다져진 지반 때문에 비만 오면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경주를 치르는 경주마와 기수의 시야 확보를 어렵게 한다. 갯벌로 변한 주로에서 곡예를 펼치는 기수들은 승부보다 사고 없이 경주를 치르는데 전념하다 보니 제 기량을 모두 발휘하기는 애당초 불가능하며 코 차이로 가려지는 승부에서 3~4개의 보안경을 벗어가며 앞 말에 부딪치지 않게 제어하기 바쁘다 보니 정상적인 경주와는 거리가 멀다.

기수 안전 사고만 보더라도 98년 7건, 99년 9건, 00년 9건, 01년 21건, 그리고 올해 현재 13건에 이르는 등 매년 사고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마필관리사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지난해  445명 가운데 133명이 사고를 당해 사업장별 산업재해율이 29.8%로 전국 1위의 불명예를 기록하고 있는 형편이다.

더구나 훈련과 경주가 같은 주로에서 이뤄지다 보니 마모가 빠르게 진행되어왔다. 때문에 경마장 내 유휴지에 훈련 주로를 마련한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이 또한 마필 관리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는 실정이다. 나아가 2005년 부산경마장 개장 이후 전면 보수를 검토하겠다는 마사회의 방침은 더 큰 재앙을 외면하는 근시안적인 태도다. 이는 근본적인 대책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무시하는 방침이며 그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안전사고의 책임자를 명시 못하는 무사 안일함이다.

따라서 일 년에 3개월 정도를 휴장 기간으로 정해 주로 보수를 하는 홍콩의 경우처럼 우리도 시즌제를 검토할 때다. 그 기간 동안 기수들은 동계훈련에 심혈을 기울이고 시행처는 경주로 등 시설을 철저히 보수한 연후에 다음 시즌을 맞는 것이 정상적인 경주 진행과 서비스를 원하는 경마팬들을 위해서도 바람직할 것이다.

만신창이가 된 경주로는 기수와 마필관리사의 생명을 위협할 뿐 아니라 경마팬을 위한 정상적인 레이스를 불가능하게 한다.





48  까불지마     장청수 2004/12/04
47  김정일의 남자     장청수 2006/02/24
46  김명근의 눈물을 보는 몇 가지 방법     장청수 2003/06/07
45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장청수 2004/10/09
44  기수의 오버     장청수 2005/03/19
43  기수의 독단     장청수 2005/04/02
42  그래도 국감에 희망을 건다     장청수 2001/09/23
41  굴비상자     장청수 2004/10/30
40  굳세어라 스터드북(studbook)     장청수 2004/12/11
39  과천시장 보시오!     장청수 2003/06/14
38  공판제, 그 후 3년     장청수 2005/02/26
37  공정과 신뢰는 별개다     장청수 2003/05/31
36  고의냐? 실수냐?     장청수 2003/12/06
 경주로를 보수하고 시즌제를 검토하자     장청수 2002/10/26
34  경주로(競走路)의 책임과 의무     장청수 2003/11/29
33  경마팬이여 떳떳하자     장청수 2002/10/19
32  경마팬이 떠난다     장청수 2002/11/23
31  경마중독의 책임     장청수 2003/03/22
30  경마중독, 마사회가 적극 나서야     장청수 2003/03/29
29  경마와 세금이야기⑥ - 국세와 지방세(2)     장청수 2003/02/08

[1][2][3][4] 5 [6][7]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z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