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기업 개혁의 기수」 서생현(한국마사회 회장)의 부패 근절학;
『기성세대는 깨끗한 나라를 후손에게 물려 줘야 할 책임이 있다』
 『기백만원의 해외출장비를 아껴 회사에 반납한 사람. 업무추진비도 쓰지 않고 절반 이상을 남기는 사람. 적자회사 경영자는 승용차 탈 자격이 없다며 버스와 전철로 출퇴근했던 사람. 10부제 날이면 어김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한 사람. 적자상태의 2개 公企業을 腐敗根絶 및 경영개혁으로 흑자로 전환시킨 사람. 각종 이권 및 請託 거절로 고향 인심을 잃었다며 국회의원 출마 권유를 고사한 사람
徐生鉉 회장 취임에 긴장한 마사회
1999년 12월20일을 전후해 徐生鉉(서생현·65)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이 한국마사회장에 내정됐다는 소문이 돌자 「마사회가 떨고 있다」(한국일보 1999년 12월20일자), 「마사회가 오한이 들고 말았다」(대한매일 1999년 12월20일자)는 보도가 나왔다. 마사회뿐만 아니라 馬主(마주)협회, 조교사협회, 騎手(기수)협회, 馬匹(마필)관리사협회 등 관련 협회들도 긴장했다.
徐회장은 2000년 1월5일 마사회장에 취임했다. 취임 一聲(일성)이 『나 자신부터 가장 정직한 모범사원이 될 테니 임직원을 비롯한 마사회 관련 인사들은 깨끗하고 정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청렴결백하지 못한 정신으로 公職(공직)을 수행하면 조직이 병들고 국민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徐회장의 생각이다.
徐회장은 적자 상태의 대한석탄공사와 대한광업진흥공사를 사장 취임 1년 만에 각각 흑자로 전환시켰다. 원가절감과 경영 투명성을 높여 「徐生鉉식 구조조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공기업 개혁의 기수」 라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한국 마사회의 상급기관인 문화관광부의 朴智元(박지원) 장관이 『마사회에 徐회장과 같은 개혁성향의 인물이 필요했다』고 밝힌 데는 그만한 속내가 있다. 마사회가 최근 경마 사업이익률 문제를 두고 정부와 마찰을 빚었기 때문이다.
기획예산처는 마사회에 2000년부터 사업이익률을 기존의 4.7%에서 6% 이상으로 높일 것을 주문했다. 인건비, 競馬(경마) 상금 등 조직과 경비를 더 효율화하라는 뜻이었다. 마사회 입장에서는 이미 조직 축소 및 인원 감축 등을 통해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더 이상의 경영改革(개혁)은 改惡(개악)이 된다면서 사업이익률 6% 철회를 주장하고 나섰다. 마사회 노조, 조교사협회, 기수협회 등 경마 3단체가 합동으로 1999년 10월 광화문 종합청사와 기획예산처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두 달여 뒤, 徐生鉉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이 28대 한국마사회장에 취임했다. 徐회장의 취임은 마사회 개혁에 拍車(박차)를 가하겠다는 정부의 의지 표명으로 해석됐다.
徐회장은 전남 광양 출신으로 이리공고를 졸업하고 陸士(육사 14기)를 나와 1958년부터 통신병과 장교로 군복무를 시작했다. 1965년 맹호부대 창설요원으로 월남전에 참전했고, 이후 육군통신사령관 및 合參(합참) 지휘통제 통신국장을 거쳐 1987년 육군 소장으로 전역할 때까지 근 30년을 軍(군)에서 보냈다.
도대체 徐生鉉 회장이 어떤 인물이길래
예편 이후 대한석탄공사 사장과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을 역임하고, 이번에 한국마사회 회장에 부임했다.
이력으로 봐서는 특별한 것이 없지만 徐회장은 정직하고 청렴한 인물이라는 평 때문에 공기업 최고 경영자로 발탁됐다고 주위 인사들은 평한다.
徐회장은 큰 키와 매서운 눈초리 때문에 차가워 보이는 첫인상과는 달리 정이 많은 편이다. 1월4일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 이임식에서도 徐회장은 이임사를 읽다 말고 한동안 눈물을 훔쳤다.
눈물과 정이 많은 사람이 청탁을 거절하기란 쉽지 않을 터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徐회장은 病的(병적)이다 싶을 만큼 외압과 청탁을 멀리하는 성격이었다. 그 바람에 가까운 친지와 고향사람에게 인심을 잃기도 했다.
그의 결벽증과도 같은 성격을 좀더 살펴보자.
그는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 재직 시절 기백만원의 해외 출장비를 아껴 회사에 반납했고, 업무추진비도 절반으로 줄여 남은 돈을 다시 회사에 반납했다. 사장 전용 그랜저 승용차를 중고 포텐샤로 바꿔 탔으며, 10부제 날이면 어김없이 전철로 출근했다.
거리에서 1천원짜리 넥타이를 사서 자신은 물론 남에게도 선물하고, 석탄공사 사장 재직 시절에는 적자를 내는 회사의 책임자는 승용차를 탈 자격이 없다며 버스와 전철로 출퇴근하기도 했다.
軍에 재직하던 시절에는 금으로 만든 행운의 열쇠를 들고 인사청탁 온 부하를 그 자리에서 보직 해임하여 전역시킨 적도 있다.
이런 면면을 보면 사회에서 별나고 융통성 없는 인물로 대접받아 왔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부패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徐회장은 천연기념물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徐회장은 1935년 전남 광양에서 5남 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사람으로서, 이런 유형의 인물이 대부분 그렇듯 어린 徐生鉉은 아버지로부터 혹독할 정도로 자립심을 배웠다. 집안은 면에서 소문난 알부자였지만, 초등학교 시절의 徐生鉉 회장은 검정 고무신이 닳을까 아까워 양손에 들고 다닐 정도의 자린고비였다고 한다.
중학교는 고향 광양에서 야간을 다녔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 힘으로 앞가림을 해야 한다고 아버지에게서 배웠기 때문이다. 낮에는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하고, 오후에 읍내로 나와 나무를 판 다음 해질녘에 학교 정문 앞에 지게를 내려놓고 등교했다. 이리工高를 다닐 때는 양식을 팔아 참고서를 사서 공부해 그 덕에 陸士에 합격할 수 있었다.
1958년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1987년 소장으로 예편할 때까지 만 29년간 그가 신념처럼 가슴에 새기고 실천한 것은 陸士 시절 배운 3대 금기사항, 즉 「거짓말·시험 부정행위·여자」였다. 徐회장은 그것을 「양심을 따르고, 부정하지 말고, 사생활을 깨끗이 하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였다. 여기서 「정직한 마음과」 「성실한 자세로」 「최선을 다하자」는 徐회장의 삶의 원칙이 탄생됐다.
徐회장은 중위 시절인 1963년 제일은행에 다니던 鄭貞愛(정정애)씨와 결혼했다. 당시 은행원은 여성으로서는 유망한 직업이어서 부인의 월급이 육군 중위인 남편보다 더 많았다. 남편이 결혼해서 가져온 첫 봉급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적었다. 徐生鉉 중위가 월급봉투를 내밀며 한 첫마디가 『미안해, 이게 전부야…』 이었다.
『오늘부터 도시락은 싸지 말라구』
1950년대 후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생활이 어려웠다. 많은 장교와 하사관들은 군대에서 나오는 보급품과 물자를 조금씩 가져다 먹고 입고 쓰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런데 徐生鉉 중위는 군수품이라면 쌀 한 톨, 무 한 쪽도 집안에 들여놓지 않았다.
당시 쌀 1가마에 2천8백원일 때 육군 중위 월급이 3천7백원이었다. 이 돈으로 쌀 들여 놓고 주택 임대료와 연탄값, 신문 구독료, 수도, 전기료를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다. 나라 살림이 어려웠던 시절이라 급여 일부로 밀가루가 나온 적도 있었다.
외아들 大憲씨(36·現 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가 태어났을 때 월급으로 생활이 안돼 죽을 끓여 먹어야 할 형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일가 친척들이 찾아와 양식을 축내고 가면 다음 날은 부부가 곡기를 끊어야 했다.
어느날 徐生鉉 중위가 출근하면서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부터 도시락은 싸지 말라구』
나중에 안 일이지만 집에 쌀이 없으므로 점심을 굶기로 작정한 것이다. 營內(영내)에서 식당 밥을 사먹을 돈이 없어 점심 때면 徐중위는 빈 서류봉투를 들고 자리를 떴다. 상관이었던 金世煥(김세환) 대위(육사 11기)로부터 『왜 남편 도시락을 싸주지 않느냐』는 말을 전해 들은 부인 鄭貞愛씨는 눈물을 훔쳤다.
부인의 하소연도 쇠 귀에 경 읽기
不正(부정)과 거리가 멀었던 徐生鉉 장교의 성격은 대대장이 되어서도 변함이 없었다.
1971년 강원도 소양댐 근처 관대리 산골지역에 근무하던 시절의 일이다. 소양댐 건설로 수몰 예고지역 주민들이 이주하여 부대 근처에는 民家(민가)가 없었다. 부인 鄭貞愛씨는 찬거리를 위해 한참을 걸어나가 콩나물 시루와 같은 만원버스를 겨우 잡아타고 인제읍의 시장까지 나가 장을 보아야 했다. 오가는 길이 하도 험해서 시장에 갈 때만이라도 부대 차량을 이용하게 해달라고 남편에게 부탁했으나 남편은 「쇠 귀에 경읽기」였다.
부인은 땔감도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 다른 부대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대장 관사에 사병들이 나무를 해서 갖다 준다는데…. 부인 鄭貞愛씨는 남편이 야속했다. 그렇지만 쓰고 남은 대대장의 지휘 감독비까지 국가에 반납하는 사람이었다. 불평해 봐야 자신의 입만 아플 뿐이었다.
그나마 가난한 살림을 꾸려갈 수 있었던 것은 부인이 은행에 다니면서 저축한 돈이 있었기 때문이다.
1981년 장군 진급을 한 후 겨우 승용차를 마련할 수 있었다. 국가에서 면세차량을 할부해 준 덕분이다. 장군의 품위 유지를 위해 승용차를 구입했는데 이번에는 車庫(차고)가 문제였다. 그래서 서울 변두리를 뒤져 이사한 곳이 구로구 시흥동 산꼭대기였다. 시내 중심지에 차고가 있는 집을 구할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흥동까지 가서 어렵사리 집을 구했지만 산동네인지라 水道(수도) 시설이 없었다. 1980년대 초엽인데도 그랬다. 산동네를 내려가 여성복지회관에까지 가서 빨래를 하고 물을 길어다 먹었다.
더욱이 비포장길과 승용차는 어울리지 않았다. 배속된 운전병은 비만 오면 타이어에 묻은 진흙더미를 뜯어내느라 땀을 흘렸다. 鄭貞愛 여사는 「장성 부인 모임」이 있을 때마다 비가 오지 않기를 빌었다. 어떤 때는 그 모임에 나가는 것조차 거북해 했다.
『꼭 승용차가 지저분해서가 아니었어요. 명색이 장성 부인 모임인데…. 난 그 자리에 가면 꿀먹은 벙어리가 됐지요. 대다수의 장군 부인들은 군대가 어떻고, 정치가 어떻고 하는 것을 소상하게 알고 있더군요. 예나 지금이나 저는 바깥일은 몰랐습니다. 남편은 바깥 일을 집에 와서 얘기하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죠』
徐회장의 성격을 상징하는 일화가 통신사령관으로 근무할 때 벌어졌다. 부대에 근무하는 모 소령이 어느 날 徐사령관의 사택으로 불쑥 찾아왔다. 평소부터 부하 장교들의 사택 접근을 엄격히 금지시켰기 때문에 소령의 방문은 의외였다. 부인은 찾아온 사람을 문전박대할 수 없어 방으로 안내했다. 그 소령은 슬그머니 방 한 구석에 금으로 만든 행운의 열쇠를 놓고 갔다. 진급 청탁을 위해 모험을 한 것이다.
徐사령관은 다음날 출근과 동시에 그 장교를 호출했다. 잔뜩 희망에 부풀어 사령관실로 들어갔던 그 소령은 사색이 되었다. 徐사령관은 『뇌물 증여로 징계위원회에 회부할 것이니 30분 이내로 예편 지원서를 써 갖고 오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그 장교는 군복을 벗었고, 이 사건 이후 徐사령관은 「하늘이 청탁을 해도 안 통하는 사람」이란 평을 들었다.
일가친척이나 고향 사람들이 자식을 입대시켜 놓고 괜찮은 곳으로 배속되도록 힘을 써달라는 부탁이 있었지만 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러면 전방은 누가 지킵니까. 힘없고 빽없는 사람들만 오지에 가서 고생해야 합니까?』
그 말에 친척들이나 고향 사람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1996년 15대 총선 때 국민회의로부터 고향인 전남 광양에 출마 제의를 받았으나 徐회장은 『고향 사람의 민원이나 청탁을 한 번도 들어주지 못해서 인심을 많이 잃었기 때문에 출마할 수 없다』면서 고사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있다니…
1987년 예편한 徐生鉉 회장은 6共 말기에 국영기업체인 대한석탄공사 감사로 부임했다. 在野(재야)에 묻혀 전설이 될 뻔했던 그의 삶이 주목 받은 것은 그로부터 4~5개월 뒤. 金泳三(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영기업체에 인사 태풍이 불어닥쳤다. 늘 그렇듯이 정권이 바뀌면 국영기업체 임원들은 일괄 사표를 제출하고 교체되는 것이 관례였다.
부산·경남의 PK 인맥이 정부의 주요 요직을 휩쓸 때였다. 호남 출신인 徐生鉉 감사는 짐을 정리하고 홀가분한 심정으로 대한석탄공사 대전지소를 방문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金爀珪(김혁규) 당시 청와대 비서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朴寬用(박관용) 비서실장이 찾으니 청와대로 들어와 달라는 것이었다.
朴寬用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徐生鉉 감사를 만나자 대뜸 석탄공사 사장을 맡아 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분은 처음 보았습니다』
徐감사는 그 제의가 부담이 됐다. 석탄공사 감사로 재직하며 이 회사의 누적된 부채와 구조적 어려움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당부하셨다』는 말에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朴寬用 비서실장의 보고를 받은 金泳三 대통령은 『장군 출신으로 그렇게 깨끗한 사람이 있었는가. 당장 석탄공사 사장에 임명하라』며 흡족해 했다고 한다.
석탄공사 사장 내정자로 결정된 徐회장은 엄청난 액수의 누적 적자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나타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부인 鄭貞愛씨가 말했다.
『사장으로 임명된 바에야 석탄공사를 1등 기업으로 만드세요. 당신 성격 때문에 어차피 힘들게 살아왔고, 또 남은 삶도 그렇게 살기로 작정하지 않았나요』
부인의 충고는 徐사장의 취임 一聲이 되었다. 1등 公기업을 만들자는 것이 그의 경영 목표였다. 1993년 9월에 徐사장은 석탄공사 사장에 취임했다. 당시 석탄공사의 누적 적자액은 1천3백억원이었다. 석탄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드는 등 구조적 문제로 인해 적자경영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徐사장은 상공부 장관을 만나 『석탄공사의 부채 7백억원은 정부가 탕감해 달라. 나머지 6백억원은 1년 내에 책임지고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金喆壽(김철수) 상공부 장관은 半信半疑(반신반의)하면서 이 제안을 승낙했다.
부채 6백억원을 1년 만에 갚겠다니…. 임직원들은 충격을 받았다. 인원 감축이나 급여 삭감 이외에는 묘안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徐사장은 본격적인 개혁작업에 돌입했다. 감사로 재직하면서 직간접으로 회사 운영을 지켜본 경험이 힘이 되었다. 당시 석탄공사는 석탄 갱도 등 각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 피해보상금으로 한해에 무려 6백35억원을 지출하고 있었다. 보상비나 치료비 등을 감안하면 한 사람의 인명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평균 1억원이 지출되는 셈이었다. 좀더 철저한 안전관리와 감독으로 사고를 줄이면 경영손실도 줄일 수 있고, 귀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徐사장은 안전사고 방지에 총력을 쏟았다.
徐사장은 취임과 동시에 매일 새벽 5시30분에 출근했고, 전국 광산의 현장 관리자들은 아침 7시까지 출근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徐사장은 새벽에 출근하자마자 작업현장에 전화를 걸어 지난밤 採鑛(채광) 현장의 안전사고 여부부터 물었다.
현장소장은 직접 지하갱도로 내려가 사장 지시사항을 이행해야 했다. 관리감독자의 부주의로 인해 경미한 안전사고라도 발생하면 엄하게 처벌하는 한편, 지하갱도 6백m 안에까지 핫 라인을 설치하여 현장 직원과 전화 통화로 이상 유무를 파악했다.
甲(갑), 乙(을), 丙(병) 이렇게 3개조로 운영되는 광산 현장의 안전사고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丙조에서 발생했다. 밤샘 근무조의 피로감이 쌓이는 새벽 6시부터 아침 출근조가 교대로 투입되는 오전 7시를 전후해서 안전사고가 발생하곤 했다.
그런데 사장이 새벽에 출근해 직접 지하 갱도까지 전화를 하자 현장직원들은 긴장하기 시작했고, 이런 분위기는 갱내의 작업현장으로 전달됐다.
평생 한 번 사장과 대화할 기회가 없었던 현장 근무자들이 직접 사장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고생한다는 격려를 듣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솟구치기도 했다.
徐사장은 갱도 초도순시 때 놀랐다. 30도가 넘는 고열 고온의 재래식 昇坑道(승갱도)에서 무릎 꿇고 탄을 캐내는 현장을 처음 체험한 徐사장은 『당신들이 애국자』라며 그들의 손을 쥐고 눈물을 흘렸다.
광업소 시찰에 나설 때마다 인근의 長明寺(장명사:장성광업소), 大溪寺(대계사:도계광업소), 萬淵寺(만연사:화순광업소)에 들러 殉職(순직)한 직원들의 位牌(위패) 앞에서 亡者(망자)들의 極樂往生(극락왕생)을 빌었다.
辛澤善(신택선) (주)성풍건설 상무(당시 석탄공사 홍보과장)은 그 때의 일을 이렇게 회고했다.
『한 번은 사장님을 수행하고 광업소 현장에 내려갔는데 새벽 일찍 사라지신 겁니다. 직원들이 비상이 걸렸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인근 사찰 주지로부터 殉職 직원을 위해 參拜(참배)를 다녀갔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취임 1년 만에 부채 6백억원 갚아
徐사장의 진심이 현장 직원들 가슴에 전달되면서 사고율이 전년 대비 51%로 줄었다. 절반 이상 사고가 줄어든 것이다. 당장 여기서 3백억원 이상 예산이 절감됐다. 나머지는 경비 절감으로 부채를 갚아 나갔다.
徐사장은 『적자를 내는 국영기업체 사장이 무슨 면목으로 승용차로 출퇴근을 하는가』 하며 사장 관용차를 팔고 버스로 출퇴근을 했다. 새벽이라 버스가 없으면 택시를 잡아타고 출근했다. 대다수 직원들은 『감사가 사장이 되더니 쇼를 한다』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았다.
새벽 출근과 현장 연결 전화는 1년이 넘도록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지속됐다. 사장의 버스 출퇴근을 자주 목격한 직원들은 사장에게 가슴을 열었다.
徐사장은 직원들이 不正(부정)한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적자 규모를 더욱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직원 설득에 나섰다. 대한석탄공사는 협력업체가 1백개 업체가 넘었다. 광부들 작업복만 해도 하루 4천여 벌을 세탁해야 했다. 직원들이 먹는 음식도 대단했다. 협력업체가 되는 것은 곧 利權(이권)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부정의 誘惑(유혹)이 끼여들 여지가 있었다. 徐사장은 이것을 근절하는 데 주력했다.
협력업체와의 음성적 거래가 사라지면서 회사 이익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해당분야 직원들의 불만도 높아만 갔다. 『애들 과외공부도 못 시킨다』면서 직설적으로 徐사장을 성토하는 사례도 있었다.
어떤 광업소 직원이 徐사장 집으로 굴비 세트를 우편으로 보냈는데 고스란히 반송되어 왔다. 사장 몰래 집에 찾아온 간부 직원도 있었는데, 부인은 『사장님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제발 찾아오지 말아달라』면서 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徐사장이 간부 직원이 집으로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 직원은 파면됐을 것이다. 부인은 그 사실을 퇴임식날까지 비밀로 했다.
이렇게 해서 1년 만에 누적 부채 6백억원을 상환했다.
50대 중반이 넘어선 徐生鉉 사장의 1년여 지속된 새벽 5시30분 출근 밤 9시 퇴근은 건강에 다소 무리가 뒤따랐다. 고교시절 3년 내내 끼니를 거르며 쌀을 팔아 참고서를 사서 공부한 덕에 칼슘부족 증세가 있었다. 허리 디스크 두 마디를 제거하고 쇠막대기를 7개나 척추에 박은 徐사장은 主治醫(주치의)로부터 과로하면 안된다는 경고를 받았지만 쉴 시간이 없었다.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徐사장은 정부에 사표를 제출했으나 金泳三 대통령이 반려하여 잠시 병원에서 집무를 했다. 원한다면 자리를 계속 지킬 수도 있었지만 徐사장은 본인 의지대로 회사를 떠났다.
건강을 회복한 徐사장은 金大中 정부 출범과 함께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으로 임명됐다. 석탄공사에서 공기업 운영에 대한 경험을 쌓았고, 광업진흥공사는 비록 적자기업이었지만 석탄공사보다는 사정이 좋았다.
그는 광업진흥공사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사장실부터 뜯어고쳤다. 사장실에 있던 응접세트를 새로 단장된 직원 휴게실로 보내고 회의용 탁자와 컴퓨터를 들여놨다. 또 사장실 벽면에 걸린 액자를 떼어내고 회사 경영 현황판으로 대체했다. 사장의 관용차량인 그랜저를 팔아 중고 포텐샤를 구입했다. 이 과정에서 남은 돈으로 직원 휴게실을 꾸몄다.
커피 한 잔도 뇌물이다
그리고 「7+2」라는 인사원칙을 발표했다. ①정직도 ②성실성 ③최선을 다하는가의 여부 ④근무성적 ⑤잠재능력 ⑥사생활 ⑦인간성.
이렇게 일곱 가지 평점을 기준으로 평가하되 다음 두 가지, 즉 인사청탁을 위해 사장이나 윗사람 집을 방문하는 직원과, 외부에 인사청탁을 하여 外壓(외압)이 들어오게 만드는 직원은 「아무리 높은 분의 지시」라고 할지라도 승진에서 제외시킬 것을 천명했다. 『사장에게 인사청탁을 하는 직원은 그날로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라며 임직원의 사장 자택 방문도 금지시켰다.
직원들에게는 「커피 한 잔도 뇌물」이라고 교육을 시켰다. 앞으로 어떤 경로로든 관련 업자에게 커피 한 잔이라도 얻어먹는 직원이 발견되면 엄하게 처벌하겠다고 공언했다. 몇몇 업체로부터 『커피 한 잔 정도는 괜찮지 않느냐』는 怨聲(원성)이 들려왔고, 일부에서는 융통성 없이 앞뒤가 꽉 막힌 사장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융자관련 업무 직원들을 대상으로는 특별교육을 실시하여 공직자로서의 공명심을 잃지 말 것을 당부했다. 또 전국의 자원산업계 대표들에게 자필 서신을 보내 「신뢰받는 공직자像을 정립하려 하니 업무추진과정에서 광업진흥공사 직원들에게 커피 한 잔이라도 접대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민폐를 끼치지 않고 성공적으로 업무를 수행하여 관련업체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직원에게는 치하문을 수여했다.
순익 증가율 1위, 고객 만족도 1위
이러한 정신교육과 함께 본격적인 경영혁신운동을 전개한 결과 1999년 4월22일 기획예산처가 발표한 「1998년도 19개 公기업 경영혁신 실적평가」에서 1백점 만점에 90점 이상을 얻어 한국도로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전력공사, 한국수자원공사 등과 함께 우수기관에 선정됐다.
특히 당기순이익 부문에서 1997년 23억원 적자에서 1998년에는 15억원 흑자를 기록하며 증감률 1백66%로 1위를 차지했다. 사장 스스로 업무추진비를 5천여만원 절감하고, 아껴 쓰고 남은 해외출장비까지 반납한 결과였다.
뿐만이 아니다. 1998년 5월∼9월까지 5개월간 기존의 4본부 13처 41부 3개사업소에서 3본부 11처 35부 2개사업소 체제로 조직을 축소하고 인력도 95명을 줄였다. 그 결과 1999년 12월28일 기획예산처가 발표한 「19개 公기업 고객만족도 조사」에서도 徐사장의 광업진흥공사가 1위를 차지했다. 해외자원 개발사업과 정보제공 서비스가 뛰어나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1위에 오른 것이다.
한편 대통령직속 자문기구인 「反부패특별위원회」가 1999년 9월에 출범했을 때 광업진흥공사 사장이던 徐사장이 特委(특위) 위원으로 임명됐다. 지금까지 역대 정권이 부정부패 척결을 선언하고 각종 特委(특위)와 특별법을 만들어 서슬 퍼런 칼날을 휘둘렀지만, 애꿎은 말단 공무원 몇 명의 목을 베는 戰果(전과)를 거두었을 뿐 흐지부지되곤 했다. 總選(총선)이 코앞에 닥쳤는데 뭔가 한탕 해야 하지 않느냐는 발상에서 反부패특위가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 몇몇 인물을 겨냥한 마녀사냥으로 변질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국민도 있다.
그런데 反부패특위 첫날 모임 때의 일이다. 徐회장은 정부가 만든 「부패방지 종합대책」을 정독한 후 이의를 제기했다. 국가 청렴도를 2003년까지 세계 20위권 이내로 끌어 올리겠다는 것도 그렇고, 뇌물수수 등 관련범죄 형량을 상향조정하여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다소 줄여보겠다는 계획도 성에 차지 않았다.
국제투명성위원회(TI: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밝힌 1998년 한국의 국가청렴도는 조사대상 85개국 중 43위. 일본이 25위, 대만이 29위였으니 우리가 20위권 이내에만 들면 일단 성공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徐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부정부패는 경제성장과 같이 많은 시간과 공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닙니다. 당장 고위 공직자부터 솔선수범하고, 부정부패를 엄히 다스리면 국가 청렴도는 높아집니다. 그리고 목표를 1위로 세워야지 20위권 진입이 뭡니까. 20위권 안에라도 들어갔으니 이만하면 됐다고 자위라도 하려는 겁니까. 우리 세대는 후세에게 깨끗한 나라를 물려줘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솔선해서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대접받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책임자가 청렴해야 부패없는 조직 가능
부정과 부패에 관한 한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이 시대에 천연기념물 같은 존재가 된 徐生鉉 회장의 삶은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에게 공직자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현실적 방법론을 묻자 이렇게 답한다.
첫째, 공직자는 무조건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설령 물려받은 유산이 많다 하더라도 공직에 재임하는 기간만큼은 검약한 생활을 해야 한다. 이것이 공직자의 운명이다. 그렇게 살기 싫으면 공직을 떠나야 한다. 공직은 국민이 부여한 자리이기 때문에 공직자가 일반 국민들보다 사치하거나 잘 먹고 잘 입는 모습을 보이면 국민은 절대 공직자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
둘째, 인사원칙을 「개인의 능력」보다 「깨끗한 인물」에 두어야 한다. 장관이 깨끗해야 휘하 국과장의 허물을 나무랄 수 있다. 책임자가 정직 청렴해야 부정부패 없는 조직을 만들 수 있다.
셋째, 고위 공직일수록 부정을 저지르면 더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넷째, 부정 부패나 세금포탈 등은 법정 최고형으로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단 돈 10원의 부정에도 「파면」이라는 엄한 징계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무서워서 다시는 부정한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
이러한 방법론이 실천에 옮겨지기만 하면 부정부패는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徐회장은 틈만나면 「아내의 힘」을 강조한다. 가정이 바로서지 않으면 부정부패의 연결고리를 차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徐회장은 軍 재직시나 사회에서나 진급식을 할 때면 승진자 부부를 함께 초청하여 아내들에게는 鄭元植(정원식) 대한적십자 총재의 저서 「머리를 써서 살아라」를, 승진자에게는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CD 한 장을 선물로 주었다. 아내는 가정을 지키고, 남편은 아내의 고마움을 알라는 뜻에서다.
그 자신도 늘 부인에게 감사해 하며 지금도 집안일을 돕는다.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청소하는 것은 徐회장의 몫이다. 그의 「부패와의 전쟁」은 이렇게 修身齊家(수신제가)에서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
광업진흥공사 이임식 자리에서 만난 徐사장은 『아직 할 일이 남았는데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급작스레 떠나게 되어 아쉽다』고 말했다. 마사회장 취임 소감을 묻자 『경마가 국민이 신뢰하는 국민적 레포츠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면서 『마사회 조직을 충분히 연구하면서 개혁방안을 구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徐회장이 마사회를 어떻게 개혁의 광장으로 끌어낼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월간조선 200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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