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정공채 시집 있습니까」로 이름난 鄭孔采(정공채) 시인은 30여년 경력의 경마 팬이다.
그는 일본 잇교(一矯)대학 사회인류학 교수 나카지마 노부히로(長島信弘)씨 가 저술한 「競馬人類學」(경마인류학)을 국내에 번역, 출간했다. 이 번역서의 후기에서 정공채 시인은 그의 실패담과 그 심경 을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경마팬들의 실패 를 예방한다는 뜻에서 그 일부를 발췌하여 소개한다.
<경주마의 컨디션이나 기질마저도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주제에, 그러면서도 파도크 (예시장) 근처에도 안가는 주제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기수와 함께 말의 前走(전주 ) 기록에 관한 종합평가의 예상표만을 믿고서, 그 인기마에게 너무 치중해 버리기만 했다.
뚝섬경마장 시절었는데, 몫돈을 거머쥐고 싶어 어느 날 큰 승부를 걸기로 했다. 당시엔 세 개밖에 없었던 예상지에서는 죄다 1 착 1번마, 2착 4번마로 매겨져 있었다. 현장의 인기 역시 최고였다. 틀림없이 적중할 것으로 보였다.
배당률이 1.3배인 複勝式 보다는 2배에 가까운 雙勝式(쌍승식) 마권에 거금을 질러 넣기로 작심했다. 1매 100 0원 단위의 마권 2000매를 뭉텅 샀다(요즘은 1회 레이스에 10만원 이상의 베팅은 규정상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레이스의 결과는 반대가 되고 말았다. 4번마가 1착을 하고, 1번마가 2착을 했던 것이다. 200만원어치의 마권이 2분도 걸리지 않은 단판 승부에서 휴지로 화한 것이 었다. 이때 내가 만일 쌍승식 마권을 사지않고 복승식 마권을 샀더라면 배당률 1.3 배였으므로 260만원을 환급받아 60만원을 벌었을 터이다.
돈 욕심이 앞선 결과였다. 나는 이날 무거 운 발걸음으로 술집에 들러 쓴 잔을 연거푸 마신 다음 귀가, 아무 말 없는 마누라의 눈치를 슬금슬금 봐 가면서 피곤스럽고 안 달스러운 몸과 마음을 혼자서 달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있은 지 반년이나 지났을까?
200만원의 상처(?)도 아물었는데다 내가 쓴 책의 원고료도 제법 들어왔다. 『이번에야 !』 하고는 巨金을 호주머니 속에 단단히 넣고 이른 아침부터 뚝섬경마장으로 직행했다.
예상지 세 개 모두를 사서 입장이 시작 되는 9시30분까지 경마장 정문과 가까운 다방에 들렀다. 여기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하는 경마 공부」에 담뱃재가 옷에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골몰했다. 이날 나의 공략 목표는 6필이 뛰는 마지막 경주였다. 나의 「연구 고찰」로는 3번마 「자이안트」 1착, 6번마 「신진호」 2착 이 확실했다. 더군다나 「자이안트」를 타는 金在福(김재복:현재 조교사)은 당대 일류였다. 「신진호」의 기수 정부웅도 김재복에 버금가는 名기수였다. 드디어 마지막 레이스의 發券(발권)이 시작 되었다.
나는 한순간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지만, 『결코 그럴 수 없다』고 중얼거리며 용감하게 쌍승식 마권 창구로 가서 반년 전에 잃었던 돈의 두 곱을 냉큼 들이밀었다. 결과가 어찌 되었냐구요?
6번마 신진호의 2착은 그림같이 정확했다. 그러나 1착은 다크호스였던 4번마 「무궁 화」(기수 최연홍:현재 조교사)였다. 찰나의 순간, 그렇게도 믿었던 「자이안트」는 아웃코스를 치달려 들어 3착을 하고 말았다.
나의 발은 굳어져 있었다. 경마팬이 웅성거리며 다 떠나간 뒤에야 겨우 관람대의 층계 를 내려올 수 있었다. 세찬 빗줄기를 흠뻑 맞으면서 장내의 한 모퉁이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죽은 마권」을 힘없이 뭉텅이 씩 또 뭉텅이씩 진흙탕 속으로 가만히 떨구었다. 그때의 그 참패-.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그때의 마번과 마명, 그리고 기수의 이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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