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5/01/29)  
 '무파싸'와 '고천암'


재결실이 발칵 뒤집혔다. 본장 관람대 지하에 위치한 검량실에서 방금 경주를 마치고 들어온 준우승한 말의 부담중량이 출발전과 다른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무파싸'는 56KG을 달고 뛴 걸로 되어 있는데 도착순위 7위 이내 말들을 후검량 했더니 4KG이나 줄어든 52KG밖에 되지 않았다. 97년 11월23일 제9경주의 일이었다.

경마심판은 일반적으로 경주가 끝나면 지하 재결실로 이동해서 경주 전개 상황에 하자 여부를 검토하고 최종적으로 후검량 결과의 이상 유무를 확인한 다음에 착순을 확정한다. 빨간색 확인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관람대 정면의 착순 게시대에 해당 경주 확정이라는 불이 들어오고 각 승식의 적중 마번이 전산 입력되어 환급업무가 개시된다. 한 번 확정을 하게 되면 어떤 사유에도 불구하고 이를 번복할 수 없는 것이 경마시행규정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혼란이 일 것이 뻔하고 원활한 경주 진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착순 확정은 경마 심판에게 부여된 권한이자 막중한 책임을 동반하는 의무다.

무려 4KG이나 덜 짊어지고 경주를 뛴 건 경마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호랑이 담배 먹던 뚝섬 시절에 강력한 우승 후보마의 기수가 고의로 2KG의 납덩이를 내던지고 달려, 승부를 회피했던 적은 있었지만 이번 사건은 경우가 달랐다. 명백한 실격 사유였다. 결과적으로 유리한 조건에서 입상을 한 것이다. 4KG을 더 달고 뛰어 입상했다면 기특하다고 표창을 할 일이지만 이건 공정성을 훼손한 그 반대의 경우였다.

재결은 도착순위대로 착순을 확정했다. 배당률은 19.0배, 24억여원을 환급했다. 그러나  팬들의 항의를 우려해 이를 실격 처리하지 않고 쉬쉬했던 재결의 비밀은 오래 지켜지지 않았다. 고의적으로 은폐했던 담당자는 보직 해임되었고 3착을 한 '용두산'을 2착으로, 4착한 '용곡'을 3착으로 소급하여 추가 환불해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경주 진행상의 작은 오차도 생기지 않도록 관련 규정의 개정 보완을 약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개정된 것이 '후검량이 전검량 보다 1kg을 초과하여 부족한 때는 실격처리'하고 '전검량과 후검량의 차이가 1kg을 초과해선 안 된다'고 명시했다. 또한, 해당 조교사의 책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 '출주마에 대한 장안을 할 때는 소속 조교사가 입회'하도록 했다.

재밌는 건, '무파싸' 사건 때문에 경마시행규정을 손 본 때가 98년 5월1일이었는데 이때 함께 신설된 조항이 바로 '마주가 등록 취소되었을 때는 소유 경주마를 경주 제외시키도록' 한 것이다. 마주가 등록이 취소되었다면 경마 시행에 있어서 자격이 상실되는 것이므로 소유 경주마를 경주에 출전시킬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규정이 우습게 되어 버렸다. 지난 15일 9경주에 출전한 '고천암'은 해당 마주가 작년 말에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아 등록이 취소된 상태였다. 따라서, '고천암'은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출전할 수 없는 몸. 엄격한 절차에 따라 등록된 마주의 소유마만이 경주에 출주한다는 경마의 대전제가 무너진 셈이었다. 기승기수는 8착으로 도착하여 출주 수당을 받았고 마주에게도 9착까지 지급되는 출주 격려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등록 명부에는 해당 마주가 존재하지 않는다. 출전 자격이 없는 말이 경주에 나온 것부터가 해괴한 일이었지만 이를 그대로 착순을 확정한 것이 더 큰 문제였다. 그가 경주에 미친 영향을 누가 무시할 수 있을까. 도착순위와 경주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판정을 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2년 넘게 신고 접수를 받고 환불과 보상금을 지급했던 '무파싸' 사건 때는 해당 조교사에게 70만원의 과태금을 물게 해 그나마 책임의 일부를 돌렸지만 이번에는 마땅한 희생양이 없다. 출마투표에서 하자를 거르지 못한 전산과 끝까지 이를 모른 채 경주결과를 확정한 시행 시스템이 책임질 일이다. 해당경주는 원천적으로 무효이며 경주 불성립의 조건에 해당한다는 지적과 항의는 틀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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