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겨레> 공채 12기 새내기 수습기자 일동 인사드립니다.
저희 수습기자 9명은 지난해 12월1일부터 사회부 기동취재팀원이 돼 온갖 사건현장을 뛰어다니며 기자의 본분과 기본을 배우고 있습니다.
흔히 수습기자에겐 `인간도 아닌'이란 수식어가 따라 붙습니다. 그만큼 인내와 고통이 뒤따르는 `한계상황'을 돌파해야 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뉴스인물을 만나기 위해 밤을 지새는가 하면, 시위대와 함께 진압경찰에 쫓기기도 하고, 심지어 취재정보를 빼내기 위해 담을 넘어야 할 때도 있죠.
앞으로 저희들은 이처럼 밤낮을 잊은 채 발로 뛰며 발굴한 생생한 뉴스와 취재 뒷얘기는 물론 기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인터넷한겨레>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아직은 모든 게 서툴고 부족하지만, <한겨레>기자의 자부심과 뚝심이 가득 배어있는 취재기로 여러분과 자주 만날 것을 약속드립니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서경신 raoul@hani.co.kr 류이근 ryuyigeun@hani.co.kr 이미란 miranlj@hani.co.kr 최혜정 hcjiove7@hani.co.kr 김경은 iruri74@hani.co.kr 김아리 ari@hani.co.kr 김수헌 minerva@hani.co.kr 석진환 soulfat@hani.co.kr 이순혁 sanvada@hani.co.kr
유흥주점 취재기-어우동을 아시나요? -이미란
2001.1.12
본격적인 수습생활이 시작된 지 보름 남짓 지났을까. 선배의 `명'을 받고 뛰어든 곳은 서울의 지하철 2호선 신림역 일대. 이곳은 주로 30대 `아줌마'들이 접대부로 일하는 이른바 `미시촌'이 20여곳 이상 줄줄이 붙어있는 곳이었습니다.
선배의 취재지시는 “미시촌을 통해 경기침체의 여파를 취재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접대부들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추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막막했습니다.
세파에 닳고 닳은 유흥업소 주인과 접대부가 처음 보는 사람-그것도 기자에게-뚜렷한 이유없이 말을 해줄까? 더구나 감추고 싶은 자신의 삶을 생생하게 드러낸다는 것은 가능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질 않더군요. 하지만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라 하지 않았던가. 어려운 순간일수록 솔직한 것이 최선이라는 믿음을 갖고 정면돌파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업주와 접대부들에게 취재목적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보려 한 것이죠. 하지만 정말 `순진한' 짓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씨알도 안 먹히더군요. 무관심한 표정과 짜증스런 목소리에 주눅이 들어 아무 성과없이 몇 군데를 전전해야 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취재는 안되고, 선배의 질책은 무섭고…. “그래, 말이라도 걸어보려면 최후의 수단을 써야겠다”
온갖 생각끝에 `일터를 찾는 초짜 언니' 연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겁도 났습니다. 취재도 좋지만 이러다 잘못 되는 건 아닌지. 평소 내성적인 성격에 연기는 제대로 할 수 있을지. 하지만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에 용기를 내기로 했죠.
어느새 발길은 '어우동'이란 간판이 붙어 있는 한 유흥주점 앞에 멈춰섰습니다. 다시 한번 계획을 가다듬었습니다. “내 외모를 보고 접대부를 상상하긴 힘들다. 이른바 `언니'들이 가져야할 외모나 사근사근한 붙임성, 노래 실력 등 내세울만 한 게 하나도 없지 않은가. 그렇담 갑자기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돈이 필요한 `초짜'인 것처럼 하자”
“일 하러 왔는데요…” 마담으로 보이는 나이든 한 언니(이하 큰 언니)가 반갑게 저를 맞았습니다. 언니는 “그럼 방에 들어가 얘기하자”며 빈 룸으로 안내를 하더군요. 쿵쾅거리는 가슴을 가다듬으며 따라 들어갔습니다. 언니는 연신 측은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더군요. 저의 태도가 마치 `매춘까지 감당해야 하는 접대부 생활에 내몰린 순진한 아가씨의 두려움과 망설임', 뭐 이런 걸로 비춰졌나 봅니다.
큰 언니와의 면접은 30여분 동안 이어졌습니다. (처음엔 묻는 말에 꼬박꼬박 대답만 했음)
=나이는 몇 살?
-28살요(올려 말함)
=보건증 만들 수 있어?
-어떻게 만드는 건대요?
=간단해. 그냥 구청에 가면 돼. 주민등록증만 있으면. 처음 일해봐?
-예…. =그전에 뭐했어?
-그건 말하기 곤란한데요.
=괜찮아. 비밀은 지켜줘. 우린 솔직해야해. 언니한테만 말해.
-그래도 좀…
=결혼은? -안했는데요. 어떤 일을 해요?
=그냥 서빙하고, 2차 나가고. 2차는 뭔지 알지? 여관에 가서 숏타임 일하면 돼.
-얼마씩 받아요?
=한 테이블에 4만원, 그리고 손님들이 마신 술값의 15%를 받아.
-하루에 한 사람이 몇 테이블이나 받나요?
=그건 개인에 따라 다르지. 보통 2테이블쯤.
-동시에 두 테이블도 뛰나요?
=우린 그런거 안해. 집이 어디야?
-신림동이요.
=보건증 만들 수 있어?(또 물어봄)
-2차는 얼마 받아요?
=15만원. 그리고 카드로 지불할 때는 12만 5천원.
-한 달에 얼마나 벌 수 있어요?
=300-400만원.
-2차는 꼭 가야하나요? 다 가나요?
=다 가지.
-술 매상도 많이 올려줘야 되지요?
=처음부터 술매상 올리라고 하겠어?
-매일 출근해야 돼요?
=거의 매일. 특별한 일이 있으면 안나오기도 해.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해요?
=저녁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사정이 있으면 좀 늦게 나오기도 해.
-노래 잘해야 돼요?
=요즘 노래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이러다가는 대답만 하다 끝나겠네. 나의 취재목적은 술집에서 느끼는 체감경기와 언니들의 삶이 아니던가?)
-술은 어떤 거 팔아요? 딤플?
=주로 국산양주. 딤플이나 임페리얼. 가끔 발렌타인 마시는 손님도 있고.
-아가씨들은 몇 명 있어요?
=지금 8명 나와.
-아가씨는 모자라요?
=응, 모자라.
-언니들은 보통 몇 살이에요?
=30대가 가장 많아.
-결혼은 했나요?
=결혼한 사람도 있고 안한 사람도 있고.
-장사는 잘돼요?(아니나 다를까.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하자 언니는 이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언니 일하러 온 거 맞아. 뭐 그런 걸 물어?
-일하러 온거예요. 장사가 잘돼야 저도 돈을 많이 벌 수 있죠.(내가 생각해도 잘 눙치고 넘어갔다)
=우린 장사 잘돼. 헌데 옷은 많이 있어?
-없는대요. 어떤 옷 입어야 해요?
=홀복.
-홀복이요? 유니폼이에요?
=아니, 짧은 미니스커트. 내일 좀 일찍 나와. 저녁때 같이 옷사러 가자.
-좀 생각해볼게요.
=그래. 생각해보고 내일 낮에 연락줘. 머리는 스트레이트를 해야겠네.
면접관인 큰 언니는 “내일 꼭 나오라”며 다짐을 받더군요. 저는 그냥 “에…”하고 말꼬리를 흐렸습니다. 그리곤 도망치듯 술집을 빠져나와 서둘러 인근 카페로 들어갔습니다. 잠시 전 기억을 떠올리며 큰언니와 나눈 대화, 아니 면접 내용을 취재수첩에 꼼꼼히 적었습니다.
술집 접대부의 테이블 팁은 5만원. 이른바 `2차'를 나가면 15만원, 카드결제일 땐 12만5천원. 주로 파는 양주는 딤플…. “내가 뭘 한거지?” 진땀을 흘리며 용감하게 뭔가 취재를 하긴 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남는 게 없더군요.
선배는 술집의 체감경기와 접대부의 생활을 취재하라 했는데… 뭘 보고하지? 한참을 망설이다 일진 선배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저… 이것저것 하긴 했는데…. 취재가 잘 안되는데요”
“도대체 하루종일 뭐 했어?”
결국 이날도 선배의 질책은 계속되었습니다.
쭈~~~~~~욱
한겨레 12기 수습기자 이미란 miranl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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