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수(2004/05/08)  
 얼렁뚱땅을 격파하라



문제 하나. 다음 설명 중 부정경마에 대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
① 출주마의 경주능력을 일시적으로 높이거나 줄이는 약제를 사용할 경우
② 경마에 관하여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얻거나 타인으로 하여금 얻게 하기 위하여 기수가 경주에서 말의 전 능력을 발휘시키지 아니할 경우
③ 조교사·기수 및 마필관리원이 그 업무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공여하게 하거나 공여를 요구 또는 약속할 경우
④ 마사회의 임·직원이나 감독의 지위에 있는 자로서 영리를 목적으로 경마 도박을 하거나 이를 방조할 경우

어렵게 생각할 거 하나도 없다. 한국마사회법 처벌 규정에 나와있는 그대로다. 위의 네 가지 경우는 모두가 부정경마이며 경마부정이다. 범위를 조금 더 확대해서 공정하지 않은 경마 즉, 불공정 경마의 기준까지 따지면 복잡해지겠지만 한국 경마의 시행에 관한 전권을 정부로부터 위임받은 마사회가 법으로 정한 게 이 정도다.

최근, 마사회는 부정경마의 근절을 위해서는 단속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으로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예방적 차원의 방침에 따라 자수제도를 다시 도입했다. 때맞춰, 경마부정에 연루되어 있던 두 명의 기수가 마사회에 자수했다. 마사회는 최대한의 선처를 보장하고 재정위원회를 통해 처리한다는 내부방침을 정했다. 그런데 이 사건에 마사회 보안팀 간부직원이 두 명의 기수로부터 정보를 받아 외부의 경마꾼에게 팔아넘겨 왔으며 간부를 제외하고도 세 명 이상이 연루되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마사회는 사안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수원지검은 지난주에 두 명의 기수와 마사회 간부직원을 구속수감하기에 이르렀다.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기수들의 부정경마 수사사건 보도를 접하는 착잡한 심정의 경마팬들은 되풀이되는 경마 창출자들의 부정사건들에 대해서는 무감각해 할 지경에 이르렀다. 연례행사처럼 이어져 오는 부정경마의 퍼레이드는 도저히 근절할 수 없는 것으로 체념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사회 간부와 직원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서 기수에게 정보를 빼돌려 장사를 해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모 인터넷 사이트가 최근 부정경마 단속 업무를 관장하는 시행체의 보안부서 과장이 부정경마 혐의로 기수 두 명과 함께 구속된 데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80%에 육박하는 대다수가 마사회 최고책임자의 사퇴를 당연하게 여긴다고 대답했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었다. 부정경마 방지하랬더니 오히려 경마소스 팔아먹는 장사를 하고 앉아 있었다면 그야말로 볼 짱 다 본 집구석이었다. 보안처의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 해서 세 개의 팀을 묶어 발족시켜놨더니 첫 작품이라고 내놓은 것이 내부 거래자를 확인해야 하는 일이었다면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과연 누구를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이젠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돈 주고 살 만한 정보는 경마장에 없다던 마사회의 18번 노래에는 '마사회 직원이 파는 것은 예외'라는 단서를 달아야할 판이다.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시행체의 직원들이 경마부정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개인적인 비리 정도로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말 그대로 개인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 네 명 이상이 구사해 온 부정의 커넥션이었다면 이번 사건은 시행체의 설립 기반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버릴 대폭풍이다. 그런데도 관리 책임자는 물론이고 대외적으로 마사회를 대표하는 그 어느 누구도 이번 사태에 대해 일언반구 아무 말이 없다. 석고대죄(席藁待罪)해도 모자를 판에 최소한, 미안하다든지 잘못했다든지 앞으로는 철저히 일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든지 하는 얘기조차도 없다. 언론에 이 같은 사실이 보도되는 것을 최대한 막도록 관련 부서에 지시하는 것만으로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지 최고 책임자와 간부들은 책상에 앉아 두꺼비처럼 눈만 뻐꿈거리고 있다.

그까짓 마사회장 직함이 뭔 대단한 벼슬이며 부귀영화를 보장해주는 자리라서 놓지 않으려 붙들고 연연해 하는지 모를 일이다. 도덕적 책임이 있다면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법률에 관한 책임이 있다면 사법부의 판단에 맡기면 된다. 그리고 경마장의 불문율인 경마팬의 정서에 부합되지 않는다면 반성하고 고백하고 사과하며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면 된다. 그것이 바로 사회적 책임론인 것이다.

경마로 재산 다 말아먹은 니네들이 경마꾼이란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니 니네들이 떠드는 소리는 못들은 걸로 하겠다는 심보가 지금의 마사회 배짱이다. 아무리 떠들어봐야 주말이 돌아와 출마표만 뜨면 대가리와 꼬랑지 찾느라고 항상 조용하더라 그러니 적당히 시간만 지나면 잠잠해질 게 아니냐고 마사회는 장담하는 모양이다.

더 한심한 것은 이런 마사회의 똥꼬를 닦아주는 스포츠 찌라시다. 출마표 조기공개 방침에 게거품을 물었던 당사자의 기사는 진짜 가관이다. 두 명의 기수와 보안과장의 구속사실을 짧게 알리면서 덧붙인다는 얘기가, 두 기수의 자수를 유도할 수 있었던 것은 마사회가 경마보안처 신설 등을 통해 부정경마에 대한 적극적인 예방 및 강력한 단속활동을 펴온 성과로 판단된댄다.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다 못해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없는 보안처를 대신해서 홍위병 역할을 대행하고 나선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동아와 중앙의 논조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이건 해도 너무했다. 잘한 걸 칭찬하는 거야 당연지사지만 잘못을 거꾸로 칭찬하는 부조리(不條理) 앞에서는 아연실색해질 따름이다.

우리는 국민교육헌장을 통해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삶의 태도와 방식을 배웠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겠다면 그들의 일체의 권리와 권한은 박탈당해야 옳다. 책임지지 않는 권리를 내세워 군림하고 자신들만이 한국 경마의 공정과 신뢰를 담당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내세운다면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경마가 경마팬에게 사랑받고 신뢰받기 위해서는 공정한 경마의 시행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더 이상 경마부정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문제점을 찾아내어 제도를 보완하는 것도 중요하며 부정의 온상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환골탈태하기 위한 각오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과 주장도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가려내고 그에 응당한 책임론이 제기되어야 하는 것이 먼저다. 맨날 얼렁뚱땅 위기만 넘기면 된다는 무사안일과 책임의 회피가 부정경마를 연례행사로 만든 주범이며 마사회를 고름으로 차게 한 원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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