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마사회가 낸 5단짜리 신문광고를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굽 없이는 말도 없다'는 커다란 문구와 함께 묵묵히 편자에 망치를 내리치고 있던 노인. 편자 만들기로 평생 외길을 걸어온 이규찬(李圭燦 69)씨다.
 그는 한국경마의 살아있는 역사다.70년대의 `에이원',80년대의 `포경선',90년대의 `가속도'…. 경마장의 환호를 업고 시대를 풍미했던 명마(名馬)라면 열에 아홉은 그의 손을 거쳤다.
과천 서울경마장 장제소(裝蹄所)에 가면 언제든 이씨를 만날 수가 있다.땀에 절은 후줄근한 작업복을 걸치고 `땅땅땅' 장제소가 떠나가라 쇠편자를 두드려 매만지는 일에 그는 한평생을 바쳤다.
"말발굽의 앞뒤 높낮이가 종이 한장 차이만 나도 말은 뛰지 않아요.약간만 경사가 져도 말은 그걸 알아차리거든요
"이씨는 말의 숨소리만 듣고도 그날 그날의 심리상태를 꿰뚫어낼 수가 있다.
"발굽의 신경조직을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말이 병을 앓는다"는 말도 다름 아닌 이씨라서 더 자신있게 들린다.
편자의 크기는 크게 4가지.보통 경주마에는 알미늄편자를,승마용에는 쇠편자를 쓰게 되는데 말발굽의 크기에 딱 맞도록 편자를 고르는 것이 장제사들의 일이다.
망치질로 세월을 보내온 그의 손은 첫눈에도 온통 굳은살 투성이다. 처음 편자를 만졌을 때 그는 13살 소년이었다.고향(경북 군위군)에서 아버지는 마차용 편자박는 일을 했다. 하루이틀 어깨 너머로 배우던 것이 결국 그에겐 평생의 업(業)으로 굳어진 셈이다.
기술하나 밑천 삼아 16살때 이씨는 고향을 떠났다. 북한의 함흥,웅진,청진을 돌며 본격적인 경마장 생활을 시작했다.아버지가 소개해준 일본인 장제사 선생을 부지런히 쫓아다닌 것이다.
"한때는 참 잘 나갔더랬습니다. 쌀 한가마값이 30원할 때 하루에 300원을 벌곤 했으니까요.처녀들한테도 인기가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해방 직후 그는 북한을 떠나왔다. 당시 그는 남한 유일의 경주마 장제사였다.6.25직전 군생활을 할 때도 대구 기마헌병대의 장제일을 도맡았다.제대 후 그는 말뜻 그대로 한국경마사의 산 증인이 됐다. 신설동에서 뚝섬경마장으로,또 다시 지금의 과천경마장으로….경마역사의 주무대에는 항상 그가 함께 있었다.
요즘 그가 일하는 곳은 승마훈련원 장제소다.10년전 정년퇴직을 하고도 한국마사회는 다시 10년간 그를 계약직으로 일하게 배려해 주었다. 하지만 그 계약도 사실상 지난 2월로 끝났다.
"제자들도 만나고 말도 봐주러 오지요.집에 있으면 뭐해요"
그가 기술을 전수해준 장제사는 25명.마사회 소속 직원도 있고 개인마주제로 개업한 이들도 열명은 된다. 요새는 꾸준히 일을 도와주는 그에게 제자들이 용돈조로 월급을 모아준다.
이씨가 받는 대접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경마장이 400개가 넘는 호주로 우리 편자가 역수출되는 개가를 올리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다 그의 덕분이다.
"후회요? 그런 걸 왜 합니까"그는 한번도 편자박기 인생을 후회해본 적이 없다. `공은 닦은 대로 간다'는 옛말처럼 적지 않은 세상사람들이 자신의 노력을 기억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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