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4/10/23)  
 '스내피댄서'와 '왕청파'


불세출의 명마 '노던댄서'(Northern Dancer)의 아들인 '스내피댄서'(Snaafi Dancer)는 1983년 이얼링 세일에서 최고가인 1천20만 달러에 낙찰됐다. 그러나 수준 이하의 능력 때문에 경주에 출주조차 못했고 씨수말로 데뷔한 후에도 번식능력이 떨어져 겨우 네 마리를 배출하는데 그쳤다. 어렵게 배출한 자마들 역시 일반경주에도 명함을 내밀지 못하는 형편없는 말이었다.

작년 가을 국내 최초의 이얼링 세일이 열렸다. 조금이라도 빨리 경주로에 데뷔시켜 투자 결과를 확인하려는 마주의 일반적인 경향에 의하면 이제 갓 18개월 된 망아지를 구입하는 모험은 시기상조라는 우려가 제기되었으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때까지 생산자협회가 주최한 16번째 경매 사상 최고의 평균낙찰가를 기록했다. 최고가격을 돌파한 '왕청파'의 경우 그해 봄에 경신된 금악목장 자체 세일의 최고가 말보다 1,500만원이 높은 6,500만원의 몸값을 자랑했다.

문제는 '왕청파'가 자체 생산 목장에서 2세마가 될 때까지 사육된 후 서울경마장으로 입사했을 때 생겼다. 걸음걸이가 이상하다고 여긴 마주와 조교사가 수의사의 진단을 받은 결과 다리 무릎의 연골이 녹아 없어진 것을 확인했다. 일시불로 지급한 말값은 물론이고 열달 동안 생산목장에 지불한 500여만원의 사육비를 고스란히 날린 셈이었다.

말 보험이 일반화된 미국 경마 현실을 감안할 때 '스내피댄서'의 마주는 손실의 전부를 감수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해당 목장은 자기들의 책임이 아니라며 일체의 피해 보상을 거절하는 바람에 해당 마주는 벙어리 냉가슴만 앓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열린 올해 이얼링 세일의 최대 관심사는 마주들의 구매 심리가 어떻게 표현될까 하는 점이었다. 결국, 예상했던대로 지난해보다 14%가 감소한 24%의 낙찰률을 기록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낙찰 총액도 5천만원 줄어든 9억여원에 머물렀으며 최고가도 1천만원이 하락했다. '고려방'과 '쾌도난마'의 형제마들이 최고가를 경신할 거라는 일부의 기대가 있었지만 구매자들의 철저한 외면을 당했다.

경제불황의 여파가 장기화되면서 구매심리가 저하됐고 결국 경매 시장의 하락세를 가져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이는 정확한 진단이 아니며 경매의 구조적 문제 등 복합적으로 얽힌 난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속칭 '팔린 말'들의 대거 등장을 보더라도 이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경매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마사회가 지급하는 두당 300만원의 장려금을 노리고 경매 시작 전에 생산자와 구매자가 이미 판매계약을 끝내놓은 상태에서 경매를 통해 거래된 것처럼 위장하는 것을 볼 때 우리 경매 시장이 우롱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세부적인 시행 방법에 있어서도, 종전의 법원경매방식인 서면입찰이 호가 입찰방식으로 바뀌었지만 아직도 호가 단위가 7년 전의 20만원으로 제한된 것은 물가 상승률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구매자 간의 낯뜨거운 감정싸움을 일으킨다는 지적이다.

우리도 앞으로는 6개월령 세일(Suckling Sale), 1세마 세일(Select Sale)은 물론이고 씨암말 세일 등 다양한 선진형 경매방식을 통해 생산농가의 자금회전 및 마주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제주 육성목장의 시설을 민간에 개방하는 육성 전문 조련사제도가 제대로 정착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나아가 장수 육성목장의 성공을 기대할 수 있고 어린 망아지를 구매하는 투자심리가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유통과정 전체를 커버할 수 있는 보험제도의 도입에 대한 필요는 더 이상 미룰 과제가 아니며, 경매 시장을 왜곡하는 편법과 낡은 방식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마련되어야 한다. 나아가 유통이 안정궤도에 오른 것으로 판단되는 시점에서 민간 경매회사가 전문적인 대행을 맡도록 하는 시장 경제원리의 효율성을 존중하는 노력도 예외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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