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4/08/21)  
 가는 말, 안 가는 말



인기 순위 2~3위 정도로 팔렸다. 말에 점점 힘이 차고 있고 지난 열흘간의 조교상태도 훌륭했다. 기승 기수는 우승을 꿈꾸며 안 하던 웨이트 트레이닝까지 마쳤다. 경주 당일, 예시장에서 말에 올라 지하 마도를 거치는데 조교사가 허겁지겁 뛰어오더니 작전 지시를 하는 척하며 조용히 말했다.
"마주가 지방에 있어서 마권을 못 산단다. 안 되겠다. 다음에 하자"
당시 수습 딱지를 뗀지 얼마 안 된 기수는 졸지에 안 가는 말에 올라탄 자신이 너무도 초라해 보였다. 조교사와 마주가 그렇게 미워보일 수 없었다. 그는 당장 말에서 뛰어 내리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경마일 아침이면 그날 경주에 참여하는 기수가 해당 조교사를 찾는다. 마필의 컨디션과 주행 습성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누는 등 경주의 작전을 세우기 위해서다. 이때 구체적인 경주의 윤곽이 그려진다. 소위 말하는 '가는 말'과 '안 가는 말'이 구분되는 것이다. 따라서, 경주를 위한 발주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승부의지는 결정돼 있다는 주장은 수정하지 않아도 된다. 맞는 말이다. 10마리가 출전한 경주라면 보통 4~5마리만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안 가거나 못 가는 말들이다.

입상을 목표로 최선을 다해 전력질주 하겠다면 가는 말이다. 반대로 승리의 의지가 없다면 안 가는 말이다. 경주에 참가하는 경주마를 두 가지로 나누면 위와 같이 분류된다. 한 부류를 더 포함하면 가고 싶어도 능력이 도저히 안되어 갈 수 없는 말들도 있지만 문제는 안 가는 말이다. 안 간다는 얘기는 말 그대로 갈 수 있지만 고의적으로 가지 않겠다는 말이다. 무슨 이유에서 일까. 왜 그들은 안 가는 것일까. 경마시행규정 40조는 경주에 승리하고자 하는 의사 없이 말을 출주시켜서는 아니 된다 하고, 부정의 목적으로 경주마의 전 능력을 발휘시키지 않은 기수, 조교사에게는 면허를 취소하고 경마에 일절 관여할 수 없도록 72조에 못박고 있음에도 왜 범법행위를 하는가.

적금을 드는 것이다. 전력을 다하지 않아 입상을 사양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다음번의 입상때에는 두둑한 배당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의적으로 능력을 은폐하다보면 시간이 갈수록 팬들의 관심권에서 멀어지고 그러다보면 어느 날 비인기마가되어 입상에 성공할 때 자연히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꿩먹고 알 먹는 경우도 있다. 위의 사례대로 실천을 하려는데 마침 자신의 말이 인기마일 때 빼고서 마권을 사면 짭짤해진다. 남들은 자신의 말을 살 때 확실하게 제외하면 그야말로 땅짚고 헤엄치기. 배당도 배당이려니와 마권수를 줄일 수 있는 이점은 엄청나게 특별한 혜택이다.

그런대로 무난한 컨디션이어서 출주 신청을 했지만 상태가 안 좋을 경우에도 안 갈 수 있다. 출마표에 등록된 걸 취소하려면 수의사의 진단서를 첨부해야하는데 보통 두 달에서 석 달 정도 출주 정지 처분을 각오해야만 하니 억지로 출주한다. 이들이 전력 질주 할 리는 없다. 그러다가 말이 고장이라도 나거나 폐마가 된다면 기수, 조교사는 무능력자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다.

살펴본 유형들은 일부 불량한 마주의 요구에 의해 저질러지고 조교사나 기수가 그들과 연결된 손님들과 장사를 하는 과정에서 은밀히 이루어 지게 마련이다. 정확한 비율을 알 수는 없지만 언급한 순서대로 발생빈도가 높다. 드물지 않게 재결의 제재 처분을 받는 사례들은 대략 위의 범주에 해당하며 특히, 경주전개 부적절 판정을 받은 사건들은 거의가 '안 가는 말'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재결의 눈에 띄어 드러난 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최고의 전문가라 하는 경마심판마저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판이다. 말 못하는 말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당사자들이 책임을 돌리기엔 안성맞춤이지 않은가. 직접적인 피해자인 경마팬들은 의혹의 경주마다 분통을 터뜨리지만 어찌해볼 방법이 없다. 하소연할 데도 없이 벙어리 냉가슴만 앓는 게 고작이다. 그들이 비열한 협잡의 성공을 축하하는 샴페인을 터뜨리며 희희낙락하고 있을 때. 마사회는 남의 속도 모르고 경마 이미지 개선을 위해 노심초사하고, 온갖 궁리 다해 이벤트 행사 풍성히 치를 일만은 아니다. 메인 게임인 경마는 팬들을 기만하고 울화병을 도지게 하는데.

안 가는 말을 잡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는 법. 모든 말을 가게끔 하는 정책 마련이 가장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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