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의 신부 - 엽기 결혼식? -장철규
푸근한 설날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1월 27일, 경기도 광주에서는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광주군에 있는 에벤에셀 웨딩타운이란 예식장에서 일곱 쌍의 합동결혼식이 있었죠. 하지만 경제적인 문제로 예식을 올리지 못한 부부들이 다 큰 아들과 딸들 축하 받으며 뒤늦게 올리는 보통의 합동결혼식과는 달리 이날의 결혼식은 아주 특이한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신부는 모두 한 집에서 함께 살고 있고, 신랑은 전부 같은 직장에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부는 거의 70이 넘은 할머니들인데 신랑은 30-40대 젊은이라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신부는 이번 결혼이 처음이지만 신랑은 이미 결혼한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어쩌면 '엽기적'이랄 수밖에 없는 이 결혼식은 하지만 하객들의 따뜻한 축하 속에 아주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일곱 신부들이 처음 치르는 결혼식에 전혀 긴장하지 않고 신랑과 얘기를 나누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이 날의 주인공인 신부는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원당리에 있는 '나눔의 집'에 살고 있는 할머니들입니다. 나눔의 집은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성적 희생을 강요당했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집이죠. 그리고 '젊은 신랑'은 그 동안 수지침 봉사 등으로 2년 넘게 할머니들과 만나온 최정권 씨와 같은 직장에 다니는 에버랜드 직원들이었습니다.
결혼식이란 형태의 자매결연을 가진 뒤 이들 하루신랑들은 앞으로 할머니 신부를 어머니처럼 모시며 소중하게 맺은 인연을 이어갈 작정이라고 합니다.
올 겨울 유난히 많이 내리던 눈이 밤새 또 두께를 더한 광주를 찾아가니 할머니들은 곱게 신부화장(참, 이날 '아트피아'에서 할머니들을 예쁘게 꾸며 주셨습니다. 신문에서는 지면이 좁아 밝히지 못했는데, 고마운 분들입니다)을 하고선 박종진 광주군수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첫 눈에 '참 곱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여자는 결혼식장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말도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이제서야 화사한 신부 옷을 입은 할머니의 처지를 생각하자니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가슴이 싸-해지는 차가운 분노가 뒤따랐습니다.
할머니들은 식장 안이 그리 춥지 않은데도 긴장한 탓인지 투툼한 옷을 걸쳐 입고 신랑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나눔의 집 식구들이 일부러 얘기를 건네며 너스레를 떨어도 초조함을 풀지 못하던 신부 얼굴이 '신랑 왔다'는 소리에 비로소 풀어졌습니다. 선한 눈매에 웃음이 묻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행복해 뵈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신랑, 신부가 함께 기념사진 찍는 게 전부인 아주 간소한 예식이었지만, 계속 터지는 카메라 불빛에 눈이 부신 듯 연신 '이제 그만 찍어.' 하면서도 젊은 신랑을 꼭 붙잡은 팔짱은 풀지 않았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사진 찍는 일이라서 식장에 갈 일이 많습니다. 이제는 거의 다 학부형이 된 친구들의 결혼식, 가난한 부부들의 합동결혼식, 하객이 가장 많은 정치인 자녀들이나 화려하기 그지없는 유명 연예인 스포츠 스타의 결혼식 등. 7인의 신부들이 치른 1월 27일의 결혼식은 제가 이제껏 본 가운데 가장 적은 하객이 참석한, 제일 짧은 결혼식이었지만 제 맘에 불도장처럼 깊이 남을 듯합니다. 뜨겁고 안타까운 감정이 가슴속에서 서로 꼬리를 물고 솟아나는….
신랑이 오기 전 애꿎은 머리핀만 만지작거리며 초조해 하던 할머니의 손, 그 손이 오래도록 제 맘에 남습니다
-할머니들의 삶과 나눔의 집에 관해서는 다음 편지에 자세히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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